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의 완벽 대신 80%의 헐렁함으로
“사람이 완벽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내 평생을 다해 대답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말하고 싶은 욕심으로 일상을 살아내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현실 앞에 “아니다”라고 울며 겨자먹기로 말하면서.
어쩌다 한 번 완벽할 수 있는 영역도 존재는 했다. 학부 시절 학점 4.5를 달성했을 때의 그 쾌감이란. All A+의 성적을 받아들고 나는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내가 뭔가를 통제할 수 있다는, 상황을 내 뜻대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 기분이 그닥 오래가지 않았던 건 또 다른 함정이었지. 죽을 힘을 다해 한 영역에서 완벽을 달성한들 그건 가성비가 좋지 않은 행복이었다. 완벽한 결과로 인한 즐거움은 이틀도 가지 않았고 나는 곧장 심드렁해졌다. 곧이어 다음 학기가 되면 그 모든 성과는 리셋되고 또다시 완벽을 위해 달려야 했다. 한 번 ‘완벽한’ 성적을 얻었으니 기준도 그만큼 높아져서 혹시라도 삐끗해 A0나 A-가 나올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누군가 내게 성적을 잘 받아서 행복했냐 묻는다면, 그렇지 않았다는 게 솔직한 대답이다. 모르는 교수님이 B+를 준 게 내가 꿨던 악몽이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게다가 내가 원한 건 ‘완벽하게 완벽한’ 인간이었다. 모든 영역에서 결점 없고 흠 없는 그런 인간. 완벽의 함정은 거기에 있다. 결코 만족이 없다. 완벽하지 못한 수많은 영역이 높은 압력으로 나를 내리누르는 동안 나는 그 밑에서 발버둥을 치며 깔리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그런 와중에 임신과 출산을 겪었다. 내 눈 앞에 작은 생명체가 꼬물대는 것을 본 순간 ’완벽‘이라는 인생의 버튼에 다시 불이 켜졌다.
임신 때부터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보면서 공부를 해나갔다. 육아서도 읽어가면서 나름대로의 이론을 쌓았다. 아이가 태어나면 이렇게 해야지,라는 나름의 계획을 세워나가며 착실히 준비했는데 그 모든 게 산후출혈을 겪으면서 송두리째 흔들렸다. 그 후로 나는 길을 잃었다.
그럼에도 이 아이에게 빈 틈 없는, 실수 없는 엄마가 되고 싶은 욕심은 포기하지 못했다. 또치가 태어났을 때 분만병원에 홀로 뒀던 시간이 있었고, 나는 초유도 전해주지 못했으니 다른 부분에서라도 만회를 해야 했다. 내 딸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완벽한 엄마가 된다면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큰 문제가 있었다. 완벽의 기준이 너무 모호했다. 육아에는 정답이 없었고, 한 편으로는 정답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또치가 태어나고 자존감이 땅에 떨어졌다. 세상 이렇게 쓸모없는 인간이 있나 싶었다. 애가 우는데 기저귀 때문인지 더운 건지 아니면 추운 건지, 그것도 아니면 졸린 건지 몰라서 다 시도해보다가 결국 배가 고파 운 걸 알았을 때의 그 허탈감이란. 허겁지겁 젖병을 물고 분유를 촥촥 들이마시는 아이의 입을 바라보며 이렇게 멍청한 엄마라 미안하다고 속으로 수차례 사과를 했다. 그런 일이 종종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내가 간과했던 게 있었다. 바로 나도 아이도 사람이라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난 또치가 마치 로봇인 것처럼 대했다. 아이의 패턴과 텀을 계산하고 예측하며 그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또치는 자신의 고유한 리듬으로 잘 성장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 성장을 볼 눈이 없었다. 불안에 갇혀 딸을 나만의 틀에 맞추려 애를 썼을 뿐.
나에 대한 이해도 없었다.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없다. 가정마다, 개인마다 양육의 기준은 다 다를 수밖에 없는데 내 기준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 이런저런 정보들에 휘둘리며 스스로와 아이를 힘들게 했다.
