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장래희망이 지박령이었던가

집밖령이 되는 그날까지

by 또치맘

지박령.

또치를 낳은 후 도무지 집을 떠나지 못하는 나를 바라보면 이것만큼 좋은 수식어가 없는 것 같다. 내가 귀신은 아니지만, 한 장소에 발이 묶여 떠나지 못하고 있으니 그 정의에는 딱 들어맞지 않나.




한 번씩 그런 상상을 할 때가 있다. 내가 그냥 여기서 바깥으로 걸어나가면 어떻게 될까? 또치가 울어제끼고 강아지는 하울링을 하고 집은 엉망진창인데 남편은 야근일 때. 수면 부족에 화장실도 못 가고 밥도 못 먹은 나도 그냥 주저앉아 애랑 같이 울고싶은 그럴 때, 우는 아이를 안아 달랜 후 혼이 빠져 멍하니 현관을 바라보며 다음과 같은 장면을 그려보는 거다.


일단 악을 쓰며 울고있는 아이를 내려놓고,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닫는다. 여유있게 물줄기를 느끼며 뽀득뽀득 씻는다. 머리를 천천히 말리고 정성스럽게 스킨케어를 한 후 옷을 고른다. 아이를 안느라 평소엔 입지 못했던 까끄러운 소재로. 그리고 속눈썹 하나하나를 마스카라 솔로 정성스럽게 올려본다. 그후 휴대폰과 지갑이 겨우 들어가는 작은 백을 들고, 굽이 있는 구두를 신은 뒤 모든 것을 뒤로 하고 현관문을 닫고 나가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타임어택처럼 우다다 하는 게 아니라 콧노래를 불러가며 느긋하게 하는 내 모습을 가끔 그려볼 때가 있다.


하지만 내 상상은 거기까지다.


현관문을 닫고 난 후 갈 곳이 없다. 아무리 상상의 나래를 펼친들 그 어느 장소도 나와 어울리는 것 같지 않다. 나는 한숨을 한 번 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 메이크업을 지우고 옷을 갈아입고 아이를 달래며 집안일을 한다. 상상 속에서도 나는 집을 못 벗어난다. 이쯤되면 ’집박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년 전, 연고가 없는 이 도시로 이사온 이후로 나는 고립된 기분이었다. 이곳은 원래 살던 도시와도 꽤 거리가 멀었다. 친구들을 초대하기에도 미안한 거리라 누가 놀러오기에도 한계가 있었다. 다행히 직장을 다닐 땐 평일이 바빠 외로울 겨를이 없었지만 만삭이 되어 퇴사하면서부터 외로움이 극심해졌다.


아무데도 가지 못하고 집안에 앉아 하염없이 휴대폰 속 세상에서 헤엄치다보면 소셜미디어 속 지인들이 함께 어울리는 사진들을 발견하고는 했다. 그걸 볼 때마다 부러움인지 외로움인지 모를 감정에 눈물이 났다. 나도 그 속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가끔, 이 먼 곳까지 찾아와준 고마운 친구들이 있었지만 매 주말마다 교회에 가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나에겐 이 동떨어진 곳에서의 고립감이 견디기 힘들었다.



사실 나는 굉장한 집순이이고 내향적인 인간이라 집밖으로 며칠씩 나가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었다. 어릴 적엔 친구들이 놀자고 하는 걸 피해 화장실에 숨어있었을 정도다. 누군가를 만나는 건 그토록 소모적인 활동일 뿐이었다. 저 위에서 서술했던 상상 속 내 모습도 사실 평소의 모습과는 꽤 거리가 멀다. 그러니 나는 내가 외로움을 잘 안 타는 사람인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자유롭게 나가지 않기를 선택하는 것과, 자유를 박탈당한 심정으로 집에 묶여있는 건 다른 경우였다. 만삭이 되어 직장을 그만 둔 뒤로 고작 하는 외출이라곤 강아지와 함께 아파트 단지를 도는 것뿐인 날들이 계속되자 내 안에 외로움이 오래된 먼지처럼 켜켜히 쌓이기 시작했다. 남편은 지독한 집돌이라 매번 어디 가자고 조르고 설득하기도 어려웠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갑갑한 상황이 더 심화되었는데, 이때는 나갈 기회가 생겨도 체력이 딸려 나갈 수가 없었다. 쉴 시간이 생기면 잠이 먼저였다. 집 안에 갇혀 우울이 극에 달할 때마다 나를 끌고 근처 카페를 가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렇게 집 밖으로 나와도 피곤에 절여진 정신과 몸은 외출을 제대로 즐기기 어려웠다. 그런 경험이 반복되고 나니 나가는 게 꺼려졌다. 그냥 몸이 너무 힘들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집안이 조금만 어수선해도 마음이 어지러웠다. 그러나 계속 안아달라고 우는 아이와 함께 있다보면 매일 해야하는 집안일 정도만 겨우 처리할 수 있었다. 눈에 거슬리는 것들을 벼르고 벼르다 남편에게 부탁을 해봐도, 그의 눈에는 우리집이 그냥 저냥 괜찮은 공간이었기에 그걸 꼭 해야하냐며 부담스러워했다. 내 요구는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말다툼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답답함만 가중된 채로.


끊임없이 나를 찾는 아이와 강아지, 매일 해야하는 집안일, 체력을 다 쓸 정도로 나를 굴려도 여전히 어수선한 풍경… 나에게 집은 더이상 쉴 곳이 아니었다. 끝없는 굴레였다.



