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다 비슷하죠.
무언가에 애증(愛憎)을 가져본 적이 있나요?
사람일 수도 있고, 물건일 수도 있고 또는 추상적인 것일 수도 있겠죠. 저에게 있어 애증을 느끼게 하는 것은 바로 ‘택시 타기’ 인데요.
십 대 시절과 직장생활을 거쳐오며 수많은 택시들을 이용했었는데, 이에 대한 고찰을 해볼까 해요.
(**특정 사람이나 직업을 폄하하려는 목적은 절대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 개인적인 견해이니 참고만 해주세요.)
저에게 ‘택시 타기’에 관한 첫 기억은 고등학생 때 일인데요. 안타깝게도 ‘증(憎) ’의 관계가 먼저 형성되어 버렸지요. 그날도 아침 8시가 조금 안 된 시간이었을까요? 추운 겨울날, 바들바들 떨며 지나가는 택시를 잡으려 손을 흔들고 있었어요. 그런데 참 이상하죠? 왜 벌써 3대의 택시나 저를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거죠? ‘빈 차’라고 적힌 빨간 글씨가 무심히 휙휙 저를 지나갔어요. 이러다 정말 늦겠다, 싶은 저는 더 격렬히 손을 흔들었어요. 결국 한 택시가 서서히 서더니 저의 승차를 허락했어요.
하지만 전 타자마자,
‘에이 휴 참나… 아침부터 젊은 (여자) 학생이 타네. 원래 아침 첫 손님에 여자 태우면 안 되는데.. 쯧 ’
이런 꾸지람 아닌 꾸지람을 듣고 말았죠.
제가 여학생 이어서 잘못한 건가요?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미신을 아침 댓바람부터 들으니 정말 기분이 나쁘고 속상하더라고요.
이 소동을 친구들에게 말하니 너도 나도 한 번씩 겪었던 일이라는 것에 한 번 더 충격을 받았어요.
또 다른 ‘증(憎) ’을 만들었던 사건은 20대 초반이었을 때인데요. 친구들과 불타는 주말을 보낸 후 시내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택시를 탄 후 약간의 알코올 섭취에 조금 기분이 업되어 있던 저는 창 밖만 바라보며 시트에 몸을 기대고 있었죠. 그런데 평소에 자주 이용하던 길이 아닌, 정말 누가 봐도 돌아서 간다 할 정도로 다른 길로 운전을 하는 게 아니겠어요?
‘ 엇! 기사님 이 길 말고 저 쪽 윗 길로 가시면 더 빨라요. ‘
‘ 아이고 젊은 아가씨가 어째 길도 잘 아네? 택시 많이 타나 봐? ‘
하시더니, 다시 제가 말한 그 길로 가는 게 아니겠어요? 돌아간 덕분에 택시 요금은 당연히 더 부과됐고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속으론 화가 나더라고요. 울컥하는 마음을 겨우 붙잡으며 집에 도착했고 결제를 위해 카드를 냈는데,
‘아이씨.. 카드 입니꺼?? 아니 카드면 미리 말을 해야지 아이 카드 안 받는데! 현금 없습니까??? ‘
‘ 네? 현금.. 없는데요. 카드밖에 없어요. ‘
‘ 아이 참나 이 짧은 거리 가는데 카드 내면 안되지! 카드 결제하면 수수료 떼고 뭐하고 하면 남는 게 없는데 에이 참나... 쯧. ’
결국엔 카드로 결제 하긴 했지만 카드를 낸 게 그렇게 격노할 일인가 싶더라고요. 어이가 없었고 정말 열이 받기도 했고요. 내가 여자라서 차별하는 게 분명하다, 이 이후론 절대 택시를 타지 않겠노라. 라며 다짐을 했었죠.
씁쓸하더라고요.
여자라서 저를 차별했다!라고 확실히 말할 순 없지만 적어도 제 주변의 여자 친구들과 남자 친구들에게 질문을 하고 답변을 받은 결과, 놀랍게도 여자 친구들은 이미 중, 고등학교 때부터 저와 같은 경험을 한 친구들이 10명 중 8명이었죠. 반면 남자 친구들의 대답은,
‘응? 뭔 소리야. 전혀 그런 적 없는데.. 카드결제를 왜 거부해? 그런 기사님이 어디 있냐.. 진짜 그런다고? ‘
차별이 존재한다 라는 문장 자체를 부정하는 표정을 보였죠. 물론 저 사건은 몇 년이나 된 이야기이고 당시 카드 결제 시스템이 막 활발하지 않았던 탓도 있겠죠. 오히려 지금은 카드결제를 더 선호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꼭 나쁜 분들만 계시는 건 아니잖아요.
