컴퓨터로는 안 써지는거야.
한 11월쯤인가.
나와 이름이 같았던 모임장이 있는 독서모임의 단톡방에서, 한참 신나게 떠들어제끼던 때가 있었다. 커리어 관련 책을 읽는 모임의 세컨드 단톡방이었는데, 공지나 투표 같은 것이 아닌 정말 의식의 흐름대로, 단 커리어 관련 이야기를 주제로 수다를 떠는 톡방으로, '3분커리어'라는 말맛 좀 아는 모임장이 작명한 사이드 디쉬같은 개념의 단톡방이었다.
독서모임이야 한달에 한 번 세시간 정도 얼굴을 볼 뿐인데 뭐 그리 톡방에서 할 말이 많겠느냐만은, 사실 그 모임은 특별하게도 책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책을 읽고 '나'의 이야기를 하는 집단상담의 성격에 가까웠다. 사실 그렇기는 한 것이, 예를 들어 이본 쉬나드의 '파타고니아 어쩌구'라는 책을 읽었다고 치자. 그의 환경친화적인 고집에 감명을 받았어요~라던가, 혹은 조직을 이끌어가는 어떠한 모습을 닮고싶다고 생각했습니다~라는 뻔한 감상은 위인전을 읽고 난 뒤의 독후감처럼 감흥이 없다. 달리 우리가 모여서 본인이 그렇다는데 '너의 감상은 틀렸어'라고 할 것도 없다.
즉, 책을 읽고 이 책의 주인공에 대해 느낀 감상이나 혹은 책의 내용에 대해 생각한 것들은 우리의 토론의 주제이기보다는 재료에 가까웠다. 우리를 정의하자면, 지금 내가 가진 고민을 해결할 실마리가 이 책 속에 있을지 찾는 사람들이었고, 자연스럽게 책의 내용보다는 책의 어느 챕터, 어느 문장 어느 단어에서 나를 '투영'했다.
나를 투영하는 과정은 꽤 여러 유형이었다. 함께 했던 사람들을 유형별로 분류할 만큼 관찰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기억을 더 잘 하기 위해 아래와 같이 남겨본다.
1) 투영의 방식 1 : 듣고,이야기하는 사람.
이 모임의 가장 큰 특징은, 타인의 자기고백적인 서사를 참을성있게 들어야한다는 것이었다. 독서모임의 방식은 모더레이터격의 진행자와 모임장이 이 모임의 대화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사전질문을 통해 순번을 정해서 책의 감상을 이야기하거나 질문에 대한 자신의 답을 하는 것이었는데, 우리는 한 사람 당 2-30분씩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 '과하다' 는 생각 없이 차분히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주려는 분위기의 아주 독특한 모임이었다.
보통의 이러한 독서모임에서 모더레이터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독식'을 막는 것이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누군가의 발언에만 집중하다 보면 그만큼 누군가의 발언 시간이 짧아지기도 하고, 몇몇이 주도하여 이끌어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지만 그러다고 해서 그들만을 위한 무대가 만들어져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의 독식을 존중'해 주는 분위기가 주도적이었다. 주도적이었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물론 그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러한 분위기가 형성된 후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를 조금 더 깊게 하는 사람도, 혹은 솔직하게 하는 사람도, 혹은 몰입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이야기를 풀어놓다가 스스로 문득 무언가를 깨닫는 듯한 사람도 있었다. 나는 본인의 차례가 다가와 첫 마디를 떼는 사람들의 숨고르기와 표정과 자세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에게 경청하겠다는 의미로 어깨를 기울이고,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혹은 한숨을 함께 쉬어주거나 동조의 웃음으로 함께 이야기 속에 있음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좋았다.
2) 투영의 방식 2 : 확신을 얻는 사람.