그래서 남편의 출근이 너무 부러웠다. 집을 벗어나 나갈 수 있는 것 자체가 특권이라고 생각했다.


출근 후 울음소리가 없는 조용한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고, 원할 때 화장실을 가고, 사람들과 어울려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것. 그냥 집안일과 아이에게서 잠깐 벗어나 몰입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있는 남편의 삶이 부러웠다.


그의 업무는 대부분 사람을 만나는 일이기에 그가 누군가를 만나 함께 웃고있는 모습이나 먹는 음식, 커피 등의 사진을 전달받을 때면 갑자기 눈물이 퍽 터졌다.

나도 이 집을 벗어나 그런 풍경 속에 있고 싶었다. 그 일상이 사무치게 그리웠고 사무치게 외로웠다. 난 지박령이 되기를 희망한 적이 없었다. 내 장래희망은 지박령이 아니었다.

나가는 남편이 미웠던 건 아니다. 그냥 부러웠을 뿐이다. 남편은 남편대로 그 부러움의 시선을 받으며 부담스러워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자기는 그저 일하러 가는 건데 왜 내게 미안해야 하는 건지 한 번씩 힘이 들었다고. 그 부담감이 미안하긴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사실 지금도 그 외로움과 갑갑함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남편의 배려로 그가 쉬는 날에는 온가족이 함께 이곳 저곳을 가곤 하지만, 내 안의 큰 외로움은 여전하다. 또래 공동체 안에 속해 격려받고 격려하던 시간들이 그립다.


그러니 아이를 낳고 내가 가장 힘들었던 감정은 다름 아닌 고립감이었다.

집안에만 갇혀 사회와 단절된 채 아이만 바라봐야하는 시간.


그래도 이것 하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지금의 나는 그나마 큰 어려움 없이 이 시기를 통과해가고 있는 중이라고. 이러니 저러니 힘들다고는 해도 꽤 행복하게 살고 있다. 출산 후 대략 4개월이 넘어가는 지금까지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남편은 물리적인 한계 안에서 자신의 최선을 다한다. 가까운 가족들도 자주 와서 아이를 케어해준다. 덕분에 한 번씩 숨통이 트인다. 남편이 없었다면, 가족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도움을 받으면서도 한 편으로 나에게 부대끼는 감정이 있었다.

아이는 부모가 봐야지. 애 하나도 부모가 제대로 못 케어할 거면 왜 낳느냐는 그런 생각으로 인한, 묘한 죄책감.



양육은 온전히 부모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민폐라고 여겼다. 내가 좋아서 낳아놓고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는가? 누군가에게 날 도와달라고, 배려해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는가? 도움을 받으면서도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몰아세웠다.


내가 남들에게 그런 기준을 대었던가? 남을 그렇게 비난했던 적은 없던 것 같다. 하지만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소셜미디어 등의 수많은 글들을 읽으며 그 기준을 내재화 했다. 부모라면 아이 한 명 정도는 책임지고 양육할 수 있어야 한다고. 애 하나도 혼자 못 키워서 여기저기 도움 받을 거면 낳으면 안 되는 거라고.


이게 얼마나 폭력적인 생각인지 아이를 낳고 깨달았다. 내가 직접 남들을 그렇게 판단한 적 없다 해도, 그런 글들을 흡수했다는 건 나도 그 삭막한 풍경에 일조한 셈이다. 삭막한 풍경 한가운데 내가 당사자로 서게 되자, 내 안의 수많은 목소리가 같은 말을 하며 날 비난하기 시작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두고 책임감이 없는 것이라고 신랄하게 물어뜯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양육이 온전히 부모만의 책임일까?


한 아이가 자라는 데에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다. 오래된 속담이다. 이전부터 아이의 양육이 오롯이 부모의 책임만은 아니었다는 걸 보여주는 말이다. 인간은 지금껏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왔다. 그런데 왜 아이를 키우는 것만 특이하게 공동체에서 동떨어진 영역이 되는 것인가?



한 아이를 건강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길러내기 위해서는 부모에게 힘이 있어야 한다. 경험해보니 그 힘은 주변의 도움과 따뜻한 시선, 소속감에서 나온다. 내가 이렇게 길게 나의 힘듦을 풀어냈어도, 나는 또치를 웃으며 대할 수 있다. 날 보며 웃는 또치를 함께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여유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또치가 태어나고 50일 가량, 나는 내내 멘붕을 겪었다. 그래도 무엇이든 혼자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함께 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 있기에 부담감에만 짓눌려 있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길을 함께 걷고 있는 또치의 아빠가 있기에 외롭지 않았다. 그 연대가 죽을 것 같은 고립감에서 나를 살렸다.


그러니 양육은 부모만의 몫이 아니다. 그럴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부모에게도 든든한 지원과 도움이 필요하다. 그걸 함께 감당해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건강하게 자란 아이는 또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자신의 몫을 잘 감당하지 않겠는가.




나는 지금 집박령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언젠가는 집’밖‘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은 흐르고 아이는 자랄테니.


지박령이 되기를 희망한 적은 없지만, 엄마가 된다는 건 집박령이 되길 희망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시간은 아이의 성장에 꼭 필요하기에.


애초에 원한에 묶여 지박령이 된 것이 아닌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발적인 집박령이 되었으니, 나를 집밖으로 꺼내주는 것도 주위의 사랑일테다. 그 연대를 발판삼아 나도 언젠간 집밖령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