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간의 울음이 가르쳐준 것.
수면교육을 한답시고 아이를 5시간 동안 울린 날이 있다. 우는 아이와 함께 나도 무너졌던 날. 그날을 속죄하듯 지금은 아이를 하루 종일 안아주고 있다.
글을 작성하는 오늘을 기준으로 78일 된 또치는 아직 낮잠이 힘들다. 어쩌다 한두 번씩은 등을 대고 자지만, 그러지 못할 땐 날 찾는다. 졸려서 칭얼대다가도 내가 아기띠를 하면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날 바라보며 웃는다.
품에 쏙 안긴 아이는 하루 낮잠을 총 6시간 정도 잔다. 그 시간동안 6.4kg의 또치를 내내 안고 있으면 솔직히 힘이 든다. 그래도, 허리가 끊어질 것 같고 어깨가 말려간대도 아이를 안아 재우는 이유가 있다. 밤마다 다시 떠올리며 ‘내일은 더 많이 안아줘야지’라고 다짐하게 된 ‘수면교육의 날’ 때문이다.
그날 또치는 낮잠을 자지 못해 5시간 가까이 목이 쉬도록 울었다. 누워서 팔다리를 버둥대며 온몸으로 울다가 결국 내 품에 안겼는데, 품에서도 한참을 진정하지 못해 으아앙 울다 잠들었다. 그 시간이 얼마나 서러웠는지 아이는 잠결에도 흑흑 댔다. 얼굴은 퉁퉁 부어 눈물과 땀, 콧물로 범벅이 된 채로.
그런데 나는 겨우 내 품에서 잠든 아이를 얼마 후 다시 침대에 눕혔다. 내려놓는 순간 아이는 불안한 듯 번쩍 눈을 떴고, 자신이 다시 등을 대고 누운 걸 알게 된 후에는 더 이상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엉엉 울다 결국 지쳐 쓰러져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그때 나는 쉬지 않고 날카롭게 우는 아이에게 절망감을 느꼈다. 아이가 울 때 나도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를 질렀다. 우는 또치에게 휴대폰을 들이대 동영상과 사진을 찍어대며 가족들에게 아이가 너무 한다고 하소연을 했다. 5시간을 자지러지게 울었던, 내 품에서까지도 울다 잠든 내 사랑하는 또치.
지금도 흑흑대는 모습을 찍은 동영상과 사진을 볼 때마다 또치에게 참 미안하다. 그 당시 나는 그걸 찍으면서 나의 절망에 갇혀 아이의 고집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을 뿐, 그렇게 우는 마음은 헤아리지 못했다. 또치는 품이 간절했을 것이다. 자기 멋대로 움직이는 팔다리도 무서웠을 것이고, 누군가의 품안이 그리웠을 것이다. 자기를 꽉 잡아주는 안전한 품이.
변명을 하자면, 그때까지도 나는 아이를 들어올리고 품에 안는 것이 두려웠다. 자궁적출 후에 무거운 것을 들지 말라고 안내받았다. 그래서 몸안팎이 수술의 후유증에서 완전히 회복되기 전까지 많이 안아주지 못했다.
등센서가 심한 아이를 내리 품에 안고 재울 수 없는 몸상태 때문에 고심하던 중 유튜브 알고리즘에 수면교육 영상이 떴다. 수면교육? 내용을 들어보니 보통 생후 6주부터 시작한다더라. 아이는 마침 50일을 갓 넘겼기에 이미 늦은 건가, 아차 싶었다. 그래서 수면교육을 실천해보리라 생각하며 누구도 도와주러 올 수 없었던 날 낮에 호기롭게 아이를 눕힌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부끄러운 이야기다. 수면교육 영상에서 낮밤 구분을 시켜야 한다는 정보를 들었다. 문제는 내가 그 정보를 반만 이해한 데 있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그냥 밝고 살짝 시끄러운 환경을 만들어 아이를 눕혔다. 어른인 나도 잘 잘 수 없는 환경에. 그러니 아이가 잘 못 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낮밤의 환경을 구분하는 것은 밤에 더 길고 깊게 자는 걸 연습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또치는 이미 낮밤 구분을 하고 있었다. 밤잠은 눕혀놓으면 잘 자고 심지어 조금씩 통잠을 잤으니.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목적은 알지 못한 채 방법론에만 집착했던 어리석음으로 아이는 오전 내내 잠에 들지 못해 목이 쉬도록 울어야 했고, 나는 내 딸이 내 방법을 따라와주지 않는 것 같아 깊은 절망을 느꼈다.
불안함이 나를 추동했다. 수면교육을 6주부터 시작한다는 말에 적기를 놓쳤나 싶었다. 나의 무지가 아이의 성장을 방해한 것은 아닌가 조급하기도 했다. 몰랐다는 핑계로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은 부모가 된 것 같아 죄책감을 느꼈다. 알고리즘이 데려다준 통잠자는 자녀를 자랑하는 수많은 영상 앞에 나는 길을 잃었다. 내가 잘못하는 것 같아서.
