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수유 무용담, 산산히 부서지다

나홀로 영웅이 되고싶었던 엄마의 자기고백

by 또치맘

어느날 새벽, 아이가 먹지는 않고 젖병을 가지고 장난치며 배시시 웃었다. 전에는 그 모습에 화가 치밀었지만 이제는 너무 귀여워 같이 웃을 수 있다. 생각해보니 나홀로 쓰던 무용담이 부서진 후에야 이 평화가 가능해졌다. 홀로 영웅이 되고 싶었던, 새벽수유 무용담 말이다.




아이와 함께 집에 온 첫날부터 새벽수유는 내가 담당하기로 했다. 잠귀가 어둡고 낮에 아이를 많이 케어하는 남편을 배려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남편은 낮에 집중적으로 일과 가정에 온 힘을 쏟았고, 그게 고마워서 새벽만큼은 내가 책임지고 싶었다.


그러나 드러내놓고 티는 안 냈지만 남편이 내게 고마워하고 다른 사람들이 대단하다 해주는 것도 큰 이유 중 하나였다. 뿌듯한 어조로, 남편이 아이를 많이 봐주지만 새벽수유는 나 혼자 한다며 마치 무용담처럼 생색을 낼 때마다 나 스스로 엄마로서 떳떳함의 명분을 찾아낼 수 있었다. 나를 걱정하며 일주일 중 하루는 자기가 수유하겠다는 남편의 제안을 뿌리치고 새벽수유만큼은 오로지 혼자 하길 고집한 이유가 거기 있었다.


문제는 내 체력이었다. 산후출혈로 피를 쏟고, 자궁적출이라는 큰 수술을 겪으면서 회복이 다 되지 않은 내 몸의 능력치를 너무 과대평가했다. 2~3시간 간격으로 밥을 찾는 아이를 케어해야 하니 밤 11시에 수유를 하고 침대에 누워도 1시에 다시 일어나야 했다. 수유와 트림까지 마치고 1시 반 전후로 아이를 눕히고 나면 3-4시 경에 어김없이 또 분유를 타야했다. 그 일을 반복하다보면 동이 텄다. 아침이 가고 낮이 왔다. 그리고 또다시 밤이 되었다. 그리고 반복. 내가 새벽수유의 고됨을 너무 쉽게 본 거다.



그때 가장 그리웠던 건 하루가 시작되고 끝난다는 개념이었다. 잠자리에 누워 하루를 마무리하고, 아침에 일어나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그것. 잠이 분절되니 하루가 어디서 시작이고 어디서 끝나는지 구별이 어려웠다. 마치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1주일, 2주일의 길이로 연장되는 것 같은 느낌. 심지어 외출도 없이 집에만 있었으니 장소도 바뀌지 않고, 끝맺음도 시작도 없는 시간이 계속 흘러갔다. 그때부터 내 달력은 아이를 데리고 집에 온 그 날로 멈춰있었다. 그 시간, 그 감정 그대로.


피로가 누적되다보니 수술 후 회복도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몸에 염증이 돌아가면서 생기고 열감기에 시달리기도 했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더이상 무시할 수 없었고 다시 수면이 간절해졌다. 조금이라도 잘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내 회복을 좌우할 열쇠였다.


그러다보니 아이의 수유텀이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단순한 공식이었다. 많이 먹으면 텀도 길어진다. 마침 또치는 분유를 잘 먹는 아이였다. 기대를 가지고 야심차게 넉넉히 분유를 탔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지 못한 변수가 있었으니 바로 그 분유를 먹는 또치였다. 낮에는 꿀떡꿀떡 잘 먹던 아이가 새벽에는 잠에 취해 어느정도 배가 차면 혀로 젖병꼭지를 밀어내며 입을 앙 다물었다. 트림을 시키고, 깨워도 보고, 다시 수유를 시도해도 아이의 딱 닫힌 입은 열리지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억지로 입에 젖병을 밀어넣으면 헛구역질을 했다. 트림을 시키려 몸을 세우면 삼키지 않고 입에 머금고 있던 분유가 주르륵 흐르기도 했다. 한 번 더,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다. 아이가 거부하는데 억지로 먹일 수는 없었다. 아마 내가 조급했던 만큼 아이도 힘들었으리라.


매일 새벽 아이를 트림시키고 재운 뒤 싱크대에 남은 분유를 버릴 때마다 버려지는 건 분유가 아니었다. 내가 잘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젖병 안에 들어있던 10분, 15분, 20분…. 그렇게 싱크대로 나의 시간이 사라지는 것같은 느낌에 애꿎은 아이에게 화가 치밀기도 했다. 이렇게 먹으면 조금 있다 배고프다고 다시 깰텐데, 한 번 먹을 때 넉넉하게 좀 먹지 싶어서.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또치는 새벽수유텀이 3시간 남짓이었다. 신생아치고는 훌륭한 수유텀인데 나의 조급함이 나 스스로와 아이를 힘들게 했다. 남편은 그때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나의 목소리와 한숨에서 억누른 화를 종종 감지했다고 한다. 그는 아이 울음소리보다 내 한숨에 더 쉽게 깰만큼 날 걱정하고 있었다. 나의 짜증이 낮까지 지속되면 그걸 감당해야 하는 본인 걱정도 있었겠지. 내 한숨을 듣고 깨서는 괜찮냐고 묻던 남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느날 새벽, 또치가 자다가 잉잉 울어서 정말 배가 고픈 줄 알고 허겁지겁 분유를 탔다. 그러나 그날도 아이는 분량의 반쯤만 먹고 입을 앙 다문 또치가 되었고,(그렇다. 아이의 애칭 또치는 여기서 유래했다.) 나는 남은 분유와 아이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갑자기 치미는 화를 참고 있었다. 뭐야, 배고프다고 운 것 치고는 별로 안 먹네! 왜 운 거야! 더 자고 진짜 배고플 때 일어나지! 그리고는 트림을 시키는데 10분을 넘게 토닥여도 트림이 안 나왔다. 트림이 안 나와 힘들었는지 아이도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온몸에 힘을 줬다. 발버둥을 치며 수술부위를 차대는 게 아팠다. 애도 속이 불편해 그랬을텐데 일단 버둥거리는 아이를 잡고있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 새벽, 시계를 쳐다보며, 머릿속으로 다음 수유까지의 시간을 계산하면서, 발버둥치는 또치를 계속 고쳐잡고 토닥이는 동안 나도 모르게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트림이 잘 나오지 않았는지 또치는 몸을 비틀다 방귀를 뿡 뀌었고, 그 직후 어깨를 들썩이며 안도의 한숨같은 작은 숨을 하아-하고 내쉬었다. 그 숨소리가 너무 귀여워서 순간 웃음이 터져나왔고, 곧이어 내가 아이의 등을 세게 두드린 걸 자각했다. 너무 미안했다.



