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난아기는 뒤집기만 해도 박수를 받는다. 그게 바로 그 아이의 할 일이기 때문이다. 제 할 일을 마친 아이는 박수를 받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다.
성장이 끝난 어른이 해야 할 일은 '생산'이다. 어떤 식으로든 무엇인가를 생산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고,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자에게 세상은 쉽게 어른의 자격을 주지 않는다. 생산하지 않는 어른에게 사람들은 따가운 비난을 보낸다. 굳이 누군가의 시선이 아니더라도 생산이 조금만 늦추어지거나 잠시 멈추게 되면 스스로 우울감이나 좌절감에 빠지기도 한다. 일상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기 마련이고, 모두가 빠르게 가는 횡단보도에서 나만 멈춰서 있는 것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태껏 내 삶에 책임을 다해왔고 그것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나의 생산 현황을 자꾸만 점검하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 가장 긴 휴식기를 같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나는 내 할 일을 다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며 가장 크고 거대한 생산을 준비하고 있다. 충분히 쉬고 본능에 따르며 무리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가장 큰 노동인 셈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나 자신을 다독여주고 있다. 그 누구도 아닌, 나만이 오롯이 나를 다독일 수 있다. 그게 그렇게도 어렵지만, 누군가가 대신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쓸데없다고 느꼈던 사소한 일들을 조금 더 느리게 시선을 오래 두며 해보고 있다. 불필요한 물건을 정리하는 일, 화분을 살피고 노란 잎을 떼어내는 일, 가만히 앉아서 집안을 둘러보며 멍을 때리는 일 같은 것들. 바쁜 시간의 틈에 그런 것들에까지 내어줄 여유는 없었는데, 막상 해보니 나쁘지 않다. 마음의 찌꺼기들이 비워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비워내 진다.
묵은 마음의 때는 벗겨도 벗겨도 매일 쌓이기 때문에 자주 그것을 비워내는 작업을 해줘야 하는 것 같다. 빠르게 돌아가는 쳇바퀴에서 잠시 내려와 아주 느리게 흘러가거나 멈춰있는 삶을 선택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불안이 되고 그것이 가벼운 우울감으로 직결될 때도 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이유도 목적도 없는 것 같은 현타에 빠질 때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알게 된 건 이 현타는 아무리 애써도 쉽게 찾아오지만, 또 시간을 지내다 보면 바람처럼 휙 지나쳐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지나칠 바람이니 잠시 쐬어주어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생산적 일지 비생산적 일지 모르는 일상의 순간순간들을 담담히 보내고 있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