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멘붕-깔끔하고 쉬운 답은 없었다.

용두사미여도 괜찮아.

by 또치맘

용두사미.

내 글들을 들여다보다 문득 깨달은 불편한 진실.




원래는 지난주 또치에게 쓰는 편지를 발행하며 이 브런치북을 완성하려 했다. 그런데 그간 쓴 글을 찬찬히 읽으면서 뭔가 찜찜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에 글이 뒤로 갈수록 점점 힘을 잃고 있었기에. 그래서 완결을 망설였다. 마무리로 생각했던 아이를 향한 편지도 생각보다 말을 고르기 힘들었다. 하여 연재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기한 내에 글을 올리지 못했다.


그간의 글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무엇이 내 글의 힘을 잃게 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 떠오르는 답이 있었다. 바로 나의 완벽주의.

나는 내 글에서도 완벽하려 했다.



목차를 정하고, 처음 생각했던 주제를 차례대로 쭉 써내려갔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하나로 모이는 흐름이 보였다. 그 흐름에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사랑. 멘붕의 한가운데에 있던 나를 일으켰던 사랑. 꽤 깔끔하고 근사한 답 아닌가.


한 번 그렇게 흐름이 잡히자 그 후로 계속해서 모든 글의 결론을 사랑으로 모아가고 싶었다. 개별 에피소드이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가고자 했다. 깔끔하고 정갈한 답을, 완벽한 하나의 해답을 글을 통해 제시하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문제가 생겼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은 보이는.



초반의 글들에서 내가 내린 결론들은 살다보니, 그리고 쓰다보니 자연스럽게 얻게 된 깨달음이었다. 인위적이지 않은 진짜 통찰이었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먼저 얻은 깨달음들에 에피소드를 맞추기 시작했다. 사랑이라는 결론을 이미 정해놓고 생각들을 배열하는 식이었다. 그러다보니 글이 힘을 잃었다.


물론 사랑이 제일 중요하고, 사랑이 멘붕의 현장에서 나를 지탱했다. 이는 사실이다. 나는 여전히 사랑이 해답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걸 끝까지 설득력있게 풀어나가는 실력이 부족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일상은 전혀 매끈하지 않을진대 내가 추구했던 답은 어디 하나 모난 데 없이 완벽한 사랑이었으니, 일상과 글 사이에도 괴리가 생겼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든 그 완벽한 결론에 글을 끼워맞추고 싶었고, 그 결과 글의 생명력을 잃어버렸다.


완벽하고자 했던 내 욕심과 삶의 관성이 그간의 글에도 고스란히 표현되었다. 삶을 통해 ‘완벽’하고 보기 좋은 하나의 해답을 발견했으니 그걸 제시하고 싶은 욕심이 적나라하게 보인 것 같다. 깨닫고 나니 부끄러웠다.



나는 여전히 일상을 살면서 고군분투한다. 어디 사랑이 언제나 순전하고 순진하게 모든 상황에 적용이 되던가. 다시 말하지만 일상은 그리 매끈하지 않다.


나는 남편을 사랑하지만, 한 번씩 다툴 때마다 우리가 너무나 다른 사람임을 절감한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우리가 아주 같은 모양의 사람이 될 수는 없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도 뛰어넘지 못하는 차이는 존재한다. 그 차이가 있는 한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평생에 걸친 시간 동안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사랑이 있다고 그 노력을 건너뛸 수 있거나, 관계 맺음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또치를 사랑하지만, 계속해서 아이에게 적절한 사랑의 방식이 무엇인지 질문하며 살고 있다. 나의 선택과 방식이 아이에게 미칠 영향이 두려울 때도 있다. 아직도 아이가 달래지지 않는 울음을 울면 달래다 달래다 패닉에 빠지기도 한다. 사랑이 있다고 모든 고민과 어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또치를 사랑하지만, 딸과 함께하는 매일의 일상이 언제나 즐겁지만은 않다. 내 개인의 삶도 다채롭고 풍성해졌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다. 그게 뭐 그리 거창한 것도 아니다.


