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은 언제나 기분이 뒤숭숭하다.
이제 곧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아쉬움과 많은 것들을 이루지 못하고 지나와버린 일 년에 대한 씁쓸함을 뒤로한 채 어수선하고 바쁘게 시간들이 흘러간다. 정말로 바빠서 바쁜 것인지 마음만 바쁜 것인지도 알 길이 없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한 해를 정리하고 나를 다듬으려고 애쓰지만, 마치 시간도둑이라도 있는 것처럼 한 달이 뭉텅이로 도려내 진다. 그렇게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새해를 맞이하고야 말지만 아무리 떠들썩하게 유난을 피워도 일상은 달라지는 것 하나 없이 그렇게 흘러간다. 매번 그랬다.
이번 연말은 조금 다르다. 아니, 많이 다르다.
엎치락뒤치락하며 10개월을 품어낸 아이가 세상의 빛을 볼 준비를 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배가 묵직해지는 것을 넘어서 '언제 아이가 나와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산부인과 원장님의 말이 온종일 내 귓가를 맴돌며 일상을 24시간 대기조로 살아가게 하고 있다. 하필이면 예정일이 올해와 내년의 경계에 있는 탓에 내겐 나이 한 살 더 먹는 것에 대한 우울감을 충분히 만끽할 여유 따위는 사라져 버렸다.
분주한 12월은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으면서도 멈춘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출산 가방을 싸고 새 식구가 집에 오면 쓰게 될 물건들을 사고 닦고 빨고 정리하면서 빠트린 것이 없나 마음속으로 점검하고 또 점검한다. 순산에 도움이 된다는 호흡법이나 동작들을 연습해보기도 하고 갑작스레 밀려오는 출산에 대한 두려움을 애써 억눌러보기도 하다가 그런 마음들이 겹겹이 쌓여 악몽을 꾸기도 한다.
그렇게 언제 올지 모르지만 곧 올지도 모르는 '그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평소처럼 지내야 한다는 건 마치 폭풍전야를 살아가는 것 같다. 누구도 나를 대신해줄 수 없겠으나 나 혼자만의 의지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그 시간을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한다.
이런 기다림을 살면서 경험한 적이 있었던가. 어릴 때 삶의 대단한 터닝포인트라고 느꼈던 날들을 돌이켜본다. 수능 시험 보던 날, 대학 원서를 접수하던 날, 교환학생을 신청했던 날, 면접 보던 날, 직장을 옮겼던 날, 지금의 남편을 만났던 날, 결혼했던 날, 이사했던 날들. 모든 걸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했던 나날들이었고 떨리는 마음으로 준비하며 기다렸다.
아이는 그 어떤 것 보다 내가 선택한 삶이지만, 그 존재를 알게 된 순간부터는 어떤 것보다 '받아들임'이 중요한 시간들이라는 걸 열 달의 시간이 말해주었다. 앞으로 더 많은 받아들임이 필요하겠지. 마음가짐이 중요하지만 마음대로만 되지는 않는, 예견되었지만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알 수 없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고 또 아이러니하다. 문득, 그게 삶인 건가 싶기도 하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굵직하고 격렬하게 경험하는 일이 바로 아이를 낳는 일이 아닐까.
먼저 엄마가 된 친구가 "지금을 즐겨"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하루가 다르게 숨쉬기가 힘들어지고 밤에 자다가 자세를 바꾸는 것조차 몸이 힘든 경지가 되었는데 지금을 즐기라니. 아마도 그다음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거란 뜻이겠지. 사촌언니가 했던 말도 생각난다. "키우는 게 훨씬 힘드니까 낳는 거 너무 무서워하지 마."라고. 육아 선배들의 웃픈 농담들은 반은 위로요, 반은 만만치 않은 현실을 예감하게 해 준다.
아이가 2020년 생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남편은 나만큼이나 혼돈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루짜리 지방 출장에도 직장 상사에게 예민하게 굴었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어떤 송년회 약속도 잡지 않은 채 회사의 종무식조차 못 갈 수도 있겠다며 자신에게 예정된 모든 일정을 불확실하게 바라보고 있다. 나 대신 유난을 떨어주는 모습이 고맙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그는 한동안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기분이 들 것 같다고 말했다. 글쎄. 어떨지는 나도 모르기에 긍정도 부정도 해줄 수 없었다. 정말 이 존재가 우리의 DNA를 반반 섞은 결과물이 맞느냐는 인체의 신비와 과학에 대한 생경함을 담은 말이다. 터질 것 같은 배와 요동치는 태동이 너무나도 확실하게 존재를 말해주고 있지만 아직 눈 앞에 나타나지 않았기에 나 역시 어떤 기분일지 섣불리 예감할 수 없다.
이 글은 아이를 낳기 전 마지막 글이 될까. 아닐까.
그조차 알길 없이 집 앞 카페에 나와 이 초조한 기다림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언제 "하나, 둘, 셋"을 외치게 될지 모른 채로. 언제 외치게 되어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이 시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