이른바 세상에 '이름을 남긴' 파운더들의 이야기를 읽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담담한 에세이를 읽으며 누군가는 '내가 지금 가는 방향이 맞다'라는 확신을 얻은 것 같다. 이런말 하기는 좀 선 긋는 것 같지만, 나와 달리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지 않고 목표지향적인 생각만 딱 깔끔하게 남겨놓아 모든것이 이치에 맞는 하나의 잘 짜여진 사업계획서 같은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는 창업이라는 플랜이 있었고, 이 모임을 통해 우리의 자기고백적인 이야기나 가끔의 눈물에 대해 크게 동요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절대로 이 모임에 어울리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내면에서 싸우고, 그는 실제로 가시적인 무언가를 만드는 것으로 그 싸움을 외부로 확장시켰다. 생산성이 어마어마하고, 그래 저런사람이 사업을 하지-라고 느꼈다. 이른바 비범한 사람이었고, 그런 그를 지금 시작하는 시점에 만난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나와는 매우 다른 사람이고, 앞으로도 일에서는 나를 그가 써주지도 않을 것이며, 나 또한 그와 함께 일 할 일은 없다고 생각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과 꼭 한번 일해볼 수 있다면, 내 인생이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 또한 들었다.
3) 투영의 방식 3 : 은 바로 나다.
나는 처음으로 자기 과시가 아닌 정말 솔직한 내 마음을 나를 모르는 낯선 사람들에게 이야기함으로서 꽤 즐거움과 후련함을 느꼈던 것 같다. 꽤나 별로인 아웃사이더적인 나의 커리어를 그럴듯하지 '않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았다.
그 때의 나의 고민은 두가지였는데, 첫번째는 '나는 왜 이렇게 변두리 인생인걸까'라는 커리어적인 고민이었다. 첫 커리어를 누구나 아는 국민 브랜드를 가진 회사에서 시작했던 나는, 꽤 열심히 하는 것이 눈에 띄어 브랜드를 다루는 팀으로 가는 것은 성공했으나, 메인브랜드가 아닌 명분만 이어가는 브랜드의 담당자였다가 그 이후에는 신규 카테고리를 발굴하는 팀에 속해있었다. 이른바 오래된 회사들의 '신성장 동력 찾기'에 적합한 용병이었다. 그 시대의 유행하는 것들에 대해 모조리 조사도 해 보고, 또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것들이 나에게 어떠한 자산이 되었는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는 없으나, 재미있는 일들을 많이 경험한 것은 맞았다. 다만, 현재 내가 맡았던 프로젝트들은 사장된 것들이 많다. 이른바 그 회사에서, 나는 공채로 입사해 제대로 된 코스를 밟았지만 맡았던 업무는 '적통'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회사를 나오고 나서도 한동안 나의 전 직장을 이야기할때면 당연히 내가 메인 브랜드를 담당했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해맑게 그 브랜드를 다룬 경험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억지로 질문을 환영하는 제스처를 취해야 했고, 또는 주워들은 이야기로 아는 체를 해야만 했다. 내가 기여하지 않은 것에 대해, 그 회사를 다녔다고 해서 기여한것처럼 굴어야 하는 것이 나는 부끄러웠다. '다 해본 것처럼 굴어야' 하는 것이 비겁했다. 그리고 '회사빨' 받기 위해 아는 체 해야만 하는 나 자신도 한심했다.
이직해서도 신기하게도 나는 회사의 메인 업무와는 좀 거리가 있는 업무의 담당자가 되었다. 오프라인 회사에서 내 역할은 온라인 채널을 이용해서 홍보를 하거나,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었다. 내 업무의 명칭은 디지털 마케팅으로,콘텐츠 마케팅으로, 온라인 마케팅으로, SNS마케팅으로, 혹은 바이럴로 계속 목적에 따라 다르게 불렸다. 그만큼 이해도도 낮았지만 중요도 또한 제대로 인식되지는 못했다. 한동안 코로나시기에 각 기업들의 유튜브 채널 키우기가 광풍처럼 유행으로 번질 때, 우연히 전 회사의 인스타그램 콘텐츠가 잘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업무를 해 본 적 없는 나를 해당 업무에 배치한 것만 보아도 그렇다.
