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뭐길래.
그동안 글에서 여러 번 썼듯, 나는 산후출혈을 겪고 응급자궁적출수술을 받았다. 이 때문에 한동안 아이를 케어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이런 나의 몸상태를 충분히 이해한 가족들의 지지와 좋은 관리사님 덕분에 나는 또치가 50일이 넘어갈 동안 양육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도움이 언제나 감사하지만은 않았다면 내가 너무 못된 걸까. 물론 날 생각해 자신의 시간을 들여 찾아오고 아이를 안아주는 손길들이 반가웠고 정말 감사했다. 하지만 가끔 마음 한 구석에는 그들에 대한 질투가 있었으니, 보통 그 타겟은 또치의 이모, 내 동생이었다.
질투, 이상한 감정이다. 갓 태어난, 사랑하는 조카를 품에 안고 흐뭇해하는 이모의 모습을 보는 게 왜 질투가 났을까. 내 한 몸이나 건사하면 다행인 상황에서 날 도와주고자 우리 집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 고마운 동생에게 나는 한 번씩 묘한 불편함을 느꼈다.
잊을만하면 고개를 치켜드는 그 복잡한 감정을 애써 무시했다. 못된 언니, 못된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감정이 드는 스스로가 이해되지도 않았다. 동생에게 백 번 고마워하고 잘해줘도 모자랄 판에 이게 무슨 마음이란 말인가.
그러나 속내를 숨기는 데에는 영 소질이 없는 나는 어느 날 남편에게 이런 말을 뱉고 만다.
“오빠, 난 가끔 내가 엄마가 아니라 가사도우미 같아.”
난 그때 아이를 오랫동안 안고 돌아다니지도, 목욕을 시키지도 못했다. 또치는 내 품에 안길 때마다 뭔가가 불편한지 빽빽 울었다. 깊게 자다가도 내 품에만 오면 깨어 울어대서 그걸 달래느라 산후관리사님의 퇴근이 한 시간씩 늦춰지기도 했다. 힘이 없고 수술 상처가 아파 안정감 있게 아이를 들거나 안지 못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또치가 자꾸만 나를 불편해하니 양육의 현장에서 나는 별 쓸모가 없었고, 몸 회복에 먼저 집중하라며 자꾸만 배제되다 보니 아이에게 익숙해질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내 딸과 단 둘이 함께 하는 시간이 두려워질 지경이었다.
그 상황에서 나타난 동생은 마치 척척박사 같았다. 관리사님이 엄마보다 낫다고 한눈에 반해 입이 마르게 칭찬하실 정도였다. 지인들의 아기를 여러 번 돌봐준 경험이 있는 내 동생은 아기라고는 처음 안아보는 언니보다 백 배 나은 돌봄 실력을 보여줬다. 안 그래도 제대로 ‘엄마역할’을 수행하지 못하여 자격지심으로 찌들어있던 정신상태에 “엄마보다 낫다”는 관리사님의 지나가는 말이 박혀 한동안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체력적, 정신적으로 심히 약해져 있는 상황에 그 한 마디가 너무 아팠다. 하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봐도 동생은 나보다 나았다. 그 사실을 쿨하게 인정하며 웃어넘기는 대인배처럼 보이고 싶었다.
홀로 있는 시간 동안 아이를 어떻게든 케어하며 버티다 보면 한 번씩 동생이 왔다. 동생이 내 딸을 안고 어르며 소파에 앉아 넷플릭스를 보는 동안 나는 밀린 집안일들을 처리했다. 어떻게 해도 우는 또치에게 붙잡혀 뒷전으로 밀려있던 청소, 빨래, 설거지, 식사 준비 등. 쉴 틈 없이 몸을 움직이며 할 일을 하다 가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옆을 보면 소파에 또치와 함께 느긋하게 앉아있는 동생이 보였다. 그때 느낀 감정은 합리적인 생각으로는 잘 설명이 되지 않는, 이상한 마음이었다. 마치 내 자리를 뺏긴 것 같은 불안이었고 나는 할 수 없는, 그러나 내가 원했던 모습으로 평안히 있는 동생에 대한 시기였다.