초밥이 너무 먹고싶었던 어느 날, 혼자 40분 거리의 제일 가까운 초밥집에 유모차를 끌고 걸어간 적이 있다. 더운 여름 내내 집에 갇혀있었으니 선선한 바람이 부는 이때라도 외출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생각보다 볕이 너무 뜨거웠고 또치는 그 길을 힘들어했다. 길바닥에서 힘들다고 울음을 터뜨린 아이에게 미안해서 그날 저녁에 또 울었다. 낮동안 자극이 과했는지 밤잠을 못 이루고 우는 아이를 안고 엄마가 초밥이 너무 먹고싶었다고, 그런 욕심을 부려 널 고생시켰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아이에게 사과를 건넸다. 그게 욕심이었다는 사실이 서글퍼서 또 눈물이 났다.



내 일상은 요즘 이렇다. 사랑하는 마음이 모든 서글픔을 씻은 듯 사라지게 만들지는 않았다. 힘듦을 미화시키지도 못했다. 남편과 나의 차이점도 그대로 존재한다. 신들린 듯 찰떡처럼 통하는 대화는 어쩌다 한 번 찾아온다. 내 일상은 여전히 울퉁불퉁, 모난 곳이 많다. 관념적이고 매끈하게 깎아낸 사랑은 이런 일상에 그대로 적용되지 못할 때가 더 많다.


그럼에도 사랑이라는 결론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랑이 일상의 만능 해결사여서가 아니다. 그 결론이 유효함은, 오히려 사랑하는 마음이 일상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삶의 면면이 언제나 아름다울 수는 없지만 그 사이 반짝이는 찰나를 사랑은 놓치지 않는다. 그 힘으로 힘든 하루도 살아낼 수 있게 돕는다.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가 그대로 존재할 수 있도록 내 마음에 여유를 준다. 그가 나와 같지 않음이 관계에 풍성함을 더해준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존재를 나만의 잣대로 평가하지 않을 수 있도록 끝간데 없이 달리는 생각에 제동을 건다. 우리가 종종 말다툼을 하고 서로 감정이 상해도 나는 남편을 사랑한다. 우리의 다름이 틀림이 아님을 사랑이 일깨워준다. 아마 남편도 나를 이렇게 사랑할 것이다.


또치를 사랑하는 마음은, 갑갑한 일상 속에서도 아이의 성장을 응원하고 기대하는 마음을 준다. 이 시기가 언젠가 지나갈 것이고, 이때에만 누릴 수 있는 기쁨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덕분에 나는 매일 내 품에 파고들어 자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볼을 만지고, 엉덩이를 토닥이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지금 내 시간과 건강과 자유를 희생하기’만‘ 하면서 또치를 키우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를 양육하고 온전히 붙어있을 수 있는 이 시간이 내게도 선물이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이를 인정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내가 경험한 이 사랑은 그저 순진한 감정이 아니었다. 서로를 향한 헌신이었고, 인생을 건 선택이었으며 평생에 걸친 훈련이었다. 그리고 마음 같지 않은 일상을 기어코 살아내게 만드는 힘의 원천이었다. 이 사랑은 내가 원했고 묘사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이 센 무언가였다. 내 글이 힘이 없었던 것은 내가 뒤로 갈수록 관념적인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사랑은 훨씬 더 날것이었음에도.




완벽주의자의 면모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을 글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내고 나니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내게 이런 모습이 있다는 것을 다시 인정하려 한다. 그리고 그 사실을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수용하려 한다.


나는 완벽한 결론을 원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 딱 들어맞는 완벽하고 매끈한 결론은 없다. 일상을 치열하게 살면서 깨닫는 조각 조각이 있을 뿐.


나는 여전히 깨달음의 여정을 걷고 있고, 이제 시작했을 뿐이다. 그 시작의 면면을 솔직하게 기록한 것에 이 시리즈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 글이, 결론이, 내 삶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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