저에게 ‘애(愛) ’를 만들어준 좋은 기사님들도 정말 많이 만났었거든요. 직장생활을 하면서 상사 잔소리 플러스 야근 캄보를 한 어느 날, 지친 몸을 이끌며 택시를 타고 퇴근을 했어요. 타자마자 기사님은 늦은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엄청 밝은 목소리로,
‘어서 오세요! 아이고 이제 출근했는데 첫 손님으로 이쁜 아가씨가 타셨네요! 오늘은 장사 엄청 잘되겠어요 허허허!’
뚱딴지같으면서도 재미있는 농담에 입을 열 힘도 없었던 제가 하하. 하면 웃어버렸거든요.
그 뒤로도 기사님은,
‘ 퇴근하는 길이냐, 많이 피곤해 보인다 ‘
‘ 무슨 회사길래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잡아두냐 ’
‘ 사장이 웃긴 놈이네. 에이그 조금만 일하다 더 좋은 곳으로 옮겨라.’
‘ 평생직장은 없다잖냐. 더 좋은 환경으로 옮겨 일할 수도 있다 ‘
‘ 우리 아들놈도 좋은 일 다 때려치우고 뭐 하겠다고 난리 쳐서 내버려 뒀더니 다 알아서 잘하더라. 아가씨도 그러면 된다 ’
마치 명언 제조기처럼 어찌나 힘이 되고 좋은 말들을 많이 해 주시던지.. 듣는 내내 ‘맞아요… 네 그렇죠.. 그런가요? 그러게요.. 맞아요..’만 말하며,
저에게 공감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기사님을 만나니, 이전에 겪었던 택시에 관련된 안 좋은 기억들도 조금은 무뎌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 사람이 다 다르듯, 기사님들도 당연히 다 다르시지. 생각을 했죠.
또 한 번은 디제이 기사님도 만난 적이 있었는데요. 약속이 있어 급히 택시를 탔는데, 역시나 쾌활하신 기사님 이셨어요. 인사하실 때부터 목소리톤이 남 다르신 분이란 걸 느꼈거든요.
목적지를 말하고 조용히 앉아서 가는 도중,
‘ 손님, 라디오 좋아하세요? 아니면 노래 같은 거 트까요?(전형적인 부산 사투리)
‘ 아.. 네 틀어주세요. 아무거나 트셔도 돼요. ‘
‘ 아! 제가 요새 즐믄(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런 음악을 하나 받았는데.. 한번 들어보세요이. 긴가 아닌가 확인해봐야지요!’
‘ 하하.. 네. ‘
정말 놀랍게도 헬스장이나 펍에서 나올 법한 꽤 유명한 노래들이 나오는 거 있죠! 할시 노래라든지, 두아 리파, 에드 시런, 화사, 시아 등등..
겉으로는 무표정이었지만 내적 댄스로 흥분을 감춘다고 혼쭐이 났어요.(ㅎㅎ)
항상 나쁜 기사님들만 있는 것도 아니라 좋은 기사님도 많이 계시잖아요. 이렇게 저는 ‘택시 타기’를 겪으면서 우리의 인간관계도 애증(愛憎)의 하나라고 느껴지더라고요.
나를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며 미운 말만 하는 사람이 간혹 좋은 말을 해줄 때도 있고, 반면에 언제나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좋은 에너지를 듬뿍 주는 사람도 한 번씩은 까칠하며 부정적인 모습을 내비칠 때가 있듯이 언제나 좋은 사람, 언제나 나쁜 사람은 없는 거 같아요.
‘아.. 난 왜 이상한 사람들만 꼬이지?’
‘내가 만만한 거야 뭐야 왜 나만 가지고 그래?’
‘다들 날 가만히 두질 않아.. 좀 내버려 뒀으면.’
이렇게 생각하신다면 그저 그렇게 단순하게, 쿨하게! 흘려버리시는 건 어떨까요?
‘그래, 이런 사람도 있구나. 이 사람은 이런 방식으로 본인의 감정을 표하는구나. 그래, 기분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수도 있는 거지.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들이 많아. 뭐 내가 예민한 게 아니었네! ‘
이런 후 받았던 부정적인 에너지를 놓아주세요. 붙들고 있을수록 안 좋은 에너지에 나의 소중한 기운을 빼앗길 수 있으니까요.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듣고 좋은 것만 하며 행복하기에도 우리의 오늘은 빠듯한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