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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Oct 23. 2018

변하지 않고 변화할 것






분야를 막론하고 무언가 자기 길에 들어섰을 때 우리는 자신만의 '색'을 만들어 내고 싶어 한다. 


나의 색은 무엇이며 내가 가는 길의 방향은 어디가 될지를 정하고 싶어 한다. 누군가는 끝없는 고민의 소용돌이를 오래도록 겪기도 하고, 누군가는 나도 모르게 내 안에서 잔상으로나마 자신의 정체성을 생각한다.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시간은 불안한 탐험과 즐거운 희열이 교차되었다가, 한순간 지루해지기도 하면서 알 수 없는 폭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우연히 발견한 어떤 색이 나를 대변해주기도 하고, 고민 끝에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무런 색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자리에서 무얼 하던 자신의 '색'을 가지고 싶어 하는 건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내재된 매우 본능적인 성향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자신의 '색'을 뚜렷하게 드러내며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우리는 감탄하거나 질투하며 주목한다.










나름의 방정식



어렵게 찾은 색은 다채로운 방식으로 채색된다. 옅어지기도 진해지기도 하고,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내기도 하면서 자신의 색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열중한다. 그다음엔 그다음을, 그다음을, 그다음을 이어간다. 그러면서 자신의 프레임이라는 것이 만들어지게 된다. 많은 경험과 고민이 담겨 탄생된 나만의 틀은 어떻게 적용해도 나의 색을 표현해주는 도구이자 방정식이 된다. 그렇게 스스로 정체성을 확인하고, 성취감을 마주하는 시간들을 보내게 된다.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게 되면, 사람은 안심하고 노련해지면서 여유를 찾는다. 가끔은 그 여유로움이 매너리즘에 빠지도록 하기 때문에 여유는 과할수록 위험하다. 내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은 마치 일정하게 반복되는 공정처럼 룰을 만들어내고, 그렇게 자기 복제와 반복의 시간 또한 피할 수 없게 된다.










고이지 않고 흐른다는 것



과거에 이룬 명성으로 현재와 미래를 사는 사람들을 매체에서 그리고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화려한 경력과 과거의 영광은 어디에서나 유용한 명함이 되고, 명함이 된다고 착각하며 살아가게 만든다. 세상은 변했지만, 변한 걸 모르는 태도와 기준이 누군가에게는 경악스러울 만큼 퇴색된 '고인 물'처럼 느껴진다는 걸 과거에 젖어 살아가는 사람들은 알까. 


고이지 않고 흐른다는 것은 나이가 젊고 어리고 새로 시작하는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몸에 익어버린 습성이 없을수록 새롭게 물들이고 흡수하는 속도가 빠른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고이느냐 흐르느냐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결국엔 마음가짐이 아닐까.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으며 아무래도 상관없도록 무뎌지면, 그렇게 그 자리에 멈춰 서게 된다. 자신의 색이 강하고 과거의 명성이 두터울수록 그것을 깨고 나와 새로운 탐험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처음 시작했던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 모르겠다.


오늘은 이문세의 '우리 사이'를 한참 동안 반복 재생했다. 그 노래가 좋은 것보다, 그에게 너무 익숙했을 오래된 리듬감이 아닌 지금도 너무나 흐르는 리듬감으로 색이 진한 목소리를 얹는 탐험을 했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쾌감을 주었다. 환갑을 바라보는 그에게 그것이 과연 쉬웠을까. 갖고 새로운 색으로 자신을 물들인다는 게 시작점에 서있지 않은 사람에게 어떤 마음가짐이었을까. 





나는 어디쯤 와있을까.

너무 빨리 앞서가다 멈추지 말고, 천천히 그렇게 흘러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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