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mma Jeon Feb 27. 2024

3번의 서핑수업과 3번의 요가수업

발리에서 배운 수련과 몰입의 즐거움에 대하여

휴가로 발리를 갔다 왔다.  매일 밀려드는 업무 메시지에 압도되어서 나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었다.  A일을 하다가도, 급하다는 동료 메시지에 바로 B일로 스위치하여 일을 처리하고 다시 A일(사실은 제일 중요한 업무)로 돌아가는데 한 참 시간이 걸렸다.  일상이 몇 분 단위로 쪼개지는 끔찍한 경험을 몇 달 동안 지속하다 보니 나는 그냥 모든 걸 off 하고 싶었다.


호주 브리즈번, 태국 치앙마이 같은 옵션을 생각했지만 나는 발리를 가기로 했다. 수트 케이스에 책 3개를 넣으며 내가 상상한 휴가는 호텔 수영장 베드에 누워 멍을 때리는 모습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햇빛을 쬐고 싶었다.  7시간 비행시간을 버텨 껌껌해진 덴바사르 공항에 도착했다. 잔뜩 지친 나는 이렇게 먼 곳까지 몸뚱이를 끌고 온 것을 후회했다. 비행기에서 지친 몸 회복하려면 휴가에서 하루를 써야 할 텐데 이게 진짜 휴가를 온 건가 하면서 짜증이 났다.  그만큼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비가 내리는 스미냑 숙소에서 눈을 뜬 나는 그럼에도 역시 휴가에서의 아침은 상쾌하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도둑맞은 집중력'이라는 책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수영장을 홀로 누비다가, 썬베드에 누워 아무 생각도 안 하다가, 루꼴라가 잔뜩 올라간 에그 살몬 베네딕트를 먹었다.  


'도둑맞은 집중력'에서는 나와 같은 현대인의 고질적인 일상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몇 분 단위로 파편 된 일상을 살면서 내 뇌도 조각된 삶을 처리하느라 과부하에 걸린다는 것,  그렇게 누더기가 된 일상에서 우리는 집중된 사고력을 잃고 부유하고 있다고,  어느 하나에 몰입하는 즐거움 없이 손가락을 튕겨 다음 피드에 올라올 자극적이고 의미 없는 5초짜리 영상에 도파민 생성을 맡기고 있는 것까지.  아마 이 책에서 설명하는 현상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현대에 없으리라.


이 좋은 책 덕분에 내 휴가는 더 풍요로워졌는데, 일단 휴가동안  멀티태스킹을 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내가 자주 하는 나쁜 습관이 팟캐스트나 유튜브를 틀며 아침 출근을 준비하는 거,  게임을 하면서 영상을 보는 일,  업무 중 핸드폰의 알람을 자주 확인하는 것이다.   일체의 멀티태스킹을 끊고 현재 일에만 집중하려 했다.  결국 몰입할 때 최고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 침착한 나는 발리에서 서핑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인생은 수련이다, 힘들어도 수련을 하는 이유는 그게 더 재밌으니까


꾸따 해변에서 3번의 서핑 수업을 들으면서 책 저자 요한 하리가 강조한 몰입이라는 키워드와 요즘 머릿속을 맴돌던 한 문장 ‘인생은 수련이다’가 함께 나에게 강하게 몰아쳤다.  처음 수업에서 만난 서핑 선생님 J는 아주 유쾌하며 영어도 잘했다.   J는 파도를 타기 위해 바다로 향하는 내 표정이 찡그린 표정에 가까운 무표정인 것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서핑 기초를 배우고 말겠다는 비장함이 있었는데, 선생님 입장에서는 하기 싫은 일을 하는 학생으로 보인 거 같다.  실제로도 그랬다.  보드에서 몇 초만 망설이면 짠 물에 코와 입속으로 들어와 나는 꺽꺽거리며 바닷물을 뱉어내야 했고,  뒤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파도를 기다리며 온몸을 긴장하고 있는 일도,  코어에 잔뜩 힘을 주어서 몸을 일으키는 일도 지치고 두려웠다.



'I'm suffering'  나는 고통받고 있어.

'Yes, You are surfing!'  그래 너는 서핑하고 있지

'No, No, I mean, 'I'm suffering, not surfing!' 아니 서핑하고 있는 게 아니라 고통받고 있다고!



그러자 뜻을 알아챈 선생님이 하하하 하고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서핑에서 제일 무서우면서 재밌는 건 누워있던 수평의 몸을 오른발 먼저, 다음 왼발을 보드에 내디뎌 수직으로 세우는 일이다. 몇 초를 망설이면 파도를 놓쳐서 보드 위에 누워 해변 쪽으로 떠내려 가게 되고, 발란스를 놓치면 요란하게 물 위로 떨어지게 된다.


첫 째 날에서 완벽한 파도타기는 한 번밖에 못했다.  둘 째날, 셋째 날 서핑 실력도 조금 나아졌을 뿐 고만고만했다.  그럼에도 인상을 쓰면서 보드를 끙끙대며 밀고 나갔다. 서핑에는 몰입이 있었다. 고통이 90%라도 10%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 버티는 일이었다. 나는 요한이 책에서 언급한 의도된 단절 속에서 몰입을 즐기는 시간을 누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치유와 회복을 위한 북클럽을 엽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