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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밀리H Sep 27. 2022

02. 삐그덕 삐그덕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가 태어날 때부터 이미 많이 늙어버린 아빠는 삐그덕 거리는 녹슨 양철통 같았다.


움직일 때마다 내는 삐그덕 삐그덕 소리는 굉장히 요란하기만 할 뿐 실속 없어 보였다.


삶의 경험이나 지혜는 내 또래 부모님들에 비해서 월등히 많았을지 몰라도, 신기술이나 강한 체력을 요구하는 일에는 늘 자신이 없는 모습만 기억에 남아있다.


아빠는 애써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감추려 임시방편의 기름칠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요란한 소리를 냈다. 


뭐...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송구한 표현이지만 생각 없는 꼬마 눈에는 늙은 아빠가 삐그덕 소리가 나는 녹슨 양철통 같아 보였다.


아빠는 어릴 적에 늘 하는 말이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움직이는 어린이날, 명절 등 다 같이 쉬는 날에 괜히 여기저기 놀러 갔다가 눈물 쏟는 일 생긴다!"


남들이랑 똑같이 움직이면 결코 좋은 일이 생길 수가 없다는 아빠의 지론 때문에 어린이날이나 명절 등에는 집콕했던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 가족의 대빵인 아빠의 말을 누가 반기를 들 수 있었을까?


한 번은 가족끼리 뭘 기념했던 건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현) 에버랜드, (구) 자연농원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엄마는 군대 갔다 온 이후로 한쪽 무릎이 안 좋아져서 양쪽 다리 두께가 다른 사람을 하루 온종일 서서 돌아다니게 만든 것도 모자라 언니를 데리고 무서운 롤러코스터를 타러 갔다. 


아빠는 그런 아내를 대신해 39살 차이 나는 딸내미 뒤치다꺼리를 하다가, 신나지도 않은 알록달록 유아용 놀이기구를 타려고 하니 몸서리가 쳐졌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물어보니 아빠는 놀이기구 타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평소에 아빠는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사람처럼 겁도 없이 모험을 즐기고 화도 잘 내고 목소리도 쩌렁쩌렁 울릴 만큼 커서 세상 무서울 게 없는 사람이라고만 여겼다.


그래서 놀이기구를 아주 잘 타는데 어린 나 때문에 심기가 불편해진 줄로만 알았지...


사실 그날 놀이공원 나들이는 배드엔딩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감정을 숨기는 일이 없었던 아빠는 어린 자녀가 보는 앞에서 짜증이란 짜증은 다 내더니 가는 길이 멀다며 빨리 출발해야 한다는 말로 으름장을 놓기 시작했다. 비교적 체력이 좋을 수밖에 없었던 아빠보다 11살 젊은 엄마는 남편이 롤러코스터를 같이 타주 지도 않을 거면서 티켓 뽕도 못 뽑게 이른 귀가를 종용한다면서 화가 단단히 났었다.


언니랑 나는 그 상태로 집에 가는 2시간 반 동안 두 분이서 말로 싸우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40-50대 때도 이랬는데... 아빠 나이 70이 넘으니 삐그덕 삐그덕 소리가 더욱 요란해졌다.


판단력도 흐려지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이 두려워서 움츠러드는 것을 옆에 있는 내가 보고 느낄 정도이다.


여전히 목소리는 크고 우렁차지만 발음이 새고 이제는 무릎 보호대를 차지 않으면 오래 걷는 것을 불편해한다.


이런 모습들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나조차도 세월이 야속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내가 가끔씩 20년도 더 된 그날의 기억을 끄집어내려고 하면 아빠는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들기만 한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이 그랬을 거라면서 말이다.




또 한 번의 녹슨 양철통 같은 일은 내가 12살이 됐을 때였다.


세기말까지는 그렇게 잠잠하다가, 21세기를 맞이하면서 무슨 바람이 불었던 건지 아빠는 쉰 살이 넘어서 처음으로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덕분에 늦게 배운 게 가장 무섭다는 말과 일치하는 일이 일어났다.