그 과정에서 놓친 건 행복이었다. 실수할까 불안해 전전긍긍하며 아이를 틀에 우겨넣었다. 심지어 그 틀도 자꾸만 모양을 바꾸었다.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또치는 개성을 뽐냈고 나는 실수했으며 그래서 스스로를 쓸모없다고 생각해 많이 울었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 남편은 어느 날 저녁, 하루 종일 아이를 울렸다며 거실 바닥에 앉아 우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왜 이렇게 완벽하려 하냐”며 꽤 통찰력 있는 질문을 던졌다. 넌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 왜 그러냐며 그 나름의 격려를 보낸 것이지만 남편의 질문에 나는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러게, 나는 왜 이러고 살까. 언제부터 이렇게 완벽에 대한 갈망에 잡혀 살았을까. 생각해보니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었다. 그간 예측할 수 없는 삶에 여러 번 얻어맞다 보니 할 수 있는 한 모든 걸 통제하고 싶었다. 왜, 다들 그런 일을 겪으며 살지 않나. 내 잘못이 아닌데 내게 벌어지는 어려운 상황들을. 외적으로 벌어지는 상황이야 어쩔 수 없는 게 많으니 내 행동이라도 실수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나의 완벽주의는 모든 걸 통제하고 싶은 욕망과 결을 같이 했다. 내 손 안에 모든 것을 넣고, 실수 없이 쥐락펴락 하고 싶은.
완벽한 나를 꿈꾸다 보니 남편도 완벽한 남편이길 바랐다. 그의 성실함과 우직함이라는 좋은 장점은 그대로 두고, 거기에 감수성까지 더해지길 바랐다. 다만 그 감수성은 나에게만 적용되어야 했다. 다시 말해, 그가 자신의 감정에는 무디면서 내 감정에는 섬세하게 반응해주길 기대했다. 이기적인 바램이었다. 물론 사람이 내 마음대로만 움직일 수는 없으니 남편은 ‘더더더’를 외치는 나에게 억울함이 커져갔다.
생각해보니 또치가 남편과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으리란 법이 없었다. 나는 이미 이 어린 아가를 틀에 맞추어 왜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냐며 답답해했으니, 나중이라고 아이의 삶과 선택을 존중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나는 내가 꾸린 가정이 족쇄가 아닌 보금자리가 되길 원했다. 내 아이가 자신의 인생을 모두 포기하고 엄마의 기대에 맞춘 착한 딸로 남아있는 것은 원치 않았다. 완벽하여 빈 틈이 없어 꽉 막힌 틀로 아이를 숨막히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가 자랄 공간과 여유를 만들어주는 빈 틈 있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끝내 내 품을 벗어날 때 그 날갯짓을 응원해줄 수 있는 그런 엄마. 그래서 무의식 중에 작동하던 완벽 추구 여정을 의식적으로 중단하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마음속 완벽한 엄마의 형상을 지웠다. 완벽이 아닌, 충분히 좋은 (good enough) 엄마가 되기로 했다. 이만하면 충분한 그런 엄마로. 육아를 넘어 일상에서도 그냥 80%만 해내면 성공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예를 들면, 청소를 할 때 청소기만 돌려도 그날의 청소는 성공이라고, 모든 가구를 다 쓸고닦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식이었다.
거기에 더해 매일 벌어지는 모든 예측 불가능한 일들을 다 나의 실수라고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럴 수도 있지’를 되뇌이며 딸의 의도를 바로 알아채지 못할 때 자책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아이의 울음을 틀어막기보단 의사소통의 방식이라 이해하고 침착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매사에 실수할까봐 두려워 하지 않으니 오히려 여유가 생겼다. 울음만 가득한 것 같던 내 육아에도 사실 긍정적인 상호작용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제야 내 눈을 바라보며 꺄륵 웃는 내 딸을 볼 수 있었다. 맑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같이 웃을 때 난 꽤 행복했다.
완벽하지 못한 나를 수용하려 노력하니 완벽하지 못한 남편에게도 고마움이 더 깊어졌다. 그의 무딘 우직함이 출렁이는 나의 감정을 잡아주는 닻이 될 때가 많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직장과 육아를 저글링하는 그의 노력이 새삼 고마워졌다. 완벽하지 않아도 그는 최선을 다한다. 완벽하지 못한 남편을 원망하지 않으니 내 인생도 좀 더 편해졌다. 누군가에게 원망을 품는 건 나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이제 다시 이 질문에 대답해본다.
“사람이 완벽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리고 그럴 필요가 없다. 완벽의 균열은 행복이 깃들 틈새가 되기에.
그러니 이 글을 읽고 있는, 정신없이 최선을 다해 하루를 보내고도 자책하는 당신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 당신은 지금도 충분하며,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완벽하지 못한 일상을 채우는 건 서로를 향한 사랑이다. 그래서 나는 빈틈없는 인간보다는 함께 숨쉴 수 있는 틈새를 허락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해오던 버릇이 있어 쉽진 않겠지만, (난 아직도 밤이 되면 종종 거실 바닥에 앉아서 우울해한다.) 함께 가는 이에게 곁을 내어주는 사람이 되기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