코로나가 끝나고 나서는 나 나름대로 회사 내에서의 이 업무의 존재의 이유에 대해 크게 어필하기 위해, 우리 플랫폼에 입점하는 브랜드들의 홍보와, 우리가 개발한 공간이 오픈했을때의 홍보를 몇 번 눈에 띄게 했다. 그러나 그래도 아직 이 업무는 여전히 기획업무의 실행처럼 'Sub'해야 하거나, 혹은 PR보다는 '급이 낮은' 바이럴성 업무로 여겨진다. 회사에서 주인공이란 없지만 주관을 가진 업무를 하고 싶었던 마음은 어느덧 10년차가 넘어가자 가끔 울컥-하고 화가 날 때가 있다. 커리어적으로 '변두리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은 이 두가지에서 비롯되었다.
두번째 고민은 나만의 '무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첫 회사의 커리어의 경우, '레시피'는 연구소에서, '패키지'는 디자인부서에서, 생산과 소싱은 '구매'부서에서 담당했다. 공장을 끼고 있는 체계가 완성된 회사는 각자의 역할이 아주 잘 나뉘어져 있다. 그래서 브랜드의 담당자로서 모든 과정을 '이해'는 하고 있었지만 '체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스타트업에 가면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말만 하는 대기업 출신의 모 과장이 될 것이다.
현재의 직무에서는 주로 인스타그램 콘텐츠를 만들거나, 영상을 기획한다. 다만 나는 평생 갤럭시 유저로서 감각보다는 광각에 의존한 사진에 익숙하고, 영상은 기본 툴을 만지는 것도 익숙하지 않다. 업무는 디지털 대행사와 함께하며, 나는 주로 기획의도와 취지에 대한 기획을 담당하고, 대행사는 이를 실행한다. 그래서 나는 콘텐츠 회사에 가면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말만 하는 대기업 출신의 모 과장이 '또'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투영의 방식 4)는 모임장이었다.
사실 이 모임을 내가 선택하게 된 것은, 그가 단순히 나와 이름이 같기 때문이었다. 가끔 어떤 계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네이버에 내 이름을 쳐 볼 때가 있다. 그럴때마다 내가 세상에 얼마나 족적을 남기지 않았는지, 그리고 세상의 모든 '나'들은 대체 뭘 하고 사는지 궁금해서 계속 스크롤을 내려보고, 클릭해보곤 한다. 내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불륜드라마 이름의 주인공일 때도 있고,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국회의원이기도 하고, 나이가 지긋한 동화그림작가이기도 하며, 그리고 그였다. 누가봐도 저 프로필 사진은 현재의 모습과 같을 것이다-라고 생각한 담백한 사진이 맘에 들었던 동명이인.
나와 같은 이름을 쓰는 그는 내가 그 당시에 매우 좋아하던 폴인이라는 플랫폼에서 꽤 괜찮은 인터뷰를 한차례 진행하고, 독서모임의 모임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커리어 연차로 볼때 이미 벌만큼 벌고(?) 세상을 느긋하고 여유롭게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내가 꿈꾸던 근시일내의 내 미래일까? 혹은 같은 이름을 가진 그에게 지금의 나에 대해 쓴소리를 들으면 내가 정신을 차리고 이력서를 고치려나? 혹은 저사람은 저 이름으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다소 개인적인 것들과 커리어적인 것들이 뒤섞인 호기심이 들었다.
그의 독서모임의 아젠다도 꽤 맘에 들었다. 본인을 '구루'라 여기지 않고, 야매 탐정처럼 '상담소'를 열었다. 어차피 방법은 개인이 찾을 것이고, 그것을 가르쳐 줄 수도, 다 알지도 못하면서 어설픈 해법을 줄수도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동료였다면 좋은 친구였을 것이고, 선배였다면 무턱대고 믿고 따르기 좋은 어른이었을 것이고, 리더였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나 참 리더 복 있다고 말하고 다녔을 법한 사람이었다. IT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플랫폼 회사에서 브랜딩을 위한 기획을 해 본 사람의 티가 났다. 세상의 모든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첫날 그는 아주 맛있는 빵집에서 이른 오후즈음이면 다 팔려버리는 빵을 사와 다 함께 먹자며 빵 봉지를 풀었다. 이스트향과 담백한 질감이 질리지 않는 빵처럼, 모임장은 세상의 모든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본 것 마냥 각자 툭,툭 하고 뱉어내는 이야기들에서 오바스럽지 않은 좋은 질문거리들을 찾아냈다. 각자의 타이밍에 풀어내는 자기고백시간엔, 오로지 그를 보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었다. 내 이야기가 시작되면 그는 모임장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를 듣고있는 사람들 속에서 훌륭한 관객 역할을 했다. 참 신기했다. 그는 이것을 자연스럽게 해내는걸까, 아니면 노력하는 것일까.
