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함께 살아가는 법
선착장으로 향하는 길에도 고양이는 있었다. 사람들이 오가는 틈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앉아 있거나, 누군가의 발걸음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는 그 모습이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그저 당연한 그런 풍경이었다.
나는 사람들 사이를 다니는 고양이들을 보다가 아무 생각 없이 배에 올라탔다. 그런데 배가 내가 가려던 방향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잘못 탄 걸 알아챘을 땐 이미 배는 출발한 뒤였다. 잠시 멍해졌다가, 이왕 이렇게 된 거 이곳을 걸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선착장에 도착하고 보니 보드를 타거나, 벤치에 앉아 저녁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작은 집 모양을 한 서점 하나를 발견했다. 외국에서 서점을 가본 경험이 있던가? 하는 생각으로 서점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큰 기대 없이 들어갔다가, 바로 눈에 띈 한 권의 책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이스탄불의 고양이』
이 도시를 떠나기 직전에 이 책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조금은 우습기도, 조금은 신기하기도 했다. 마치 이곳에서의 시간을 이렇게라도 간직해 달라는 선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그 책을 집어 들었다. 오늘 하루, 아니 이 여행 내내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이 이 도시에서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스탄불의 고양이라는 책을 사들고 다시 배에 올라 돌아왔다.
숙소까지 30여분 정도 걸어갈 요량이었는데 숙소에서 그나마 제일 가까운 선착장에 내리자마자,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순간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며 봐왔던 이스탄불은 저 노을 아래에서 조용히 가라앉는 것처럼 보였다. 바다도, 건물도, 사람도, 고양이도 모두 같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파도키아 첫날부터 시작해 이스탄불의 마지막 날까지. 튀르키예에 도착하자마자 벌어진 일에 대해 이 노을이 위로를 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발걸음을 옮길 수 없었고, 해가 완전히 지고 캄캄해지고 나서야 발걸음을 옮겼다.
번화한 거리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사이를 한 마리의 고양이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배가 양옆으로 불룩하게 나온 임신한 고양이였다. 녀석은 사람들의 다리 사이를 자연스럽게 지나가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몸을 비볐고, 사람들은 놀라지 않았다.
누군가는 가볍게 등을 쓰다듬어 주었고, 한 여성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고양이에게 건네주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잠시 걸음을 멈췄다. 낮에는 고양이들이 도시를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밤이 되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저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이스탄불은 이곳이 누구의 공간이라고 정해놓지 않은 것 같았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갈라타탑을 다시 지나 저녁을 포장했고, 영업이 종료된 조명가게들이 늘어선 아무도 없고 캄캄한 골목을 따라 호텔을 향해 걸었다. 걷다가 돌아보니 으스스한 기분이 들 정도로 고요하고 어두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길에서는 고양이를 만나지 못했다. 그러니까 내가 지내는 곳에서는 밤이 되고 이렇게 캄캄해져야 고양이들이 하나 둘 나타나는데, 이곳은 반대였다. 불빛도 사람도 없는 거리엔 고양이도 없다. 그 점마저도 이스탄불 답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마지막 밤을 마무리했다.
다음 날 아침, 짐을 챙겨 공항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러니까 내가 이스탄불에서 처음 도착한 곳이었다. 이곳의 아침은 이런 모습이었구나 하며 잠시 걷다가 생맥주를 마시지 못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여행을 다닐 때면 현지의 생맥주를 꼭 마시는데, 튀르키예에서 아직 마시지 못한 걸 깨닫고 생맥주를 판매하는 적당한 식당 하나를 찾았다.
아다나 케밥을 주문해 놓고 앉아있는데 한 마리의 고양이가 테이블 사이를 계속 오가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음식을 얻어먹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고양이는 어딘가 조금 달라 보였다. 자세히 보니 젖꼭지 주변의 털이 비어 있었다.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내가 앉은 곳의 건너편 테이블에서 음식을 건네받고는 골목 귀퉁이로 가 음식을 내려놓고 먹었다.
어딘가에 새끼들이 있는 걸까. 고양이는 다시 식당으로 와 내 테이블에도 기웃거렸는데 혹여 음식을 줬다가 음식점 사장님이 제지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바로 먹을 것을 건네지 못했다. 아마 내가 지내는 곳은 분명히 길고양이에게 음식을 건네지 말라고 할 테니, 그래도 될까 하는 머뭇거림이었다. 역시나 고양이는 내 테이블에서 음식이 나오지 않는 걸 깨달았는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나는 식사를 마치고 그 고양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케밥의 빵 조각 몇 개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렇게 버스를 기다리며 그 고양이를 지켜봤다.
고양이는 아까 음식을 받았던 테이블로 다시 향했고, 음식을 또 한 번 받아 물고서 골목 귀퉁이로 가 먹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다가가 챙겨둔 빵 조각을 건넸다. 고양이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것을 받아먹었다. 이곳은 아무도 나의 행동을 판단하지 않는데, 진작에 줄걸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내 빵조각이 그 고양이에게 사과의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그렇게 고양이가 빵조각을 다 먹을 때까지 곁에서 지켜보았다. 이윽고 이스탄불을 떠나는 버스가 도착했다.
나는 이곳에서 참으로도 많은 고양이를 만났다. 그리고 그 고양이들을 대하는 사람들도 함께 보았다. 카파도키아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는 이 여행이 조금은 잘못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차갑고,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순간들 속에서 나는 계속 상황을 이해하고 정리하려 애썼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여행은 내가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도 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길 위에서 이미 떠나버린 고양이와 마주쳤고, 행아웃에서 머물던 고양이를 만났고, 이스탄불에서는 그저 함께 살아가는 고양이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들을 지나오며 나는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누군가의 공간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같은 공간을 함께 쓰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나는 그걸 조금 늦게 이해했다.
이제 떠난다.
고양이의 도시, 튀르키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