그런데 수면교육을 시도했다 아이가 우는 것에 무너지는 날 보며 깨달았다. 난 그냥 아이를 안고 있고 싶었다. 사랑하는 내 딸을 품에 안고 둥기둥기 엉덩이를 토닥이며 자장가를 불러주고 눈을 맞추고 싶었다. 내 품에서 스르르 잠에 드는 아이를 눈에 가득 넣고 싶었다. 그게 내가 생각한 엄마의 역할, 할 일, 이미지였다. (다른 이들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 건 절대 아니다. 그저 내 욕심이 그랬다는 것.)
하지만 난 아이를 그렇게 안을 수 없었고, 그 사실은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죄책감으로 번역되었다. 난 그때 엄마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내가 몸 상태를 핑계대며 하지 않는다고 가혹하게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있는 다른 ‘할 일’을 찾아냈다. 수면교육이라는, 준비되지도 원하지도 않았던 또 다른 일을. 그나마도 목적과 방향을 제대로 이해하는 과정 없이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당장 ‘할 수 있는’ 방법에만 몰두하여 아이를 그렇게 힘들게 했다.
마음껏 아이를 안을 수 없었던 절망과 죄책감이 엉뚱하게도 딸을 향한 원망으로 전환되어 그때는 또치를 탓했다. 아이가 고집이 세다고 불평하고 절망했던 그 화살은 사실 나를 향한 것이었다. 난 나에게 화가 났음에도 그걸 깨닫지 못하고 애꿎은 아이에게 화살을 돌렸다. 나중에 그걸 깨닫고는 얼마나 미안하던지….
나를 향한 화살을 아이에게 돌리지 않으려면 그 화살을 부러뜨려야 했다. 화살의 끝에는 ’엄마라면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날카로운 자기비난이 꽂혀 있었다. 뭔가를 할 수 없는 상황 앞에 난 매번 그 화살촉으로 날 찔러대며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꼭 무언가를 해야만 엄마인 것은 아니다.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이며 그 사랑하는 마음이 나를 엄마답게 한다. 하지 못하는 것들에 과도하게 죄책감을 느끼며 가혹하게 굴지 않아도 괜찮다. 그 가혹함이 엉뚱하게 아이를 향할 수 있음을 배웠기에 난 나에게 먼저 너그러워져야 했다.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기능하지 못한다고 스스로에게 퍼붓는 비난을 멈춰야 했다.
다행히 이후 검진에서 몸이 다 회복되었다는 소견을 들었다. 두려움 없이 딸을 안게 되자마자 나는 천슬링, 아기띠, 힙시트, 포대기 등 아이와 붙어있을 수 있는 모든 도구들을 다양하게 사제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한을 풀듯 내내 안고 있었다. 행복한 비명, 즐거운 불평을 늘어놓으며 휴대폰 사진첩에는 안겨서 기절하듯 자는 또치의 얼굴을 가득가득 채웠다.
손탔다고 모두가 걱정했던 또치는 지금 수면 루틴이 있고 밤에는 누워서 몇 시간 가량 통잠을 잔다. 잘 자라고 있다. 이제는 낮잠도 한 번씩 등을 대고 누워 잔다. 성장이 고마우면서도 아쉽다. 품에 안겨 내 살을 만지며 꼼지락거리는 손가락을 그리워할 날이 머지 않은 것 같으니 말이다.
존재를 기능으로 환산해 할 일을 늘어놓고 몰아붙였던 내 사고방식이 우는 아이 앞에서 산산히 무너져내렸다. 그러니 다시 생각해본다면 그날 내가 실패한 것은 수면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가했던 가혹한 교육이겠다.
끊이지 않았던 아이의 울음이 지금까지도 마음 한 켠에는 묵직한 아픔으로 남아있다. 밤마다 영상을 돌려보며 눈물을 흘릴 정도로. 그래도 그 날이 있었기에 귀한 것을 배웠다. 사랑을 증명하고자 완벽하게 무엇인가를 해낼 필요는 없다는 것, 존재는 해낸 일, 혹은 해야 할 일로 정의되지 않는다는 것을.
지금처럼 그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면 충분한 것 같다. 그 기저에 사랑이 있기에. 모든 사람들의 사랑의 모양이 다 같을 필요는 없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수면 교육을 택하는 것처럼 나는 안아주는 걸 택한 것뿐.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내가 안아준대도 아이가 몸을 뺄 날이 오겠지. 그때는 또 다른 방식으로 사랑할 것이다. 지금 내 품안에서 느낀 온기는 앞으로 또치의 삶의 여러 장면에서 다양하게 재현되리라. 엄마인 나도 계속해서 성장하며 사랑도 더 깊어질 테니, 그 온기는 지금보다 더 따뜻하고 안정적인 방식으로 전달될 테다.
또치가 깊어가는 사랑 안에서 따뜻한 사람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크길 바랄 뿐이다. 자신이 많이 안긴 만큼 자기도 넉넉한 품으로 누군가를 안아주는 사람이 되기를. 나처럼 해야 할 일들과 의무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사랑하고 존재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