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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워킹맘 손엠마 Jul 02. 2019

남편, 워킹대디, 아들 그리고 남자

오늘도 자신의 위치를 찾아 헤매는 '아빠사람'에 대하여 ㅡ

'엄마의 독서'라는 책에는 '아빠의 자리'라는 챕터가 있다. 

이 시대의 남편, 아빠, 그리고 남자들의 자리에 대한 작가의 고찰이 나온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언젠가 나도 내 남편에 대한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오늘이 그 날인 것 같다. 


남편의 하루를 돌이켜본다. 


전날 고객과 함께한 과음으로 인해 눈꺼풀이 천근만근이지만, 그래도 일단 6시에 일어난다. 아무리 취해도 칼출근은 한다. (feat.너란 남자, 칼출근은 인정각) 잘 움직여지지 않는 내 발처럼, 꽉 막힌 출근길과 도로를 겨우겨우 거북이 걸음으로 벗어나서 사무실에 도착하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 커피를 한잔 마신다. 커피를 먹기 위해 정신을 차리자고 마음을 먹은 것인지, 정신을 차리기 위해 커피를 마시기로 한 것인지 잘은 구분되지 않지만 일단 벤티 사이즈로 가볍게 때린다. 


점심은 해장을 위해 짬뽕 또는 해장국 비스무리한 걸로 한사발 드링킹하고, 사무실로 돌아온다. 쉴틈 없이 고객과 전화하고, 직원들 상대하고, 자잘한 업무들을 쳐나가다보면 퇴근 시간이 스물스물 다가온다. 이쯤에서 아내에게 근황 인사를 가장한 문자를 보내본다. 


"애들은 뭐해?"


나의 반응이 "응. 잘 놀고 있어."이면 그 날 저녁 회식 자리는 순탄하게 갈 수 있는 거고, "말 오지게 안 듣네. 아오!!!!!!!" 이면 회식 자리에서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하는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의 또는 피곤한 하루 끝의 술자리가 즐거울리 없지만, 열심히 웃어드리고, 비위도 적당히 맞춰드리며 술자리를 마무리한다. 문여는 소리, 발 소리에 아이들이 깼다가는 대재앙을 맞이할 수 있으니 오늘은 대충 거실에서 이불깔고 쪽잠을 청해본다. 그리고 또 새벽 6시, 알람소리에 눈을 뜬다.


남편의 하루도, 나의 하루와 같이 누군가의 '눈치'로 가득차 있었다. 직장생활에서 상사의 눈치, 집에서 와이프의 눈치, 이제는 두 눈 말똥말똥하게 뜨고 있는 두 녀석의 눈치까지 플러스되었다. 하루 24시간 중에서 온전한 남편의 선택으로 굴러가는 것은 '점심메뉴'와 '커피의 농도'뿐인 것 같아 눈물이 난다. 


다행히도 나는 '남편을 먹여살려야겠다'는 독립정신이 투철한 여자이기 때문에 남편이 우리 가족을 위해 마냥 희생하는 것이 조금은 불편할 때도 있고, 마음이 아플 때도 있다. 그렇게 아둥바둥하지 않아도 나도 버는데 당신이 우리를 먹여살리고 싶어하듯, 나도 당신이란 남자를 먹여살릴 수 있는데, 우리집 가장의 무게는 왜 이렇게 무거운 걸까


우리, 조금만 여유를 가져보자

나는 다들 흔히 말하는 ' 빨대를 꽂기 위해' 당신과 결혼한 것이 아니다. 혈기왕성하던 20대의 우리가 만나 7년 연애를 하고, 30대 중반이 된 지금, 나는 당신이 당신의 삶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당신만의 색깔과 당신만의 세계를 가졌으면 좋겠다. 그래야 어떤 시련이 오더라도 우리는 크게 흔들리지 않고 우리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고, 그것이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값진 유산이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나는 남편에게 그토록 원하던 문신과 주짓수를 허용했다. 

물론 문신도 손바닥을 폈을 때, 손가락의 길이를 뺀 지름 10cm가 넘지 않는 영역 내이고, 주짓수도 얼굴에 상처를 내면 안 된다는 필요조건이 붙긴 했지만, 그렇게라도 자신만의 세계를 조금씩 구축해갔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아이들에겐 더 없이 좋은 아빠이고, 나에겐 항상 기댈 수 있는 커다란 버팀목 같은 남편이 아무 수식어도 없는 그냥 '남자사람'으로서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수 있기를 바란다. 


근데 남편, 나 멋지지? 

그니까 오늘 일찍 들어와. (feat.빅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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