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엄마가 되었다. 다시는 되지 못할. (2)

산후출혈, 그리고 자궁적출 이야기

by 또치맘

*전편에서 이어집니다.


자궁 안에 가득 고인 피를 발견한 의료진은 그때부터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내 출산을 담당했던 원장님은 퇴근하다 차를 돌려 다시 병원으로 복귀했고, 그 사이 당직 원장님은 근처 큰 병원들에 연락을 돌려 수술이 가능한지를 묻고 이용 가능한 앰뷸런스를 수배했다.


곧이어 119 대원들이 들어와 들것으로 나를 옮겼고, 구급차에 실려서 근처 대학병원으로 갔다. 어느 순간부터는 현실감각이 떨어져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구급대원들이 큰 소리로 내게 아이 볼 수 있다고, 병원까지 10분 남았다, 5분 남았다, 금방 간다, 이제 다 왔다, 마당에 도착했다 하며 내 정신을 붙잡는 동안 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누워있었을 뿐. 가는 동안 앰뷸런스에 동승한 원장님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내 다리만 붙잡고 계셨다.


구급차 안에는 자리가 없어 자기 차로 뒤따라오던 남편이 주차를 하고 응급실로 들어왔고, 이미 불분명해진 발음 때문에 나와 소통을 하지 못한 대학병원 의료진들이 수술 동의를 구하기 위해 남편을 찾아갔다. 커진 자궁 안에 피가 계속 고여있고, 출혈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자궁을 떼어내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는 이야기에 남편이 수술 동의서에 사인하는 동안 내 맥박은 이미 분당 180을 넘어가고 있었다.


응급실로 들어가 라인을 잡기 위해 목과 손등, 손목, 팔을 찌르는데 이미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혈관이 다 숨어버린 상황. 그중에서도 제일 메인이 될 목의 정맥을 잡기 위해 얼굴을 천으로 덮어놓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목을 찔리고 있는데 아픈 줄도 모르고 그냥 ‘찌르나 보다…’하던 내 아득한 정신. 굵은 바늘을 여러 번 넣었다 뺀 탓에 내 오른팔과 목은 바늘자국과 피멍투성이가 됐다.


나는 분명 눈을 뜨고 있고 대답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들리는 소리는 “환자분, 눈 뜨세요! 눈 감지 마세요!” 간신히 내가 뱉은 말은 “배가 아파요…”

수술해주신 담당 교수님이 누워있는 내 발치에 서서 그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 일일이 대답을 해주신 게 기억난다. 그 대답들이 얼마나 안심이 되었는지.


어찌어찌 수술준비가 끝나고, 수술방도 준비된 상황. 급하게 실려오느라 이전 분만병원 산모복을 그대로 입고 있었는데, 수술복으로 갈아입어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이미 축 늘어져 움직임이 어려우니 사람들이 가위와 손으로 그 옷을 뜯어내고 갈아입혔다. 지금 생각해 보니 산모복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았었는데 그땐 그냥 굴려지는 대로 몸을 내맡겼다. 의식은 흐리고, 판단은 없는 그런 상태로. 그리고 누군가가 내게 ”자궁을 적출할 거예요. 보호자분 동의 받았어요 “라고 말하는 설명을 들었던 것 같다. 고분고분하게 네, 하고 수술실 침대로 옮겨져서 양손이 묶이는 걸로 그나마 드문드문 흐린 기억까지 끝이 났다.


산후출혈은 말 그대로 속도가 생명인 응급상황이다. 내가 아이를 낳고 수술에 들어가기까지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하늘의 도우심이었다.


그 후 중환자실에서 4일, 일반 병동에서 4일을 거쳐 퇴원할 수 있었다.

수술 후 가스가 나오지 않아 물도 못 마시는 날이 5일 반이었다. 미음을 먹은 게 6일 차였다. 4일차 아침까지도 엑스레이 상으로 가슴까지 가스가 올라와있었고 그럴 땐 물조차도 장폐색의 원인이 될 수 있어 위험하다 했다. 그렇게, 아이 낳고 내리 6일가량을 엄격한 금식을 하느라 식탐이 최고조로 올라갔었다. 배도 고프지 않았고 목도 마르지 않았지만 뭔가를 삼키는 감각이 간절하고 그리웠다. 가장 먹고 싶었던 게 시원한 포카리스웨트였을 정도로.


한 번씩 오는 무너지는 마음에 울기도 많이 울었다. 울면서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찢어질 것 같은 배를 붙잡고 링거 폴대를 끌면서 병원 복도를 걸었다. 걸어야 가스가 나오고 수술 후 회복에도 좋다고 많이 걸어야 한다는 조언에 병동의 복도를 열 바퀴 스무 바퀴, 발목이 아플 때까지 돌았다.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몸에 주렁주렁 연결되어 있던 관들이 하나씩 제거되는 것에 기뻐하며. 어찌 되었든 회복을 위해 내 쪽에서 노력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것 자체도 감사한 일이니.


