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밥은 남편만 먹었다.
결혼 후 5년 반동안 아이를 기다려왔다. 그 기간 동안 쓴 임신테스트기를 줄줄이 붙인다면 모르긴 몰라도 내 키는 훌쩍 넘길 것이다. 쌓여가는 테스트기만큼 기대하고 실망하기를 수차례. 길다면 긴 시간을 기다려온 만큼 내 몸은 바짝 예민해져 있었고, 임신 3주 2일에 착상증상을 느끼기에 이르렀으니 그날 아침, 유독 배가 복근운동한 것처럼 뭉쳤다 풀리면서 유난히 짜증이 나길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음날로 넘어가는 새벽 1시에 떨리는 마음을 붙잡고 테스트를 해봤더랬다.
누가 봐도 한 줄인 테스트기를 붙잡고 뚫어져라 쳐다본 시간이 고스란히 경험치로 쌓였는지, 그날 본 첫 두 줄, ’ 초초매직아이‘같았던 그 선을 내 눈은 귀신같이 감별해 냈다. 두 줄. 시간이 흐르며 한 줄 옆에 희미하게 한 줄이 더 나타났을 때, 그때의 그 떨림이란. 사실 그 시점까지는 나만 보이는 두 줄이었기에 출장 중에 사진으로 소식을 전달받은 남편은 더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리자고 이야기했다가 나의 벼락같은 화를 견뎌내야 했다.
그 새벽, 잠을 못 이루고 감격했었다. 나도 엄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하나의 ’ 허락’이었기에. 그간 아이가 생기지 않는 이유가 나의 부족함때문인가 스스로 의심하고 자책했던 터라 아이가 내 뱃속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이제 내가 충분히 괜찮은 인간이라는 증거 같았다. 이제는 엄마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그대로의 존재로도 괜찮다는 신의 허락이었다.
초반의 극심했던 입덧과 환도통증말고는 임신 기간 내내 큰 이슈 없이 건강했기에 자연스럽게 자연분만을 하기로 마음먹고 아이와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축이 느껴질 때마다 불안해하던 시기를 지나 38주쯤 되니 아이가 언제 나와도 괜찮겠다 싶었고, 39주가 되니 오히려 조급해졌다. 아이는 뱃속이 참 좋았는지 너무 잘 커버려서 이미 초음파 상으로 3.78kg였고, 나는 점점 아이 낳는 게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진통을 부른다는 운동과 요가를 하고, 만보씩 걷고, 계단을 오르면서 자연진통을 기원했으나 아이는 무심하게도 예정일까지도 나올 생각이 없었다.
유도분만은 진통이 더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으나 세상사 뜻대로 되는 게 없으니 결국 예정일 당일 진료 때 여기서 더 크면 낳기 어렵다는 소견과 함께 유도분만날짜를 예약하게 되었다. 예정일 이틀 뒤로. 그날 얼마나 우울했는지.
다행히 입원 당일 새벽에 그렇게 기다리던 자연진통이 왔다. 병원에 전화해 보니 그때부터 금식하고, (이땐 몰랐다. 그때부터 장장 5일 반나절을 내리 굶게 될지…) 간격이 좁혀지면 병원으로 오라고 안내를 받았다. 진통 간격이 6분 정도 되었을 때 병원으로 출발해 새벽 5시에 입원했다. 자연진통이 왔기에 촉진제는 안 쓰려나 했지만…. 오전 8시까지 세 시간 동안 자궁문이 2cm에서 진행이 안 되어서 결국 투여 결정. 그러고 나서 지옥의 진통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점심 전에는 참을만한 고통이라 호흡하고 자세 바꿔가면서 진통을 보냈고, 남편한테도 병실 올라가서 못 잔 잠자고 와라, 점심 먹고 쉬었다 와라 할 정신까지는 있었다. 마침 그 병원 밥이 맛있다고 소문이 나서 애 낳고 바로 미역국에 밥 먹을 생각에 잔뜩 기대했었는데, 그 맛있기로 유명한 산부인과 밥은 결국 남편만 맛을 봤다는 슬픈 이야기.
점심 이후부터 촉진제 용량이 올라가면서 정말 자연의 섭리 앞에 인간은 한 마리 짐승인가 싶을 정도로 정신없이 진통을 겪었고, 휘몰아치는 고통 앞에 비명을 지르길 수차례. 못하겠다는 소리가 나올 때마다 할 수 있다는 남편의 독려로 버티고 버티다 더 이상 못 견디겠다 싶을 즈음에 원장님이 들어오시더니 아가가 영 내려오질 않는다고…. 잠깐 고민하시더니 간호사 선생님이 내가 힘줄 때 배를 같이 밀어주기로 하고 분만에 들어갔다.
오후 6시 정도에 침대가 분만대로 변했고, 힘주기를 시작했고, 의료진들의 도움으로 아이가 점점 내려오는 게 느껴지더니, 6시 8분에 아이가 우르르 나왔다. 난 눈도 못 뜨고 기진맥진해서 누워있는데 켈록켈록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 에엥 에엥 하는 울음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도 같이 울었다. 그 후 샤워캡 같은 걸 쓴 남편이 가림막 안으로 들어와 아기 탯줄을 잘랐고, 그렇게 병실 입실 후 13시간 만에 3.61kg의 뜨끈하고 쪼글쪼글하고 묵직한 아가가 내 가슴 위로 올라왔다. 아이와 인사를 나누고, 빨리 사진을 찍어달라고 남편을 재촉해 두 장의 사진을 남겼고, 남편은 아기 상태를 체크하러 아이와 함께 떠났다.
그 이후로 일주일 넘게 아이를 만날 수 없다는 걸 알았다면, 분만병원에 아이를 홀로 남겨둬야 한다는 걸 알았다면, 그 꼬물이를 더 오래 품에 안고 있었을 텐데.
지쳐서 눈을 감고 있는 게 아니라, 안간힘을 다해 눈을 떠 갓 태어난 내 아이 얼굴을 내 눈에 가득 담았을 텐데. 그땐 몰랐다. 떨어져 있던 아이 생의 첫 8일이 지금까지도 이렇게 사무칠 줄은.
출산하면서 내가 이미 피를 많이 흘린 상황이라 후처치를 꼼꼼하게 했다며, 원장님이 수고했다고 내 손을 잡아주고 떠나셨고 남편이 다시 들어왔다. 두 시간 정도 누워있다가 괜찮으면 병실로 올라가는 일정이었는데 남편이 온 지 10분 정도 지난 후 몸이 이상하다는 걸 알았다. 남편에게 밖으로 나가 누구라도 좀 불러달라고 요청한 후, 침대에 누워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직감으로 느꼈다.
당직이셨던 다른 원장님이 들어와 내게 이것저것 물어보셨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출산하면서 흘린 피만 보이던 상황이라 겉으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고 한다. 게다가 이미 난산축에 속했던 분만이라 몸이 힘들어서 그럴 수 있다고 설명하시며 처음에는 내 증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자꾸 어지럽고 숨이 잘 안 쉬어진다 하며 배가 너무 아프다고 하니 그분이 간호사를 불러 맥박을 체크했고, 맥박이 분당 150회가 넘자 뭔가 이상하다며 초음파 기계를 가지고 와 복부 초음파를 살폈다.
그리고 마주한 건 자궁 안에 가득 찬 피.
어디를 보더라도 넘실거리는 피.
상상도 못 해본, 내 예상 시나리오에는 전혀 없었던 산후출혈이 내 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