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흔적, 고양이의 자리
그렇게 새벽 다섯 시가 가까이 되어서야 이스탄불의 호텔 안으로 들어왔다. 룸미러로 본 택시기사 눈빛이 자꾸 떠올랐지만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거라 마음을 다독이고서 짐을 정리했다. 그리고 이스탄불에 온 이유에 대해 다시 곱씹었다. 이따 해가 뜨고 나면 수많은 고양이들을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은 마음을 겨우 안정시켰고 그렇게 잠에 들었다.
눈을 떠보니 아침 열한 시, 조식을 먹기 위해 여덟 시에 알람을 맞춰 두었지만 전혀 듣질 못한 모양이다. 그럴만했다고 생각하며 갈라타 탑을 가기 위해 준비했다. 호텔 밖을 나와보니 수많은 사람들과 차들이 있었다. 교통체증에 대해선 익히 들었지만 수많은 곳에서 연신 클락션 소리가 들렸고,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도 즐비했다. 나는 인파를 벗어나 우선 무작정 갈라타 탑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을 걸었다.
우연히 걷게 된 오르막길은 조명가게로 가득한 거리였고, 고양이는 없었다. 그새 좀 분위기가 바뀐 건 아니겠지 하는 걱정을 하다 어느덧 갈라타 탑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고양이들까지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대여섯 마리가 한꺼번에 보이기 시작해 가슴이 두근거렸다. 새벽에 마주했던 택시기사의 눈빛은 어느새 기억 뒤편으로 밀려나 있었다. 이곳은 정말 고양이의 도시구나.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과 함께 유명한 카이막 집을 들러 간단히 배를 채웠다. 갈라타 탑은 유명 관광지인만큼 무척이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만큼이나 많은 고양이들도 함께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특이했던 점은 어느 곳에서나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다 보니 곳곳에 재떨이들 혹은 담배꽁초가 쌓여있었는데, 그 옆엔 고양이가 쉴 수 있는 곳이나 고양이의 밥그릇과 물그릇이 함께 놓여 있었다. 인간의 흔적이 가득한 곳에, 다른 생명을 위한 자리도 자연스럽게 놓여 있는 것이다.
고양이들은 사람이 지나가도 놀라거나 숨지 않았고, 되려 가게 곳곳에서 음식을 받아먹거나 가게에서 판매 중인 물건(무려 옷이었다) 위에 올라가 잠을 청하고 있기도 했다. 심지어 낯선 이의 손이 자신을 쓰다듬는 것을 허락해 주기도 했다. 이 풍경, 도시에서 가능한 일이었던가?
나는 고작 갈라타 탑 주변의 동네를 한 시간도 채 안되게 돌아봤을 뿐이었다. 어느 곳을 가도 사람의 흔적과 고양이가 함께 하는 모습을 보며, 사람을 피해 숨는 우리 동네 고양이들이 떠올랐다. 자동차 소리만 나도 몸을 낮추고, 낯선 발걸음만 들려도 달아나는 아이들. 하지만 이곳의 고양이들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사람이 지나가도 자리를 비켜주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 사이를 유유히 가로질렀다. 익히 우리가 상상하는 고양이의 모습 그대로 살고 있었다. 되려 이스탄불은 그들의 세상에 인간이 잠시 끼어든 듯한 풍경을 갖고 있었다.
오늘 새벽 나는 이 도시를 경계했다. 룸미러 너머로 마주친 눈빛에 마음이 얼어붙어 있었지만 한낮의 이스탄불은 또 다른 얼굴을 내보였다. 재떨이 옆에 놓인 밥그릇처럼, 인간의 흔적과 고양이의 자리가 아무렇지 않게 공존하고 있었다. 이스탄불은 차갑기도, 따뜻하기도 한 도시였다.
어쩌면 이 도시를 이해하는 방법은 사람을 먼저 보는 게 아니라, 고양이를 먼저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다 남긴 재떨이 옆에, 아무렇지 않게 물그릇을 두는 마음. 가게의 물건 위에서 잠든 고양이를 굳이 깨우지 않는 모습. 그 모습 만으로도 이 도시의 방식이 담겨 있는 듯했다.
나는 갈라타 탑을 뒤로하고 갈라타 다리로 향해 걸어갔다. 이 도시는 왜 이렇게까지 고양이를 품고 있는 걸까. 그리고 나는 왜 이 장면들에 이토록 안도하고 있는 걸까. 그 답을 조금 더 알고 싶어졌다. 이 도시엔, 아직 내가 더 알아야 하는 고양이들이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