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도시의 온도

이스탄불 택시의 2,000리라

by Emmett

이스탄불로 향하는 국내선을 타기 위해 카이세리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를 타기까지 세 시간이 넘게 남아 있었지만 공항 픽업 시스템상 여러 사람을 한 번에 태워 움직여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혹시나 싶어 늦은 밤비행기로 예약을 해두었는데, 나와 같은 픽업 차량을 타고 온 사람들은 나보다 한 시간 이른 비행기로 먼저 이스탄불로 떠났다. 조금 더 앞선 비행기로 예약하는 게 좋았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조금 더 공항을 즐기다 가자는 마음으로 비행기들을 볼 수 있는 창가 근처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IMG_3107.HEIC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


그렇게 꽤 긴 시간을 보낸 뒤 도착한 이스탄불. 그러나 짐을 찾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말았다. 짐이 어디선가 꼬였는지 비행기에서 내려서도 30분이 넘도록 짐 찾는 곳에 짐이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한 시간 넘게 걸려 짐을 찾게 되었고, 그렇게 타려고 한 시간의 Havaist버스를 놓치게 되었다.


이미 시간은 새벽 한 시 반. 심야 시간이다 보니 그다음 버스는 두 시간 뒤에 배차되어 있었다. 비행기도 세 시간을 기다렸는데 버스도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니 몸도 지치고 마음이 초조해져 갔다. 게다가 비가 내린 뒤라 꽤나 으스스한 날씨가 되었고, 버스정류장엔 노숙자들이 하나 둘 자리 잡고 있었다. 정류장 끝에 앉아있던 나에게 한 노숙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중국사람이에요 일본사람이에요?"



한국인이라 답하니 중국어나 일본어는 조금 할 줄 아는데 한국어는 모른다며, 대신 현금을 좀 줄 수 있냐고 물었다. 물론 현금이 있었지만 카드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고 답하니, 노숙자는 아쉬운 표정을 하며 다시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카파도키아에서 겪은 따뜻함이, 이 도시의 공기 속에서 점점 식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버스가 오기까지 45분 정도 남았는데 내가 기다리던 버스가 들어오고 있었다. 버스는 미리 들어와 있는 것뿐 출발은 정시에 한다고 했다. 그래도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것보다 버스 안에서 기다리는 편이 낫겠다 생각해 버스에 올랐다. 그러고서 전광판을 보는데, 심야 버스라 내가 내리는 정거장은 서지 않는 것 같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버스 기사에게 이 정거장에 정말 정차하지 않는지 물었다.



"아, 이전 버스는 이곳에 정차를 하는데... 지금 버스는 심야급행이라 거기에 서지 않아요. 탁심에서 내려 걸어가야 될 텐데 20분은 넘게 걸릴 거예요."



역시나 선택지는 택시뿐일까. 낯선 여행지에서 택시는 가능한 멀리했는데,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택시뿐인 것 같았다. 우선 탁심광장에 내려 생각해 보기로 하고, 버스는 출발했다. 다행이랄까, 급행버스다 보니 탁심광장까진 순식간에 도착했다. 내려서 캐리어를 꺼내고 보니 길가엔 택시가 줄지어 서있었고 호텔까지 걸어갈지, 택시를 탈 지 고민할 새도 없이 한 택시기사가 말을 걸어왔다.



"어디 가세요?"



너무 늦은 시간이라 얼른 호텔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앞섰던 걸까. 푸근한 이미지의 택시기사가 말을 걸자마자, 나는 그 안정감에 기대듯 택시를 타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트렁크에 짐을 싣고 택시에 올랐는데, 미터기에 이미 금액이 찍혀 있었다.



"미터기를 초기화해 주실 수 있을까요?"


"거기까진 얼마 안 나와요, 2,000리라(한화 약 60,000~65,000원)만 주세요."



택시기사는 농담을 하며 껄껄 웃었지만, 그리 유쾌한 농담은 아니었다. 아마 농담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직감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미터기를 초기화해 주세요."



순간 택시기사는 룸미러를 통해 눈을 부릅뜨고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나는 여기서 눈을 내리 깔거나 우물쭈물하다간 바가지요금을 내게 될 거라 생각해, 나 역시 택시기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미터기 초기화를 다시 요청했다.


그러나 택시기사는 내 말을 듣는 척도 하지 않은 채 미터기를 초기화하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가면서 계속 2,000리라를 요구했다. 나는 그럼 지금 내리겠다고 했지만 택시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실랑이를 하는 중에 채 5분도 되지 않아 호텔 앞에 도착했다. 택시기사는 다시 2,000리라를 내라고 했다. 나는 빠르게 실제 예상 택시 요금을 계산하고 번역기를 돌려 기사에게 내밀었다.



탁심 광장에서 이곳까지 요금은 80~150리라입니다. 2,000리라를 지불할 수 없습니다.



택시기사는 휴대폰 화면과 나를 번갈아 보더니, 미터기를 가리키며 그럼 미터기의 금액을 달라고 했다. 미터기엔 230리라가 적혀있었고, 나는 미터기 초기화를 요청했는데 초기화한 금액이 아니라 그 돈 역시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택시기사는 내려 내 캐리어를 꺼냈다. 그리고 내가 앉아있는 곳의 문을 열어 내리라고 했다. 순간 무서움이 앞섰지만 그래도 호텔 앞이니 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란 생각으로 택시에서 내렸고, 200리라를 건넸다.


택시기사는 현금을 받고 한참 생각하더니, 30리라를 더 내놓으라고 했다. 30리라면 1,000원도 안 되는 돈이지만 택시기사가 괘씸하단 생각이 들다 보니 주고 싶지 않은 마음 반, 그냥 30리라를 주고 얼른 호텔로 들어가 쉬고 싶은 마음 반이 들었다. 지갑을 열어보니 하필 100리라 이상의 지폐만 있었고 나는 100리라를 건넸다. 택시기사는 100리라를 더 받고서 고민하는 듯하다가 70리라를 거슬러주고 떠났다.


그렇게 택시기사가 떠나고 나니,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이 도시에서의 밤이, 조금은 두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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