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셰어하우스 도전기!
달콤 쌉쌀했던 추억을 남긴 첫 숙소를 뒤로한 채 셋째 날 나는 시티에 있는 백패커로 이동했다. 인터넷 속도라든지 숙소 내 기타 시설이 훨씬 괜찮았기 때문이다. 또 이제부터는 오랜 기간 동안 머무르며 일하면서 지낼 수 있는 집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시티에서 직접 발품을 팔아 다니는 것이 더 수월할 거라 생각했다. Base Backpackers Brisbane uptown에 이틀 정도 머물렀는데 예상처럼 시설도 정말 좋았고 이전 숙소보다 숙박객들의 때깔도(?) 더 좋아 보였다.
낮 동안에는 인터넷을 이용해 이리저리 한인 셰어 하우스를 찾았었고, 해지기 전 시티에 나가 장을 보며 브리즈번에 나의 채취를 열심히 남기고 다녔었다. 저녁에는 공용 주방에서 다른 외국인 친구들과 눈웃음을 나누며 뜨내기스러운 대화를 나눴다. 장대같이 키 크고 잘생긴 독일, 프랑스 청년들을 보며 '아.. 여긴 정말 좋다.. 그저 천국이다' 하며 흐뭇해하고 있었다.
드디어 괜찮을 집을 찾게 되어 백팩을 떠나기 전 날, 어떤 미국인이 나에게 인사를 하길래 받아줬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이 친구 급 화색이 돌았다. '본인도 한국에 가본 적이 있다, 그리고 태권도를 배우고 있다.'라고 전했다. '금발의 청년이 내 나라를 알고 우리 무술을 배운다고? 대단한 청년이구만!' 싶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했던 외국인은 나에게 처음이었다. 그래서 신기한 마음도 있었고,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었다. 서로 호주에서의 계획 등을 이야기하다가 헤어질 때 쯔음 나에게 이메일 주소를 알려 주었다.
가끔씩이라도 연락하고 지내자며 함박웃음을 짓곤 헤어졌다. 하나 나는 연락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잊어버리고 있었다. 바쁜 이사와 새로운 생활에 대한 적응 때문에 혼이 나가 있었다. 그래서 연락할 경황이 없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서로 안부 정도는 물을 수 있는 백패커 친구가 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만남이었다.
하지만 사람 인연을 어떻게 할 수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스쳐 지나가는 인연을 내 사람을 만드는 일은 더더욱 힘든 일이다. 그래서 가끔은 이런 아쉬운 만남이 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겨지기도 한다. 그의 다정했던 친화력은 그 어느 곳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렇게 내가 이사한 첫 번째 한국인 셰어하우스는 정말 고급지고 시티에서 가까운 Flat이었다. (*Flat = Apartment) 보안도 철저했고 동네도 조용했으며 있을 거 다 있고 큰 교회도 근처에 있었다. 첫 집으로 꽤 괜찮은 곳을 찾은 셈이다. 브리즈번 중심에 있는 빅토리아 브릿지를 건너 5분 정도만 걸어가면 South Bank 가 나온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300미터 이내에 도착하는 나름 역세권이었다. 그곳엔 길 따라 왼쪽으로 인공 야외 수영장(무려 공짜다!) 이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큰 박물관과 아트 갤러리, 그 근처에는 강을 따라 예쁘게 정돈된 큰 산책로가 있는 사랑스러운 동네였다. 무엇보다도 저녁에 산책로에서 강 건너로 바라보는 시티뷰가 정말 기가 막혔다. 그 경치를 보러 매일 밤 산책하러 나올 정도였으니.
이사를 하니 방 3개에 사람 5명이었다.
자매 2명, 나와 같이 방을 셰어 할 언니 한 명, 그리고 마스터 오빠.
지금은 기억이 약간 흐릿하지만 마스터 오빠는 나이도 꽤 있으셨고 영주권자였던 걸로 기억한다. 푸근한 인상에 요목조목 어떻게 생활해야 하고, 어떤 식으로 집안일이 돌아가는지, 셰어 비가 얼마인지 설명해주셨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기에 어안이 벙벙하고 적응이 안됐다. 나에겐 무려 낯선 사람들과의 첫 실제 생활이었기에 (수련회나 수학여행 빼곤) 민망하고 어색했다. 하지만 의외로 서로에게 딱히 사생활 간섭이 크게 없는 편이었다. 다들 낮 동안엔 집에 없는 편이어서 주로 저녁에 모여 간단하게 이야기하거나 술 한잔 하는 정도로 지냈다.
나와 같이 방을 셰어 했던 언니는 무려 ‘서울대생’이었다! 말로만 듣던 그 서울대생?! 언니는 나의 놀란 반응에 내색하지 않았고 그저 수줍게 웃기만 했다. 웃음도 참 이쁘고 선하고 배려심 많은 착한 언니 었다. 사실 난 그 집에 살면서 재미있게도 연애 아닌 연애를 시작했기에 집에 잘 붙어있던 적이 없었다. 하여 크게 정을 붙이고 집 사람들과 지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서울대생 언니는 언제나 나에게 웃으며 잘 대해줬다. 나의 고민도 잘 들어줬었고 어리고 철없는 나에게 단 한 번도 미운 소리, 잔소리도 한 적이 없었다. 그때 당시 언니도 그저 어린 대학생이었을 텐데 어쩜 그런 모습 전부가 어른스러워 보이던지.
언제 한 번은 송별회였나, 무슨 일로 다 같이 산책로 근처에 나가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니의 익살스러운 사진도 많이 찍었고 서로 웃고 떠들며 한바탕 놀았었다. 솔솔 불어오는 강바람을 맞으며 추억도 많이 남겼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의 워킹홀리데이와 유학생활 5년 동안 제일 행복하고 기분 좋은, 따뜻한 마음이 넘쳐 눈물이 날 것만 같은 행복한 추억이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이사를 간 후 드문드문 연락하다 끊어져 버렸지만 어디에선가 그 선한 웃음으로 잘 지내리라 생각한다. 나의 첫 호주 생활을 편안하게 해 준, 좋은 추억을 만들어준 정말 고마운 언니 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