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한국 ;-)
2주 정도 잡고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사실 어디를 가든 여행을 하든 바리바리 짐 싸서 다니는 스타일은 워낙 아니었던 터라 짐을 쌀 것도 많지는 않았다. 또한 호주의 겨울이 그리 춥다고 하지 않았기에 한 두 계절 날 정도의 옷만 챙겼고 필요한 물품들만 차곡차곡 정리했다.
짐 정리하고 이것저것 사러 다니고, 또 그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 만나러 다니며 바삐 지냈던 탓일까? 슬퍼할 마음의 공간조차 없는 지경이었다. 해외로 가는 딸이 걱정되어 매 1분 1초 좌불안석이던 부모님의 마음을 알 턱이 없었던 나는 그 당시 부모님이 했던 잔소리들에 얼마나 골머리를 썩었던지.
6월 어느 날 금요일, 김해 국제공항의 한편.
이제 저 멀리 보이는 입국 수속을 향해 가야 했다. 호주를 간다는 생각에 한껏 흥분되어 있었기에 슬프고 먹먹한 감정은 느끼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갑자기 눈시울을 붉히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니 숨이 목 끝까지 턱 막혀버렸다. 평소에도 애틋하고 샘 있는 성격이 아니라서 그 앞에서 펑펑 울기에는 조금 창피했다.
주먹을 꽉 쥐면 눈 밑으로 솟아오르는 눈물이 조금은 가라앉는 것 같아 헤어지기 전까지 주먹 쥔 손을 풀지 못했다. 비행기 타기 전에 보니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깊게 패일 정도였다.
일본을 경유해서 가는 비행기였는데 일본에 도착해서 까지는 솔직히 별 감흥이 없었다. 환승해서 호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제야 찬찬히 기내의 사람들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내 또래의 아이들부터 나이 지긋한 어른분들, 가족단위, 출장 가는 차림의 아저씨..
다들 어떤 목적으로 머나먼 호주로 가고 있는 걸까?
나처럼 워킹 비자로 가는 사람도 여기 어딘가 있을까?
영주권자나 이민자인 사람도 있겠지?
그런 사람들은 호주가 본 집이어서 얼마나 좋을까?
꿈과 환상으로 가득 찬 나의 단순한 생각으론 기내 안의 모든 사람들이 그저 부럽게만 보였다. 그들의 목적이 무엇이었든 나처럼 막연히 인생 경험하고 돈 벌러 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저 따뜻한 태양이 내리쬐고 천해 자연이 아름다운 나라, 서핑의 나라, 포근한 그네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호주 브리즈번 공항에 다 와갈 때 즈음 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무리 영어를 많이 공부하고 왔다 치더라도 막상 닥치니 두려웠다. 친구들도 걱정할 정도의 길치인 내가 잘 알아듣고 똑바로 찾아갈 수 있을까? 다운타운까지 갈 수는 있겠지? 9시간이 넘은 비행 끝에 나는 브리즈번 공항에 도착했다. 밖으로 나와보니 기내에서부터 수속까지 나만의 비밀스러운 동지가 되어주었던 내 또래의 아시안 친구들도 어느샌가 사라져 버렸다.
이젠 정말 나 혼자였다. 언제나 혼자가 되길 싫어했던 내가 젊음 하나 둘러메고 홀로서기를 위해 머나먼 바다를 건너 이 낯선 땅까지 자처하고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