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아침부터 바빴다. 병동에서 급격하게 의식이 저하되는 환자가 있어 CT를 찍어보니 수두증이 생겼고, 바로 중환자실로 내려왔다. 오자마자 기관 삽관을 하곤 머리에 찬 물을 빼기 위해 응급 수술을 보냈다. 환자는 수술 후에 의식은 있었지만 호흡이 일정치 않아 기관삽관을 유지한 채 밤을 보냈다. 계속되는 과호흡으로 진정제의 용량은 최대치로도 모자라 여러 종류를 써야 했다. 내가 담당 간호사가 된 건 그녀가 힘든 밤을 보낸 다음 날 아침이었 다. 환자는 침대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었고, 이미 올릴 만큼 올린 진정제는 효과가 없는지 다가간 나의 옷을 잡거나 팔을 꼬집었다. 밤새 이렇게 몸부림치다 진정제에 잠겨 잠들기를 반복했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안 좋았다. 현재 치료 중임을 설명했지만 계속해서 기관 삽관을 뽑으려 하여 신체 보호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한 손에 펜을 쥐여주니 목이 아프다 썼다. 기관 삽관한 상태로 목에 힘을 주고 말을 하려고 하면 자극으로 인해 아팠을 거다. 혹은 아픔보단 말이 나오지 않는 답답함이 그녀를 더 괴롭혔을지도 모른다. 다행 히 주치의가 출근하자마자 기관 삽관부터 빼자고 했다. 모든 진정제를 끊고 발관 한 뒤에도 호흡이 잘 유지되었다. 의식이 없는 상태로 중환자실에 내려왔다 보니 내게 계속해서 날짜와 장소를 물었다. 나는 반복해서 대답을 해주었는데, 그녀는 들을 때마다 놀라며 오늘이 자신의 12살 아들 생일이라고 대답했다. 배우자 분과의 통화에서 환자분은 아주 작고 여린 목소리로 오직 아들 걱정만 했다. 밥 잘 챙겨주고, 생일파티 재밌게 해 주고, 놀러 오는 친구들이 원하는 거 다 하게 해 주라고. 듣던 나는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넘치는 일을 처리해야 하니 감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했다.
그날 오후, 무의식 환자분의 시술을 보조하며 동료와 다이어트 얘기를 했다. 모든 시술이 끝나고 정리할 때쯤 옆자리의 그녀가 날 불렀다. 필요한 게 있냐는 내 질문에 “선생님 살 안 빼도 예뻐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냥 울컥했다. 그녀가 들을 수 있단 걸 신경 쓰지 않았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자신의 상황만으로도 힘들 텐데 내게 이런 말을 건네는 분이라면 얼마나 따뜻한 분일까 싶고, 내가 바쁘다는
이유로 환자들에게 짜증 내고 매몰찼던 순간이 생각났다. 환자분도 예쁘다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전이된 암과 긴 투병 생활로 너무나 마른 몸이 보였다. 내가 섣부르게 하는 말이 혹시라도 상처가 될까 봐 말이 쉽게 나가지 않았 다. 고작 35살, 나랑 얼마 차이 나지 않는 그녀는 정말 예뻤지만, 중환자실에서 그런 말을 내뱉으면 동정처럼 느낄까 머뭇거렸다. 결국엔 별말도 못 하 고 그저 감사하다고 웃어 보였다. 그 뒤로도 며칠을 담당 간호사와 환자로 함께 보냈다. 많이 호전된 그녀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나와 수다를 떨기도 하고, 가족들 이야기도 했다. 아버지가 주보호자로 늘 면회를 왔는데, 그녀는 아버지만 보면 세상이 밝아지게 웃었다. 어느 날은 아버지가 면회 시간에 늦 어 전화드리려는 찰나 제한된 중환자실의 문 너머로 뛰어오는 게 보였다. 그날 열차가 탈선되어 지연되면서 시간을 못 맞출까 봐 뛰었다고 한다. 알고 보니 아버지는 새벽 5시에 일어나 하루에 단 한 번, 30분만 허용되는 면회를 하러 대구에서부터 열차를 타고 날마다 오가셨던 거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나도 환자와 함께 면회 시간을 기다리게 됐다.
운이 좋게도, 내가 담당 간호사일 때 일반병동에 가게 됐다. 정말 잘 됐다 고 손을 잡아드렸는데 그녀는 내게 자신은 아들이 수능을 볼 때까지 혼수상 태가 되더라도 버티고 싶다고 하셨다. 이번에도 잘 해냈으니 하실 수 있다는 내 말에 얇은 팔을 뻗으며 “파이팅!”이라고 하셨다. 내게 쪽지도 남겼는데 “다이어트 따위 필요 없이 너무너무 예뻤던 간호사님. 목소리도 눈도 지금도 기억나요. 기저귀 힘들어할 때 칭찬해 주시고, 암흑 속에서 들리던 그 음성은 천사의 소리가 맞겠죠. 정말 고마웠어요”라고 쓰여 있었다.
간호 학생 시절, 취업 면접에서 나는 사람을 보는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과연 나는 지금 얼마나 그렇게 일하고 있을까? 나는 일 로시가 아닌 정말 그들을 사람으로 대했었나? 항상 환자들을 위해 일한다고 하면서도, 환자의 질병이 낫기를 이렇게 마음으로 느낀 적이 별로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은 늘 ‘생사’가 오가는 곳이라는 특수성을 갖는다. 독하 다는 방송국 놈들보다 더 독한 게 병원 놈들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독한 사람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오직 질병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을 궁리한 다. 그 현장을 보고 있자면 피가 낭자한 전쟁터와 비슷하다. CRRT와 ventilator, ECMO를 대표 무기로 삼아 크고 작은 시술과 수술로 이뤄진 전 장이다. 마지막까지 저승에 환자를 뺏기지 않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참전한 다. 최선을 다하지만 예기치 못한 게릴라 전투와 패배 앞에선 의료진도 사람 인지라 흔들릴 때도 있다. 그렇지만 또 다른 누군가의 전투를 위해 다시 일 어나야 하는 곳이다. 그녀를 통해 나는 내가 질병이 포커스가 아닌, 사람을 간호해야 한다는 걸 다시 새기게 되었다. 간호사에게 맡겨놨다는 듯이 헌신과 봉사를 요구하는 건 싫지만, 이 일은 결국 그런 마음 없이는 버틸 수 없는 환경인 거 같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아닌 내가, 나는 그저 나의 할 일을 하 는 것임에도 천사처럼 보일 수 있는 직업은 많지 않을 거다. 생각해 보면 천사 도 천사의 일을 하는 건데 일 자체만으로 선한 것이니 나도 일하며 늘 선을 행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내 손이 닿는 모든 곳이 누군가의 삶을 생으 로 끌어오기 위한 순간이라는 게 귀하게 느껴진다. 실제로는 천사보다는 백 의의 전사에 가깝도록 치열하지만, 오늘도 나는 그리고 우리는, 누군가를 죽 음으로부터 지켜주기 위해 다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