그런 사람이 내 이름과 같아서 좋았다. 세상에 이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다 한결같이 제 몫을 해내고 있고, 나는 그중 한 사람을 만난 것이구나.메타버스 아바타 꾸미기에서 볼 법한 색감이 알록달록하고 품이 넉넉한 예쁜 옷과 양말과 목도리를 한 그를 볼때면, 겨우 몇 살 차이나 난다고 나도 저런 위트있는 색감이 잘 받는 어른이 되어야지-라고 생각했다.
계엄이라는 희대의 해프닝이 있었던 다음날은 회사의 창립기념일이라 평일에 쉬는 날이었다. 오래된 친구와 잠시 서촌에서 만나고, 모임장과 이불과 섬유를 파는 회사의 에스프레소바에서 커피챗을 나누게 되었을때, 나는 그가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업계 사람을 만난다기보다는 학생이 선생님을 만나는 기분이었다. 친구로 만나고 싶었으나, 자꾸 고민을 던지고 고민에 대한 조언을 받는 대화 패턴이 튀어나왔다. 그것마저도 너무 재미있어서 에스프레소를 몇 잔이나 비웠으나. 그와 더 깊이있는 수다가 가능하려면, 나도 내 것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내 것이란, 회사에서의 나의 산출물 외에 내 삶을 투영할 수 있는 무언가.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나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이 모임은 많이 추워지기 전부터 시작해서 꽤 껴입어야 하는 겨울에 끝났는데, 오프라인 모임에서는 주로 작은 각자의 방이 주어져 다함께 한곳,한곳씩 열어보는 각자의 마음의 방 투어같은 느낌이었다면, 앞서 언급한 다소 편한 수다방인 '3분커리어'에서는,다들 이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별 것 아닌 일상을 올리거나, 누군가가 쏘아올린 아젠다에 다같이 반응하거나, 혹은 고민 이야기를 이어가기도 했다. 다들 추진력이 100%는 아니었지만, 각자의 10%씩을 모두 모아 100%를 만들고자 한 노력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나였다. 누군가들에게 초라한 나를 명랑하게 이야기 해 본 경험은 앞으로도 흔치 않을 것이라는것을 알아서, 그리고 자주는 아니었지만 약 3-4개월이라는 시간동안 나라는 사람의 그 시점의 서사를 들어준 사람들의 모임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 여겨서, 그 방의 동명이인 둘은 자주 수다거리를 던진 것 같다.
그중 하나가 바로 나의 면접경험담이었다. 그때당시의 나는 내가 세상이 원하는 직무인지, 그리고 그에 맞는 능력을 갖춘 것인지 매우 불안했다. 그 해 상반기에 커리어 10년차에 해낸 한 프로젝트에 대한 세상의 평가도 매우 궁금했다. 그것을 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직의 프로세스를 경험해보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는 단 한 곳만 서류에 붙었다. 다만 신기하게도 매우 뜬금없이 AI면접부터 시작해서, 과제제출-1차화상면접-2차면접 이라는 긴 프로세스를 겪어야 했던 2.5개월에 걸친 긴 여정이 독서모임의 시기와 우연하게도 겹쳤었는데, 이 독특하고 신기했던 AI면접과 1차화상면접(코로나 초반 시기와 맞물려 이직을 해서, 화상면접을 볼 기회가 없었다)에 대한 경험담을 풀 곳이 도무지 없었었다. 직장동료에게 풀었다간 소문이 날 거고, 이직이나 커리어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묶인 것이 아닌 친구들에게는 다소 뜬구름일 것이며, 집에서만 이야기하기에는 이 이야기들은 너무 흥미진진했다. 3분커리어 방에서는 그 얘기를 하기에 적합했다. 적당하게 나를 아는 사람들, 커리어와 연계되어 이직 또한 관심이 있거나 겪어본 사람들, 그리고 어떤 아젠다이든 일단 던지는 사람에게 호응을 하는 이 분위기.
