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ge의 책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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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향해 쏴라, 마이클 길모어 지음 | 이빈 지음, 박하
“나에게는 해야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살인이 잉태된 집안에서 들려주는 살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집안은 내가 자라난 곳이며, 또 어떤 면에서는 절대로 벗어날 수 없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마이클 길모어
이 책을 쓴 마이클 길모어는 음악잡지 <롤링 스톤>의 수석편집장이었으며, 뛰어난 음악평론가이다. 그러면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살인자 게리 길모어의 동생이기도 하다. 그의 형 게리가 유명한 이유는 범죄의 잔혹성에 있지 않다. 살인 자체보다 자신의 처형을 스스로 원했기 때문에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게리는 1977년 당시 미국에서 사형제도가 부활된 지 10년 만에 처형된 첫 번째 사형수였다.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사형을 집행할 사법기관을 좌지우지 하는 그의 태도는 마치 사형이 그 자신을 스스로 죽임으로서 마지막 살인의 완성하는 것처럼 연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형반대론자와 옹호론자의 격렬한 논쟁이 오갔고, 게리 스스로는 파멸과 피의 속죄라는 이미지를 덧입고 사라졌다. 그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며 이 과정을 소설화한 노먼 메일러의 《사형집행인의 노래》는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그해 퓰리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마이클 길모어는 그의 형이 사형에 처해지고 15년 후에야 그 죄악의 뿌리를 찾아나가는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는다. 누구도 선뜻 말하지 못한 가족사의 어두운 이야기를 드러내면서 게리라는 한 인물의 악마성이 아니라 그의 폭력성의 기원을 살펴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마이클은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 가족사의 근원이 될 수 있는 미국 개척시대와 종교적 배경까지도 탐색한다. 현대 미국의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치룬 타락과 폭력, 가부장제의 횡포 속에서 대물림 되어온 악습이 이런 비극을 낳은 것이 아닌가 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어떠한 변명이나 옹호가 아닌 치밀하고 덤덤한 어조로 사회적 배경과 가족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연결짓고 있다. 가족의 혈통을 찾고, 또 미국 전역으로 떠돌이 생활을 하며 돌아다녔던 아버지의 행적을 따라가는 방대한 자료를 찾고 정리하고 분석한 마이클의 노력은 숙연해질 정도이다.
게리와 마이클의 부모님은 나이차가 많이 나는 커플이었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곱절은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고, 이미 여러 번 결혼을 했던 상태였다. 아버지는 여러 주를 옮겨 다니며 사기를 치고 다녔고, 그 와중에 여자들을 유혹하고 아이를 낳고 돌아다녀서 이곳저곳에 숨겨진 아이들이 (숫자를 정확하게 다 파악하지도 못하나 대충 열 명은 넘게) 있었다고 한다. 그들의 아버지는 결혼을 하고도 여전히 사기를 치고 다녔다. 광고를 맡아 진행할 것처럼 하고서는 돈을 받고 튀는 생활을 계속 했으며, 그래서 이름도 여러 개였고, 신분도 불확실했다. 결혼 후 아이 셋을 낳도록 쭉 이런 생활을 해왔고 좀 한참 지나 막내 마이클을 낳았다. 이 시차가 결정적으로 게리와 마이클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위로 세 아들과 어머니에게는 폭력을 휘둘렀던 아버지는 마이클만큼은 사랑을 주고 분신처럼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마이클만이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사회적으로 성공했는지 모른다.
그들의 부모는 범죄를 저지르고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와 이를 방관하거나 부추기는 어머니라는 전형적인 조합이었다. 같은 실수를 거듭하면서도 전혀 성찰이 없고 자식들이 불행해지는 선택을 계속해서 이어나간다. 읽는 내내 가슴이 미어지는데 마이클은 이렇게 말한다.
“사실 나는 우리 부모님을 모질게 비난하지는 않는다.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조금도 증오심이나 한을 품고 있지도 않다. 어쩌면 더 미워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부모님을 사랑한다. 요즘 들어서는 그분들이 너무나 보고 싶다. 하지만 우리 가족에 대해 생각할 때면, 내 마음은 냉소적으로 변한다.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아서,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우리 부모님이 서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니 만나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프랭크 길모어와 베시 브라운 – 그 얼마나 비참하고 가련한 인생들이었던가. 난 그들을 사랑한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하다 그들이 자식을 낳아 세상에 내보낸 것, 그것은 통탄할 일이었다.“ (p.428)
무사히 가족의 불행에서 도망쳐 나온 것 같은 마이클마저도 안타깝고 안쓰럽다. 그가 입은 내상은 결코 회복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분노와 폭력의 에너지가 밖을 향한 것이 그의 형 게리였다면 내면을 향해 자기 자신을 죽이는 방식을 택한 것은 마이클이기에. 젊은 날 마이클의 인터뷰를 찾아보았는데, 영상 속의 그에게서 고통으로 침잠한 인간의 바스러질 것 같은 연약함을 느꼈다. 그의 슬프고 너무나 조심스러운 눈빛이 가슴에 남아 한동안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마이클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은 역자의 인용을 가져왔다. 마이클은 불행한 운명의 지배를 받는 연약한 인류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믿고 스스로의 품위를 지키자고.
우리 인간은 침몰하는 배에 족쇄로 묶인 불행한 운명의 족속이므로, 이 모든 것이 괴로운 농담일지라도, 우리가 맡은 역할을 다하도록 합시다. 동료 죄수들의 고통을 덜어준다든가, 지하감옥 같은 이 세상을 꽃과 쿠션으로 장식을 하면서, 되도록 품위를 지키면서 말이지요.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