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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B Apr 20. 2023

수상한 전화

브런치에 대해 다시 한번 느낀 점

브런치에 올리는 글은 마감시한도 없을 뿐 아니라 아프다고 핑계를 대면 학교에 안 가게 해주는 마음 좋은 엄마를 가진것 처럼 푸근하게 느꼈었다.

그 푸근함은 때론 독이 될때도 있었다.

글을 써보겠다는 굳은 결의는 몸이 안 좋아서, 시간이 없어서, 쓸게 없어서라는 적당한 구실로 희석되어 마냥 푹신한 매트리스에서 누워 있고만 싶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공모전에 응모해 보라는 김 호연 작가의 글을 읽고 나에게 목표 의식과 동기부여를 주고 싶어 공모전 정보를 찾아보았다.

공모전 정보를 다 모아놓은 엽서시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내가 몰랐던 수많은 공모전들이 마감 날짜와 함께 올라와 있었다.

보는 순간 나의 도전정신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시험을 앞둔 학생 때처럼 공모전 별로 나와 있는 마감시한과 출판사, 주제에 대해 쭉 정리했다. 

3일 후에 마감시한인 공모전부터 급하게 준비했다. 그리고 그다음 달에 두 편, 그리고 4월에는 공모전 세 곳에 네 편 정도를 써야 했다. 

자발적 마감 시한을 가지고 썼던 브런치와 달리 공식적 마감 시한이 있는 공모전은 확실히 마음 가짐이 달랐다. 각각의 다른 공모전마다 어떤 글을 써야 할까 고민하는 것은 냉동고에 진열된 여러 가지 맛의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맛 보는 것처럼 설레임으로 다가왔다.

공모전을 위해 며칠간 쓰고 다듬고, 프린트해서 다시 읽어보고 고친 후 마감날 이메일로 파일첨부해서 send버튼을 누를때는 보살핌이 필요하지만 더이상 곁에 둘수 없는 아이를 멀리 보내는 심정이었다.

여러 편의 공모전에 글을 보낸 후, 평소엔 귀찮게만 생각했던 이메일을 매일 들여다보았다. 

혹시 공모전 수상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기대감은 실망을 안겨주었고, 매일 날아오는 광고성 이메일들을 신경질적으로 삭제해 나갔다.

그러던 토요일 오후,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로 휴대폰이 울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급하게 받았다.


"여보세요"

"문학 00입니다. 글 써서 보내셨죠, 잘 읽었습니다."

며칠 전에 글 두 편을 써서 공모전에 출품한 출판사였다.

"어머, 감사합니다."

"진정성이 느껴졌어요. 솔직하게 잘 쓰셨습니다. 글 두 편을 다 실어 드릴 텐데 조건이 있어요."

"그게 뭔가요?" 조건이라는 말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저희 잡지 구독권과 책 몇십 권 정도 사주시면 됩니다. "

"구독권이라면 기간은 어떻게 되고 금액은 얼마인가요?"

"평생 구독권 50만 원과 책은 열 권이든 스무 권이든 사주시면 됩니다. 모든 출판사가 다 이렇습니다."

내가 몇 날 며칠 공들여 쓴 두 편의 글을 실어주는 대신에 돈을 달라는 전화를 받고 , 나는 속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조건을 받아 들일수 없었다. 

나의 글 실력을 연마하기 위해 공모전에 응모했고, 상을 받게 되면 보상받는 느낌이리라 생각했다.

출판사에서 제시한 이런 조건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힘이 빠졌다.

내가 응모한 모든 공모전이 다 이러진 않겠지만 그중 한 공모전 주최 측에서 대가를 요구하는 전화를 받은 후 한동안 내가 진흙 속에 발을 디딘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글 쓰는 게 좋아서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마음 좋은 브런치에서 게으름을 부리다 나에게 좀 더 엄하고 싶어 공모전에 응모했다. 글쓰기라는 꿈이 대가성 합격이라는 현실과 충돌을 일으켜  몇 시간 동안 나의 머리는 불꽃이 번뜩이는 혼란스러움에 멍했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다. 브런치는 내게 뭐든 쓰라고 멍석을 깔아주고 있지 않은가. 대가를 바라지도 않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올릴 수 있게 해주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새삼스럽게 브런치의 존재에 대해 든든함을 느꼈다. 공모전에 보내는 글처럼 기한을 정해놓고 나만의 공모전은 브런치에서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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