그래서, 대체 이 글의 제목이 왜 [어우씨 왜 폰으로는 잘만 써지던 글이] 인지 처음으로 되돌아가보면.
나는 그때 AI면접과 화상면접에 대한 수다거리를 펜시브에 기억을 저장하듯 최대한 곧바로,최대한 자세히, 최대한 나의 주관으로 메모하고 이 이야기를 '3분커리어'방에 공유했었다. 1차화상면접을 본 날은, 집 거실에서 윗도리는 자켓 아랫도리는 수면바지를 입은 채 땀에 흠뻑 절어 상기된 상태로 진이 빠져 배달음식을 시킨 뒤 소파에 털썩 누워 미친듯이 '3분커리어' 카톡창에 후기를 남겼다. 어디에도 자세히 이야기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사람들의 반응도 기대했지만 이 이야기를 하나의 덩어리 글로 남길 수 있다는게 즐거웠다. 특히 그 면접을 겪고 난 직후에 쓴 글은, 생각을 하고 쓴 것이라기보다는 체험을 기록하는데 가까웠다. 그게 그때는 재미있었다.
그래서, 대체 이 글의 제목이 왜 [어우씨 왜 폰으로는 잘만 써지던 글이] 인지 처음으로 다시 되돌아가보면.
그때 모임장이 내게 했던 얘기가 있다. 그게 그 때인 것인지, 아니면 그 이후 모임이 있을때 직접 한 얘기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직도 좋지만 글을 쓰면 좋겠다'고. 그리고 나는 그때 이렇게 답했던 것 같다. '소파에서 폰으로 쓸 땐 잘 되는데, 각잡고 쓰려면 잘 안된다'. 그에 대한 그의 대답도 기억이 난다. '그럼 그냥 그렇게 소파에 누워서 폰으로 쓰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제 얼굴도 흐릿해지는 누군가들도 말했다. 내가 쓴 글이 재미있다고. 마치 내가 말하는 말투가 들린다고.
사실 지난 몇 년간, 누군가가 나의 존재 가치를 학벌이 아니라, 직장이 아니라, 직무가 아니라, 내가 순수하게 지니고 있을 지 모를 나의 무언가로 이야기 해 준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좋은학교 나온것 아니냐는 칭찬. 지금 네가 다니는 회사가 아주 잘 나간다라는 칭찬. 네 업무는 굉장히 트렌디하지 않느냐는 칭찬. 그건 내가 사회에서 받고 싶어한 인정들을 그들 또한 '사회적으로 칭찬'해 준 것일뿐, 만약에 내가 학교를 숨기고, 회사를 숨기고, 업무를 숨겼을때 과연 그들은 나에게 어떤 칭찬을 해 줄 것인가. 늘 초라하게 느껴졌다.
물론 이 모임의 사람들은 이미 내가 어떤 직장과, 어떤 직무에 있는지 어렴풋이 혹은 명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고, 분명 나는 초라하고 후진 나 자신에 대한 자기고백을 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표현과 달리 나 자신을 굉장히 자랑스러워 하고 있음을 은연중에 내비쳤기 때문에 그들 또한 그런 이야기들을 해 준 것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을 만큼, 하도 오랜만에 내가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이 오롯이 가진 무언가에 칭찬받은 기분이었다.
이직보다 글을 쓰면 좋겠다 라는 말은 사실 그 이후의 나를 편안하게도,게으르게도 만들었다. 다소 열을 올렸던 가을-겨울의 나의 몸값찾기는 올해 2월의 중반이 지나가는 지금까지도 소강상태로, 채용공고들을 보아도 탁 하고 끌리는 곳들이 없다.사실은 아직 내가 누군지, 뭘 해야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글의 경우엔, 나의 우려와 같이 각잡고 쓰려다가 단 한편도 쓰지 못한 채 3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필을 받거나 감정을 잡거나 혹은 영감이 떠오른 순간은 많았다. 그러나 그것을 그렇게 '말로 정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인위적이었다. 내가 글을 쓴다고 인식하는 순간부터, 글이 써지지 않았다. 뭐 그리 대단한 작가라고 그런 것들이 영향을 주었겠느냐만은. 인스타 스토리에 짤막하게 한 줄씩 남기는 것들만 재미있었다. 긴 글은 쓰려다가도 퇴근 후 복잡해진 머릿속을 해소하는 1순위 용도로는 선택되지 않았다.