오토매틱은 심심하다면서 중고 스틱 차를 구매한 후 한동안 열심히 주행 연습을 하러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잔뜩 흥분한 아빠가 가족들을 태우고 강화도에 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기갈나게 운전할 자신이 있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엄청 자신에 차 있던 아빠의 모습과는 달리 차 안에 분위기는 살얼음판 그 자체였다.


편안하게 있으라고 할 때는 언제고 운전하는데 방해가 된다면서 틈만 나면 신경질을 내더니 모두들 찍소리도 못하게 만들었다.


원하는 장소에 도착해서도 넓은 공간에서 주차하는데 15분 이상이 걸리는 건 기본이고, 평소에도 거친 욕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욕쟁이 아저씨인데 운전대를 잡으니 정도가 더 심해져서 가족 모두의 심장이 벌렁벌렁거리게 만들었다.


나한테 사비가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아빠 차에서 내려 다른 교통수단을 타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스스로 운전대를 잡기 전까지는 그렇게 택시 기사님들한테 운전 훈수를 두더니 결국에는 이렇게 되돌아오는 거라면서 직접 경험해 보기 전까지는 남을 함부로 평가하지 말자는 인생 교훈을 얻게 됐다.

  

친구들 아빠는 자녀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운전 고수여서 나처럼 이런 진귀한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하는데...


이런 인생 레슨이 누구보다 값진 경험인 거... 맞는 거겠지?


나의 경우를 보더라도 약 11년 전에 운전면허는 겨우 땄지만 여전히 운전을 못한다. 면허증은 그냥 신분 확인 용도로만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유난스러웠던 아빠의 초보운전 시절과 여전히 거칠고 투박한 운전실력인 걸 고려해 봤을 때 나의 운전 행태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있어서 운전을 시작조차 안 하고 있다.


"왜 운전을 안 해? 처음에는 다 어색하고 겁나고 그렇지 하다 보면 다 돼. 그러니까 빨리 운전 시작해."


우리 집 50년생 어르신은 발전 없는 운전실력을 갖고 있으면서 완전 조무래기인 내 앞에서는 없던 자신감도 생기는 건지 이런 조언들을 과감하게 내뱉는다.


나는 그런 어르신의 자만함을 보면 이상하리만큼 두뇌회전이 빠르게 돌아가면서 잔잔한 웃음이 새어 나온다.  

"운전을 할 줄 알면 편하기는 하지만 자동차란 자고로 목숨을 담보로 거금을 투자해야 하는 무시무시한 문물이야..."라고 말했더니


"다 그러면서 운전하는 거야. 뭐 그렇게 겁을 내냐?"라는 비아냥거리는 말이 돌아왔다.


그래서 아빠한테 되물었다.


"운전대만 잡으면 세상 욕을 다하는 것도 모자라서 접촉사고, 잦은 속도위반, 주차위반, 신호위반 딱지를 떼는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닌 거 같은데?"


그 아빠에 그 딸이라고...

가족 중에 누군가가 의기양양해 있으면 그 기를 있는 힘껏 눌러주고 싶은 고약한 심보를 가지고 있다.


육두문자는 아니었지만 자녀와 대화 중에 팩트 폭격을 당한 아빠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니까 나 같은 자녀한테 어릴 적부터 삐그덕 거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니었던 거야...


애써 기름칠할 생각 하지 마.


다 티나 아빠...


물론, 아빠가 뒤늦은 나이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노력을 해오고 있다는 걸 부정하는 건 아니다.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고, 여전히 분수에 맞게 성실하게 살고 있다.


다만... 항상 모든 일에 뒤끝이 좋지 않았고, 딸인 내가 쓸데없이 기억력이 좋은 게 흠이라면 최악의 흠이다.


내가 아빠 옆에서 그런 걸 똑똑히 지켜봐 왔기 때문에 우리 집 50년생 어르신은 수고롭고 억울함만 가득한 인생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내 마음 한편에 아주 소박한 '미안함'이 자리 잡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철저하게 자기 객관화하는데 푹 빠진 89년생 딸은 이조차도 50년생 아빠에게 최선을 다하는 중인 거다.


아빠, 미안한데 이게 진실이고 사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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