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유로도 충분히 귀하게 키우고 있습니다.
“귀하게 낳았으면 귀하게 키워야지. 지금부터라도 모유수유 해요.”
1차 영유아검진으로 방문한 소아과에서 왜 모유를 주지 않냐고 한참 혼이 난 뒤였다. 자연분만 하며 귀하게 낳았는데 왜 분유를 주냐, 모유로 귀하게 키우라는 그 말에 말문이 막혀 그냥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모유수유, 이미 단유약을 먹었고 생후 3주가 지났는데 지금이라도 가능한 걸까? 흔들리는 마음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니 아이를 안고 기다리던 남편이 있었다. 모유수유를 해볼까, 남편에게 물었다.
그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했다. 출산과 양육에 있어 내 몸에 관련된 결정은 다 나에게 맡긴다고 했던 남편이기에 그 단호함이 놀라웠다. 모유수유를 반대하는 남편의 입장은 이성적이었고 정확했으며, 나보다 더 나의 한계를 잘 알고 있는 말들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몰라도 모유수유가 엄마의 몸에 상당한 도전이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남편은 내 몸이 더 힘들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아이 낳으며 피를 쏟고 결국 장기 적출까지 한 몸 아닌가. 게다가 이미 단유약을 먹어 젖을 말린 후라 출산 직후보다 더 힘든 조건이었다.
사실 자궁적출 후 단유약을 처방받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퇴원만 한다면 아이를 만나 젖을 물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자연분만을 원했던 이유가 바로 모유수유 때문이었으니, 그렇게 죽을 힘을 다해 아이를 낳은 상황에서 이걸 포기하기가 아까웠다. 하지만 곧 찾아온 젖몸살은 견디기 어려웠다.
입원해있는 동안 가슴이 점점 돌덩이처럼 무거워지고 뜨거워졌다. 조금씩 새어나오던 젖은 방울방울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내 수유패드를 넘겨 환자복 앞섶을 적시고, 뚝뚝 떨어지면서 바지 허리춤을 적셨다. 덕분에 내 환의는 가슴팍 밑으로 미묘하게 색이 다른 얼룩들이 언제나 크게 자리하고 있었고, 그 위에는 짙은 자국이 새롭게 배어나오고 있었다. 축축한 바지는 덤이었고.
젖이 말라 버석버석하다못해 딱딱해진 섬유, 그리고 그 위에서 또다시 젖어가는 옷은 날이 바짝 선 톱 같았다. 거칠어진 환자복에 뜨겁고 딱딱해진 가슴이 스칠 때마다 눈물이 났다. 매 순간 가장 예민한 피부가 매섭게 난도질 당하는 느낌이었다.
부드럽고 깨끗한 새옷으로 갈아입고 싶어도 여의치 않았다. 팔에 연결된 링거가 여러 개라 환복을 위해선 간호사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안 그래도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 많아 숨 가쁘게 뛰어다니는 분들이라 환복같은 사소한 요청을 하루에 몇 번씩 하기엔 죄송스러웠다. 적절한 타이밍을 지켜보다 말을 못 꺼낸 적이 더 많다. 그동안 내 가슴은 거친 사포가 되어버린 옷에 갈리는 듯 했다.
게다가 내가 입원했던 곳은 산모를 위한 산과병동이 아니었다. 그러니 유축기같은 기기가 있을 리가. 분만 직후 홀로 실려온 탓에 아이는 만나보지도 못했고, 수중에 유축기도 없었으니 젖을 제때 비우긴 어려웠다. 그때 그때 손으로 조금씩 가슴을 풀어주려 했지만 이내 돌덩이 같은 가슴도, 그걸 쥐어짜고 누르는 손가락과 손목도 너무 아파 하지 못했다.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아팠다.
퇴원은 기약이 없던 상황에서 이 모든 아픔과 불편을 마냥 감당하기엔 버거웠다. 결국 오한이 들면서부터 단유약을 처방받기로 결심했다. 마침 분만병원 신생아실에서 전해준 또치의 근황이 그 결심을 지지했다. 또치가 분유를 너무 좋아해서 오히려 과하게 먹이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는 그 말이. 이미 분유를 좋아하고 잘 크고 있는 아가에게 굳이 모유수유 욕심을 낼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단유약 처방을 부탁드렸다.
그런 지난한 과정을 겪고 단유약을 먹었다. 출산 후 내가 그려왔던 그림 중 가장 크고 거대한 작품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임신 내내 아이를 품에 안고 교감하는 시간을 꿈꿔왔다. 그러니 나는 시간이 지나 젖이 완전히 마르고 난 후에도 모유수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거실 바닥에 앉아 우울해하던 어느 날 저녁, 남편에게 “모유수유를 도전도 해보지 않고 단유약을 먹은 게 후회된다”고 말하며, 내가 너무 몸을 사렸던 것은 아닌지 고민이 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은 그날도 꽤 통찰력 있는 말을 던졌다. 단유는 우리 선택이 아니었는데 왜 후회를 하냐고. 후회는 선택에 하는 것이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는 맞지 않는 단어라고.
