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에의 강요
『깊이에의 강요』 독서토론 논제
(『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1996, 열린책들)
젊은 여인은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애석하게도 깊이가 없다는 평론가의 말을 듣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여인도 파티에서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고는 깊은 절망에 빠집니다. 그녀는 그림을 그릴 수도 없고, 잠을 자지 못했으며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한때 그림을 잘 그렸던 젊은 여인은 순식간에 몰락하게 되고 결국에는 죽음에 이릅니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조차 평론가는 '평가' 합니다.
1) 젊은 여인의 다른 사람의 평가에 갇혀 자신의 예술성을 잃고 '깊이'에 집착합니다. '깊이'를 결정하는 기준과 주체는 누구일까요? 여러분은 이 '깊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2) 젊은 여인의 죽음의 원인이 무엇일까요?
3)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SNS, 친구, 직장, 심지어 가족 내에서도 타인의 시선과 평가를 의식하며 살아갑니다. 이러한 '평가'에 갇히는 현상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 젊은 여류 화가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고, 그녀의 작품들은 첫눈에 많은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것들은 애석하게도 깊이가 없다. (p.11)
「실례지만, 이 그림에 깊이가 있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미술 교사는 그녀를 보고 비죽이 웃으면서 말했다.
「나를 놀리실 생각이라면, 그보다는 더 나은 것을 생각하셔야죠, 부인.」
학생들이 깔깔대며 웃었다. 젊은 여인은 집으로 가서 몹시 비통하게 울었다. (p.13)
「나를 내버려두란 말이에요! 나는 깊이가 없어요!」
소박하게 보이는 그녀의 초기 작품들에서 이미 충격적인 분열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 숙명적인, 아니 무자비하다고 말하고 싶은 그 깊이에의 강요를? (p.17)
체스 고수 장은 알 수 없는 젊은 남자와 체스 대결을 펼칩니다. 젊은 남자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를 보고 있는 사람들은 위대한 천재적 재능을 타고난 비범한 인물을 대하고 있다는 확신을 합니다. 그리고 그가 장을 이겨주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젊은이와 사람들의 바람과는 달리 장이 이기고 맙니다.
1) 사람들은 젊은 남자를 잘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겉모습과 행동만 보고 체스 고수인 장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기대감을 가집니다. 우리는 이들처럼 사람을 '겉모습'만 가지고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편견이 어떻게 작용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2) 장도 젊은 남자에 대해 선입견을 품고 승부를 이어갑니다. 그는 마침내 다시 승리했지만, 이 승리가 그의 생애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것으로 생각합니다. 장에게 '승부'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3) 여러분도 겉모습만 보고 판단했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모여 있는 사람들의 관심은 도전자, 창백한 얼굴에 권태롭다는 듯이 냉담한 눈빛을 하고 있는 검은 눈동자, 검은 머리의 젊은 남자에게 쏠려 있었다. 그는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표정의 변화가 전혀 없었으며, 이따금 불붙이지 않은 담배를 이리저리 손가락 사이로 굴렸다. 지금까지 그가 체스 두는 것을 본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도 창백하고 냉담한 표정으로 말없이 체스판에 앉아 말을 배열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에게서는 강한 힘이 발산되었다. (p.24)
그 남자의 자신감, 천재성, 그리고 젊음에서 오는 후광은 그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자신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낯선 이에게 감탄했으며, 심지어는 그가 승리해서 가능한 한 인상적이고 천재적인 방법으로 몇 년 전부터 기다리고 기다려 온 참패를 마침내 자신, 장에게 안겨 주기를 바랐었다고 고백해야 했다. 그러면 마침내 그는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서 모든 사람을 물리쳐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났을 것이며, 구경하고 있던 악의에 찬 군상들, 이 시기심 넘치는 패거리들에게 만족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평온을 되찾았을 것이다. (p.44)
작가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잊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찾아 헤매는, '문학적 건망증'에 시달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내 인생을 변화시킨 책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저자와 내용을 잊어버리는 상태에서 감히 답변할 수 없다고 합니다. 독서는 서서히 스며드는 활동이기에 자신이 변화하는 과정을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도 말합니다.
1) 인상 깊어 기억에 새겨지거나 인생을 바꿔 놓았을 만한 책이 있었나요?
2) 작가가 이야기하는 '문학적 건망증'은 문학에만 국한되는 이야기일까요? 이미 겪었던 시행착오나 지식을 잊어버리고 헤매는 경험을 한 적이 있나요? 이런 건망증의 원인은 무엇이고 극복할 방법이 있을까요?
3) '문학적 건망증'으로 내용과, 저자, 느낌이 남아 있지 않는다면 우리는 왜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일까요?
질문이 무엇이었더라? 아 그렇지, 어떤 책이 내게 감명을 주고, 인상에 남아 마음 깊이 아로새겨지고, 송두리째 뒤흔들어 <인생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거나>, <지금까지의 생활을 뒤바꾸어 놓았는가>하는 것이었지. (p.83)
너는 네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내 삶을 변화시켰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책들은 어떠한가? (p.85)
어렴풋이 떠오르는 인용문을 찾으려면, 나는 며칠이고 책을 뒤적인다. 저자를 잊어버린 데다가, 이 책 저 책 찾고 있는 동안 생면부지의 작가들이 써놓은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 글들 가운데서 헤매고, 결국에는 원래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조차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정신 상태로 어떤 책이 내 인생을 변화시켰느냐는 질문에 어떻게 감히 답변할 수 있겠는가? 그런 책이 전혀 없었다고? 모든 책이 다 그렇다고? 어떤 한권의 책이라고? 나는 모른다. (p.92)
그러나 혹시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해 이렇게 생각해 본다-(인생에서처럼) 책을 읽을 때에도 인생 항로의 변경이나 돌연한 변화가 그리 멀리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보다 독서는 서서히 스며드는 활동일 수도 있다. 의식 깊이 빨려 들긴 하지만 눈에 띄지 않게 서서히 용해되기 때문에 과정을 몸으로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문학의 건망증으로 고생하는 독자는 독서를 통해 변화하면서도, 독서하는 동안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말 해 줄 수 있는 두뇌의 비판 중추가 함께 변하기 때문에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p.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