그러면 오늘은 무슨 날이냐고?
오늘은 월요일도 금요일도 아닌 화요일의 연차다. 주말근무 대신 얻은 날로, 하루종일 집에 누워있으면 브이로그만 백 개 정도 보다 하루가 끝날 것 같아서 집 근처 카페로 나와 커피까지 주는 평일 브런치를 먹고, 읽으려고 가져온 책은 노트북 받침대로 쓰고, 햇살이 강하다가 져 가는 낮과 오후의 시간을 한 자리에서 보내고 있다.
오늘은 노트북으로도 글이 써진다. 폰으로는 글을 신나게 갈길 수 있다. 폰으로 쓰는 내 글은 문장과 단어가 눈과 머리에 확확 박힌다. 그래서 더 직관적이고, 더 좋은 표현을 손끝으로 쓸 수 있다. 노트북으로는 자꾸 썼다,지웠다를 한다. 그런데 그대신 긴 글을 쓸 수 있다. 내 글이 그대로 책이 되는 느낌이다. 누군가가 이 책을 읽어주기를 바라게 된다.
언젠가 이 브런치에 내가 스스로 좋아할 만큼의 글이 쌓이면 좋겠다. 그동안 인스타그램 부계정을 꽤 만들었다가 포기했다. 어떤 계정은 내가 사는 지역의 맛집을 찾아다니는 페르소나로, 어떤 계정은 영감을 수집하는 마케터적인 계정으로. 내 개인 계정은 그중 가장 나 답지만 나답지 못한 것들이 눈치를 보아가며 슬쩍 띄워졌다가 24시간 내에 사라지는 계정으로.
브런치는 내(이름과 같은 사람)가 나에게 어떻게든 글을 쓰라는 이야기를 해 준 덕으로 시작한다. 사실 그 말이 계속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그의 글을 좋아하기 때문에 존경하는 사람이 나에게도 글을 쓰라고 해서 좋다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글을 쓰다보니 알았다. 사실 글을 쓰라는 것은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떄 내가 할머니댁에서 태양볕에 뜨겁게 달궈진 슬리퍼를 신으려다가 뜨거워서 냅다 벗어버렸던 과정을 일기로 쓴 것을 보고 엄마가 내게 했던 말임을. 생애 처음으로 나에게 있을 지 모를 그 무언가를, 내가 어떤 직업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 내게 남아있을 나의 재능을 꺼내 준 말이라는 것을. 그때가 아마 아홉살이었고, 나는 아직도 엄마의 그 첫 칭찬을 잊지 않고 있다.
그 독서모임은 최근 지역을 옮겨서, 아마 이번주에 새로 시작했거나 다음주에 새롭게 시작할 것이다. 나는 그 모임의 참여를 연장하지 않았다. 물리적으로 거리가 먼 곳이라는 핑계 외에, 그곳에서는 이정도까지만 하자-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큰 이유였다. 같은 이야기들을 반복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 것도 큰 이유 중 하나였다. 그곳은 그 시기에 내게 필요했던 모임과,사람들을 만난 것으로 남기기로 했다. 그리고 그 독서모임의 모임장은 앞으로 어떤방식이 될 지 모르겠지만, 동등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계속 수다를 떠는 바운더리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의 연재가 그 바운더리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작든 크든 어떠한 단서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 폰이 아니라 노트북으로 글을 썼고, 꽤 오래 그리고 길게 글을 썼다. 물론 중간에 업무 카톡과 식기전에 먹어야 하는 리조또와 얼음까지 씹어먹어버린 아메리카노의 방해가 있었지만, 글을 완성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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