왜 나는 그때 동생을 질투하며 내가 엄마가 아니라 가사도우미 같다고 생각했을까. 엄마의 정의를 다시 물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엄마를 정체성보다는 할 일을 수행해야 하는 역할로 봤다. ‘엄마 노릇‘은 결국 내게 해야 할 일들의 집합이었다. 기능과 존재가치를 동일시한 내 삶의 태도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이었다.
그런데 내 생각 속 엄마 노릇에 집안일은 없었다. 나는 엄마라는 인간이 그 일만 할 수 있는 현실이 싫었다. 내가 생각한 엄마는 아이를 돌보는 이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돌봄을 잘 해내는 동생에게 내 자리를 뺏긴 것 같은 불안함과 열등감을 느꼈다. 내가 또치의 엄마임은 누구도 바꿀 수 없는 명백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동생이 내 아이의 엄마인 것처럼 느꼈고 방어적으로 반응했다.
지금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그땐 더 깊게, 거의 신성시된 엄마의 모습이 내게 박혀있었다. 막연히 모성에 대한 이상적인 그림을 그려놓고 그에 맞지 않는 현실을 부정하다 보니 나의 존재도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엄마는 이것도, 저것도 잘해야 하고 항상 공부해야 하며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느꼈다.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들었고 그 모든 정보는 고스란히 내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러니 회복기간 동안 난 엄마라는 인간이 그것도 못하냐고 자책하며 할 수 있는 것들에 감사하기보다는 할 수 없는 것들에 집착해 슬퍼하고 분노하고 질투했다. 배제되는 양육의 현장에서 소외감을 느끼며 예민해졌다. 아이가 태어난 후 50일은 내게 혼돈의 도가니였다.
문제는, 회복 후에도 자책이 계속된 것이다. 그간 느낀 모든 자격지심과 질투는 아이를 향한 순전한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내 딸이 누군가의 품 안에서 곤히 쉴 수 있음을 온전히 기뻐하지 못한 나는 사실 아이보다도 이상적인 엄마로 기능하는 내 모습만을 사랑한 것이며, ‘돌보는 나’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거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이쯤 되니 나에겐 기능이 문제가 아니었다. 기능하지 못했을 때에는 그걸로 날 부정했고 기능하게 된 후에는 그 동기를 시험하며 스스로에게 까다롭게 굴었으니.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아이를 향한 사랑이 그 혼돈의 시간 동안 나를 지탱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몸이 아파도, 새벽에 잠이 쏟아져도 아이의 울음에 즉각 일어나 반응하는 내 모습은 사랑이 아니면 설명하기 힘든 것이었다. 쉴 틈 없이 청소를 꼼꼼히 하던 것도 아이의 건강과 청결한 환경을 위해서였다.
그러니 내가 그 모든 자격지심과 시샘, 박탈감을 겪으면서도 자기혐오나 부정적인 시선에 끝내 갇히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뭐래도’ 또치를 사랑하는 내 마음만큼은 진짜였기 때문이겠다.
내 머릿속에 어느 순간 신성시 되었던 ‘엄마’의 역할은 한계가 있는 인간인 나를 힘들게 했다. 그러나 엄마도 사람일 뿐이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 다만 엄마라는 존재는 그 완벽하지 못하는 와중에도 아이를 사랑하며 노력하는 것뿐. 나는 아이를 사랑하고 그 자리를 지켰다. 그 관점에서 보면 나는 엄마 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내가 또치에게 가지고 있는 모든 종류의 죄책감들도, 내 딸을 돌보는 다른 이들에게 느꼈던 시샘과 자격지심도 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아이를 사랑하기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러니, 이 글을 쓰며 그때 느낀 모든 감정들을 비난 없이 감싸 안기로 다짐한다. 사랑이 모든 것의 기준임을 인정하고, 딸을 사랑하는 그 마음과 눈으로 나도 사랑하기로. 완벽하지 못한 일상의 틈새에서 완벽하지 못한 나를 발견하더라도 힘주어 굳이 사랑하기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