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붕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나는 사랑할 때 가장 나다워진다.

by 또치맘

아이를 낳기 전의 삶을 돌아보면, ‘기능하는 나’만이 나라는 환상 속에 살아왔다. 학점을 잘 받는 나,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나, 완벽한 나, 성취하는 나만이 나라고.


“아직도 가야 할 길”의 저자 스캇 펙의 표현을 빌려오자면, 그게 내가 가지고 있던 세상에 대한 ’지도‘였다. 살아갈 방향과 방법을 알려주는. 그 지도에 따르면 완벽과 성취, 기능만이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기능하지 못하는 나는 내가 아니었던 셈이다.




그 지도에 충실했던 나는 그동안 몸과 마음을 스스로에게서 분리시켰다. 생산적으로 살기 위해 몸도 마음도 철저하게 대상처럼 여기고 도구화했다. 그래서였을까, 내 몸이 아프면 내가 아픈 것이고, 마음이 힘들면 내가 힘든 것인데 나는 도리어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 몸이 나를 힘들게 해.”

“내 마음이 나를 힘들게 해,”


몸과 마음이 아픈 나는 생산적으로 살지 못하니 진정한 나라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니 사실 저 말의 속뜻은 이것이었다.


“내 몸이 (생산적으로 살고싶은) 나를 힘들게 해.”

“내 마음이 (생산적이어야 하는) 나를 힘들게 해,”


나는 그렇게 생산적인 나, 기능하는 자신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며 스스로에게서 소외되었다. 기능하는 나만이 가치 있다는 지도로 세상을 계속 살았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불행이었을 것이다.



내 딸 또치가 태어나자 그 지도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다. 지도대로라면 기능하는 엄마만이 엄마여야 했다. 그런데 아이를 낳으며 예상치 못한 이벤트를 겪었다. 산후출혈과 자궁 적출을. 몸에 큰 부담이 가해진 상태에서는 그 지도대로 살아갈 수 없었다. 그러자 멘붕이 왔다. 현실과 지도 사이의 괴리에서 방황하다 지도를 수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선 먼저 겪어야 할 시간이 있었다. 바로 붕괴의 시간. 현실을 직시하자 멘붕의 상황은 차고 넘쳤다.


회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또치를 마음껏 안아주지 못했다. 원하고 바랐던 모유수유를 하지 못해 죄책감과 후회 속에 살기도 했다.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 앞에서 아이에게 화를 낸 적도 있다.


그렇게, 철저하게 믿어오고 의지했던 지도가 먼저 지워졌다. 기능하지 못하는 현실을 인정하며 말이다. 내가 인생을 걸고 따라왔던 지도가 사라지는 과정은 고통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착실하게 그 모든 과정을 겪어냈다.


그 시간을 고스란히 살아내다 보니 산산조각 난 멘탈의 폐허와 잔해를 마주하게 되었다. 글을 쓰며 조금씩 그 잔해를 치워나갔다.



글을 쓰는 시간 동안 그간 대상화 했던 내 몸과 미워했던 내 마음에 사과를 건넬 수 있었다. 떠나간 내 자궁과 그것이 대표했던 생명의 시간들을 애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를 몰아세운 혹독한 기준과 그 기준으로 버텨낸 삶의 모든 시간들을 슬퍼하기도 했다. 그러고 나니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사는 것. 무언가를 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말이다.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나를 나답게 했다. 멘탈이 산산이 붕괴되는 현장에서 기능하지 못했을 때, 날 구해낸 건 아이를 향한 나의 사랑이었고 나를 향한 남편과 가족들의 사랑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직 그 사실을 온전히 삶으로 살아내지 못하고 있다. 사랑하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기에. 그러니 깨달음이 삶이 되려면 앞으로도 수많은 붕괴의 현장을 겪어야 할 테다.


그래도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 전에는 붕괴 그 자체를 두려워했으나 이제는 그 후를 기대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 이제는 다시 세워질 나의 모습, 그리고 존재를 기뻐하며 살아갈 모든 시간들을 기대한다. 멘붕은 계속될 것이니 내 지도도 계속해서 수정될 것이다. 사랑의 힘으로.




예수는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했다.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은 자의 것이라며.


아기 또치는 온 힘을 다해 울고 온 힘을 다해 웃는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그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 그런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지금, 예수의 말이 나에겐 이렇게 들린다. 천국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이들이 누릴 수 있는 곳이라고.


이 땅 위에서 천국을 살아내기 위해 나도 나답게 살기로 다시금 다짐한다. 나답게, 사랑하며 살아가기로.


완벽하지 못한 나도, 로봇 같지 않은 또치도, 한계가 있는 남편도, 내 마음 같지 않은 모든 시간들까지도 두려움 없이 한껏 사랑하며 살고 싶다. 두려움을 내어 쫓는 온전한 사랑 속에서 거하길 소망하며, 사랑하는 나로 존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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