돌아보면 중환자실에서는 옆으로 돌아눕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누운 상태에서 팔만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일단 통증이 심했고 몸에 연결된 줄도 너무 많았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자리 정리를 할 때마다 그 모든 거치적거리는 선을 정리하며 나를 잡고 돌려주고, 침대에 깔린 패드를 갈아주고, 내 온몸을 닦아주었기에 일반병동에서 내가 혼자 앉고 일어서고 걷는 그 작은 발전 하나하나가 참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누가 나의 모든 걸 전적으로 케어한다는 건, 정신이 말짱한 상태에서는 상당히 수치스러운 일이다… 출산과 수술로 인한 분비물들을 친절한 손길로 다 닦고 갈아준 간호사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병원에서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던 건 분만병원에 혼자 남겨진 아기 생각 덕분이었다. 조리원도 안 가고 집에서 아이를 끼고 있으면서 모유수유 하는 삶을 야무지게 꿈꿨기 때문에 초유도 전해줄 수 없는 이 상황이 미안하고 힘들었다. 그래서 걸을 수 있게 된 날부터 이를 악물고 더 걸었다. 한 바퀴만 더, 1분만 더…. 그 걸음이 마치 아이에게로 향하는 걸음인 것처럼.


후에 더 길게 쓰겠지만, 모유는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 같았다. 세상에 내던져진 아이를 위해 엄마로서 각오하고 공부하고 준비했던 야무진 꿈이 있었는데 상황이 따라주지 않았다. 마약성 진통제를 비롯한 각종 약물들과 수혈팩들이 내 몸에 주렁주렁 달려있던 터라 초유는 주지 않는 게 좋겠다는 조언이 있었다. 나중엔 수유패드를 넘어 환자복 앞섶이 다 젖고, 급기야는 뚝뚝 떨어져 바지 허리춤이 젖어갈 정도로 젖은 도는데 내 젖을 먹을 아이도, 비워줄 유축기도 없으니 젖몸살이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단유약을 처방받았다. 울면서 먹었다.


모든 과정을 거쳐 어느 정도 회복한 후에 담당교수님의 퇴원 처방이 내려왔다.

당초 병실 침대에서 침대로, 누운 채로 옮겨져 급박하게 실려와 신발도 양말도 없었고, 입고 있던 산모복까지 수술 전에 찢겨 없어졌기에 퇴원을 하려는데 갈아입을 옷이 없었다. 마음이야 아무리 급했어도 전라로 나갈 수는 없는 일. 퇴원처방이 내려왔음에도 가질 못하고 얌전히 침대에 앉아 남편이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올 때까지 병실에서 기다렸더랬다.


중환자실은 전자기기 반입이 안 되기에 아이의 모습은 오직 하루 2번, 30분의 면회 시간에만 남편의 휴대폰을 통해 볼 수 있었다. 휴대폰 사용이 가능했던 일반병동에서는 남편이 비둘기마냥 신생아실 면회시간마다 물어다 주는 아이 동영상과 사진, 한 번의 영상통화로 그리움을 달래야 했다. 그래서 퇴원하는 그날, 드디어 아이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마음에 긴장하고 들떠있었다. 그리고 눈을 찡그리며 오물오물 입을 움직이는 아이를 분만병원 신생아실에서 보는 순간, 또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날, 남편과 함께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 모든 고생이 가치 있었다는 이야기가 내 입에서 나왔다.

그 모든 일이 헛되지 않았다고. 그럴 가치가 있었다고.

진심이었다. 아이 얼굴 보고 있으면 그냥 다 괜찮아졌다.

내가 그렇게 말할 줄 몰랐다.

나는 그렇게 엄마가 되었다.




아이를 낳으며 자궁을 잃었다. 아이와 한 몸 되어 품안에서 키웠던 그 충만했던 시간이, 나라는 존재가 그대로도 괜찮다는 허락 같았던 공간이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느낀 상실감은 거기에 있었다. 다시는 생명을 품을 수 없다는 그 사실에. 나는 엄마가 되었고, 다시는 되지 못할 것이다.


수술 후 중환자실에서 눈을 떴을 때 내 눈앞에 남편이 있었다. 그를 보고 내가 한 첫마디는 “배가 아파…. 나 이제 자궁 없어?” 였다고 한다. 말문이 막힌 그는 나중에 이야기하자며 대답을 피했고, 면회를 기다리던 내 부모님과 교대하기 위해 병실 밖으로 나갔다고. 기억에도 없는 말이지만 그 말이야말로 내 상실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준다.


한 생명을 품고 자라나게 한 내 몸은 이제 그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엄마라는 정체성은 단순히 아이를 품고 내보내는 데에만 있지 않다. 내 몸으로 키우는 시간은 이제 끝났지만 이젠 곁에서 양육하며 한 인간으로 키워내야 할 시간이 남았다. 나는 아이를 낳았고, 살아남아 아이 곁에 건강한 엄마로 든든히 있다. 이것은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자 ‘더 이상 생명을 품을 수 없는 자’라는 내 상실감을 모두 상쇄하고도 남을 사실이다. 새로운 생명에게 엄마라는 말을 들을 수는 없지만, 나는 또치에게 가장 좋은 엄마이다. 내 존재의 허락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그렇기에 내 자궁은 할 일을 모두 다 한 것이다.


고생한 내 몸의 일부, 아이를 품고 함께 커지느라 수고한 내 자궁을 나는 이렇게 떠나보냈다. 그리고 그 자궁으로 키워낸 아이를 품에 안았다. 엄마로서의 여정이 비로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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