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영화 '스틸 라이프'
장르 : 드라마
국가 : 영국, 이탈리아
러닝타임 : 93분
개봉 : 2014.06.05
감독 : 우베르토 파솔리니
주연 : 에디 마산, 조앤 프로갓
시청연령 : 12세 관람가
한 줄 소개 : 고독사를 당한 사람들의 장례를 치러주는 한 공무원의 이야기
한 줄 감상평 : 내가 죽는다면...
작년 상반기.
급작스러운 국제적 이슈로 인해 집에만 머무는 일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유튜브 피드에 운명을 맡길 때가 많았다. 그때 당시 내가 주로 봤던 영상들은 <해리포터> 시리즈 세계관을 정리한 것들이었고, 유튜브 알고리즘이 적용되면서 여러 영화 리뷰 유튜버 영상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다 얻어걸린 영화 <스틸 라이프>
솔직히 내가 스스로 찾아봤다면 끝까지 잘 봤을까 싶을 정도로 매우 정적이다 못해 회색빛의 영화다. 물론 영화 포스터만 보고 아예 재생할 시도조차 안 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최근에 본 영화 중에 러닝타임이 최고로 짧았다. 그래서 부담 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요즘에는 뭐만 하면 러닝타임이 거의 120분 넘기는 일이 많기 때문에 93분은 상대적으로 덜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여하튼, 이 영화는 여느 일본 영화처럼 잔잔하게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이 특징이지만 마지막 한 장면만으로도 다시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게 만들고 많은 얘기를 할 수 있게 만든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주인공 존 메이의 직업은 다소 특이했다.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홀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가족과 지인들을 수소문해서 장례식에 초대하거나 부를 사람이 없는 경우 존 메이 혼자서 장례를 치른다.
런던에 케닝턴 구청 소속 22년 차 공무원인 존 메이는 장례식을 진행할 때 필요한 추도문을 작성하기 위해 잊힌 의뢰인의 유품을 단서 삼아 작업을 진행한다. 정성껏 작성한 추도문을 감명 깊게 들어주는 사람 없고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지만 언제나 흔들림 없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어느 날, 여느 소설이나 영화나 마찬가지로 매일 반복되는 삶을 사는 주인공에게 뜻밖의 의뢰인을 받게 된다.
동시에 새로운 상사의 등장으로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존 메이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 처음으로 사무실에서 벗어나 전국을 돌아다니며 의뢰인의 삶을 뒤쫓으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누군가는 자신의 죽음으로 존재를 더욱 부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자신의 죽음이 어느 누구에게도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고독사를 한 사람들에게는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길고 긴 세월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겠지만, 인생 끝에 멈춰있는 사람 위한 장례식에 찾아오는 이 한 명 없는 장면들을 보면서 슬픈 감정을 느꼈다. 더욱이 존 메이 혼자 장례식을 준비하고 추도문을 읽는 모습을 보며 죽은 사람들을 대신에 고맙기도 하고, 또 깊은 연민을 느껴졌다.
극 중에서 죽은 사람들은 누군가의 가족이자 사랑하는 사람이었을 텐데, 끝이 이렇게까지 격정적으로 외로울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개개인이 나름의 찬란했던 순간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인간의 인생인데 아무도 참석하지 않은 장례식장에는 추도문과 노래만이 흐를 때, 과연 내 삶의 끝에는 누구와 함께 해줄지를 생각해보게 됐다.

새로 부임한 상사는 존 메이에게 시원하게 정리해고 통보를 날렸다. 여러 방면으로 따져봤을 때 존 메이의 업무의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하겠고 쓸 데 없이 시간과 예산을 낭비하는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상사의 개인적인 판단과 일방적인 통보로 존 메이가 22년 동안 쌓아 올린 가치관을 흔들어 놓았다.
상사의 생각은 이러했다. 장례식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며, 고독사를 한 사람들에게는 더욱이 장례식이 필요 없다고 말했다. 결국 아무도 찾지 않는 고인에게 장례식은 사치에 불과하다는 말이었다.
어떻게 보면 아예 틀린 말도 아니다.
생전에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의 유품을 찾아서 추도문을 작성하고 장례식을 치른다는 것이 헛수고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상사의 말을 달리 생각해보면 장례식은 산 사람이 망자가 가는 길을 배웅하는 하나의 퍼포먼스라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기 때문에 뭔가 기분이 언짢았다.
타인의 죽음으로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흘리고 고통을 느끼느니 끝까지 모르는 게 더 낫지 않느냐 말과 함께 죽었으면 죽은 거라고 말하는 그 상사의 뒤통수를 한대 시원하게 갈기고 싶었다.
상사의 말이 완벽하게 틀린 말은 아니면서도 절대 이해하고 싶지 않은 대사였기 때문에 나 혼자 마음속으로 수많은 반론을 제기하면서 봤다.

존 메이가 카페에서 홍차를 주문했는데 매장 직원이 핫초코 권유하며 훅- 치고 들어오는 장면이 있었다. 존 메이는 거절하지 못하고 핫 초콜릿을 구매했지만 결국 마시지는 다 마시지는 못했다.
익숙한 것에 기대어 살고 싶지만 언젠가는 새로운 일들이 생겨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일과 마주해야 한다. 그러면서 익숙하던 것의 마지막 순간이 되면 이전에는 보지 못한 사실에 대해 더욱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마지막 의뢰인의 삶을 뒤쫓으면서 비로소 존 메이도 다른 시각에서 삶을 내다봤다.
그러면서 느꼈던 것은
사람은 마지막 순간이 되었을 때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고 교훈을 얻으려 한다.
그만큼 마지막은 늘 오묘하다.

스포는 날리지 않지만 마지막 장면은 남겨놓는다.
이 영화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사전 지식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이 이미지 또한 스포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마지막 장면을 통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내가 사후세계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사람이 옳은 일을 하다 죽어야 한다면 과연 현재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제목에서부터 굉장히 중의적이에요.
정물화(still-life)와 같이 멈춰 있는 시간이 자리 잡고 있으면서도 여전히(still) 누군가의 삶(life)은 계속 흐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인간이라면 언젠가 죽기 마련이지만 그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됐고, 나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했을 때 지금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해볼 수 있었어요.
이 영화를 감상해보시고 존 메이의 결말과 마지막 장면에 대해 다양한 감정을 느껴보실 수 있길 바랍니다! 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