내가 원한 엄마로서의 내 모습은 그런 게 아니었다. 다정한 엄마, 상냥한 엄마, 한없이 여유롭고 자애로운 어머니가 내 워너비였으나 그때 깨달았다. 부모라고 언제나 아이에게 따뜻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체력적, 정신적 한계에 부딪힐 땐 더더욱.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다음날 아침에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내가 너무 힘이 드니 일주일에 하루만 새벽수유를 도와줬음 좋겠다고. 그간 잠을 못자 예민한 아내에게 내내 시달리던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이 알겠다고 했고, 나에게도 일주일에 하루씩 새벽수유 휴무가 생겼다.


남편이 새벽수유를 맡아준 첫날, 7시간을 온전히 자고 아침을 맞았다. 그러고나니 세상이 달라보였다. 아이를 대할 때에도 훨씬 상냥하고 다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모든 새벽의 시간과 풍경이 내 머릿속에 여러 겹의 필름으로 재생되었다. 더이상 그러면 안 되겠다 생각했다.



또치도 이제는 잘 먹고 잘 트림하고 잘 자는 영아로 성장해 신생아때의 고됨은 없다. 결국 시간이 해결해줄 일이었는데, 어느 순간 내 머릿속에 생겨난 어떤 시선, 엄마라면 이정도는 해야한다는 압박감이 이미 잘 자라는 아이를 더 빨리 자라라고 재촉한 셈이다.


엄마라고 모든 걸 다 혼자 해야하는 건 아니다. 그렇게 하는 이들은 정말 대단하며 박수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 해서 잘못을 저지르는 걸까? 한계를 자각하고 도움을 청하는 게 엄마로서 자격미달이었던 걸까? 나는 내 안의 프레임에 갇혀 엄마라면 이정도는 해내야한다는 생각에 힘들어했다. 그게 뭐 힘들다고 징징대냔 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한편으로는 새벽수유의 힘듦을 온전히 혼자 지고 대단한 사람이 되고싶었다. 속으로는 새벽수유가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그러니 결국 나는 ‘힘든 걸 힘들지 않은 것처럼 해내는 자’가 되고싶었다. 엄마라면 마땅히 그리 해야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힘들 땐 도움을 청하고, 받는 것을 어려워하지 말았어야 했다. 다행히 나에겐 함께하겠다는 의지가 충만한 남편이 있었다.


그렇게, 나홀로 새벽수유 무용담은 끝이 났다. 남편을 배려하고자 하는 마음을 넘어섰던 내 이기적 욕심, 즉 그토록 자랑하고 생색내고 싶었던 내 마음의 욕구, 인정받고자 했던 욕구 그리고 사회의 시선에 더해 나 스스로 세운 ‘이정도는 해야 엄마’라는 기준은 아이를 향한 미안함과 현실적인 힘듦 앞에 저멀리 도망가버렸다. 한 달만에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린 것.



이제는 어디 가서 혼자 새벽 수유를 전담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나의 대단함을 넘어 남편의 배려가 돋보이는 이 상황도 크게 나쁘지는 않다. 이렇게 나를 생각해주는 남편이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더 큰 자랑거리니 말이다.


똑같이 힘들고 버겁겠지만 자신의 역할을 피하지 않고 육아의 기쁨도 힘듦도 함께하려는 남편이 곁에 있으니 새벽에 아이가 50ml를 먹든 150ml를 먹든, 2시간마다 깨서 울든 6시간 통잠을 자든 큰 상관이 없어졌다.아침에 일어난 상대방에게 투정 한 번 부리면 끝날 일이었다. 함께하는 이가 서로의 고됨을 이해하니 가능한 일이다.


육아에 있어선 혼자 쓰는 무용담보다 함께 쓰는 무용담이 필요하다. 우리만의 무용담. 이것은 서로가 서로의 고됨을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장치였고 새벽수유는 그 시작이었다. 아이는 자라고, 함께 쓰는 무용담은 계속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닐 수 있겠으나 우리에겐 서로가 영웅이니 말이다.



요즘 나는 새벽수유가 즐겁다. 아이가 잠에 취해있으면 눈도 못뜨는 그 얼굴이 귀엽고, 먹다가 혀로 밀어내고 입을 앙 다물면 부족하지 않게 충분히 먹은 것 같아 기쁘다. 감정이 덧씌워진 눈으로 아이를 보지 않으니 또치의 귀여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새벽수유도 곧 졸업할 때가 오겠지만, 그때까진 이렇게 기쁨을 잃지 않고 커가는 아이의 모습을 눈에 담고 만끽해야지. 무용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