“차라리 아쉬움이라면 이해가 가지.”
그의 말이 꽤 설득력 있었다.
남편이 보기에 출산 후 수술과 퇴원까지 그 모든 상황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분유수유를 해야하는 이유였다. 사실 또치도 처음부터 달달한 분유에 푹 빠져 잘 먹고 잘 크고 있었다. 문제될 게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초유도 전해주지 못했다’는 생각은 점점 아쉬움과 미안함을 넘어 거대한 죄책감으로 나를 옭아맸다.
왜 그렇게까지 모유수유에 집착했을까.
정말 아이를 위해서였을까?
그러기엔 또치는 매 수유마다 굉장히 행복하게 분유를 먹고 있었다. 아이는 모유를 아쉬워했던 적이 없다.
결국 내가 원인이었다. 기저에 깔려있던 거대한 소망이 있었다. 바로 “누군가에게 필수적인 사람이 되고싶다”는 것.
임신 내내 모유수유, 그것도 직접 젖을 물리는 직수만 고집하며 공부했던 이유는 그것이야말로 나만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때문이었다. 나만 줄 수 있는 선물,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 모유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아이에게 갈망의 대상이 되는 것. 나만 누릴 수 있는 또치와의 깊은 유대, 연결을 느끼고 싶었다. 누군가가 나를 (생존을 걸 정도로) 간절하게 원하고 좋아해주었으면 좋겠다는 큰 갈망. 나중에는 이 모든 게 모유수유에 대한 이상한 집착이 되었다. 그리고 경험도 해본 적 없지만, 그리움으로 변했다.
분유를 선택함으로써 나는 ‘대체 가능한 존재’가 된 것 같았다. 그게 그렇게 슬펐고, 그렇게 아쉬웠다. 가져본 적도 없는 것에 대한 상실감이 내 마음을 꽉 채웠다.
그 상실감은 지금도 계속 있지만, 시간이 해결해주는 중이다. 아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쌓이면서 내가 또치와 나눌 수 있는 것들이 많음을 깨달았다. 사랑의 모양과 갈래가 여러가지임을 삶으로 느끼면서부터 나는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 모유수유를 하지 못했어도 나는 아이를 귀하게 키워내고 있다. 내가 줄 수 있는 최선의 사랑과 교감으로 말이다. 그 사랑이 있으니 분유를 준다고 엄마인 내가 대체 가능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자녀를 품고 키우는 것은 그 자체로도 크디 큰 사랑의 표현이다. 누가 되었든 거기에 굳이 “아이를 위한다면 ~해야지!”라는 족쇄를 더할 필요는 없다. 불필요한 죄책감이다. 모유든 분유든 각자의 상황과 환경에 맞게 선택하면 될 일이다. 어느 것이 더 적절할지 그 판단은 오로지 당사자들의 몫이다. 권할 수는 있으나 강요할 수는 없다.
모유, 좋은 것 누가 모르나. 그 장점은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 나부터가 모든 정보들을 흡수하며 양육의 그림을 그려왔다. 출산 직전까지 우리 집 수유용품은 수유쿠션 하나였을 정도다. 심지어 젖병도 하나 준비하지 않았다. 그만큼 자신만만해했다.
하지만 모두에게 분유가 정답이 아니듯 모두에게 모유가 정답은 아니다. 모유가 모범답안안임은 나도 안다. 다만 나와 같은 상황에서는 단유가 정답일 수 있었다.
양육은 단답형 문제가 아닌 서술형 문제라 생각한다. 양육을 풀어나가는 풀이과정은 개인 별로 다채로울 수 있다.
의사의 “귀하게 키우라”는 말이 억울했던 건 나에게도 모유가 단순한 의미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 깊은 소망과 갈망을 건드리는 상징이었기에 그걸 포기하면서 사실 두려움도 컸다. 내가 제 몸만 챙기는 사람이라고 비난 받을 것 같은 무의식적 두려움이, 결국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엄마가 되는 것 같은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모유가 내 사랑의 전부이지 않았다. 전부일 수 없었다. 의사의 말을 전해들은 남편은 이렇게 말하며 가볍게 넘겼다.
“그분은 나이든 남자잖아. 출산을 해본 적도 없고. 당사자가 아니니까 쉽게 말하는 거지. 우린 지금도 잘하고 있어. 분유 먹어도 사랑 많이 주면서 키우면 돼.”
그래, 그저 사랑하며 키우면 되는 것 아닌가.
그동안 모유수유를 떠올릴 때면 날 짓누르는 무거운 후회가 있었다. 이제는 후회 대신 아쉬움을 택하기로 한다. 내가 틀린 게 아니고, 잘못한 게 아니니까. 내 사랑은 모유에만 갇힐 수 없는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