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이 생겨 며칠을 친정에서 머물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살던 방인데, 오롯이 나의 공간이었던 곳이 이젠 엄마의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이곳에 방문한 '객'이 된 느낌이다. 엄마의 색을 지닌 잡동사니들로 채워지면서 나의 흔적은 조금씩 물이 빠지듯 옅여지고 있다.
그보다 더 달라진 건 엄마와 나의 달라진 취향과 생활패턴이다. 모든 걸 내 자유에 의해 이렇게 저렇게 흐트러트려 놓았던 삶의 방식이 오랜만에 엄마를 만나 정직한 패턴에 맞춰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집안의 인테리어는 내가 더 정갈하고 그럴싸하게 해 놓았을지 모르지만, 제 때에 하는 제 일들은 엄마를 따라갈 재간이 없다. 이를테면,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한 후 바로 양치질을 하며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먹지 않고 앉아있는 자세를 바르게 하고 있는 것 같은 일들. 나 역시 비슷한 패턴으로 사는 것 같지만, 몇 년 전 엄마의 구속에서 벗어난 그 시점부터 모든 것은 조금씩 다 틈이 나기 시작했다. 삼시 세 끼를 제대로 먹지 않으며 늦게 일어나고 양치도 대충 하고, 귀찮아서 사 먹는 일이 잦아지면서 나는 마음껏 풀어헤쳐졌다.
그래서 친정에 오면 항상 엄마에게 잔소리 들을 구석이 발견되고야 만다. 외출하고 들어와서 손발을 바로 씻지 않았거나, 잘 때는 스마트폰을 곁에 두고 자는 사소한 일들에 엄마는 조잘조잘 나를 공격한다. 오늘은 크나큰 실수를 하고야 말았는데, 그건 바로 엄마가 냉장고에 넣어둔 딸기를 씻지도 않고 그냥 먹어버렸다는 것. 한마디로 농약 한 컵 원샷한 셈이다. 딸기는 쉽게 물러서 미리 씻어놓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엄마에게 제대로 한소리 들었지만, 나도 지지 않으며 씻지도 않은 딸기를 왜 넣어놓느냐고 엄마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그 덕에 속을 해독할 만큼 더 많은 양의 과일을 추가로 먹었다. 엄마는 내가 집에 왔다고 나에게 좋은 과일과 먹을 것들을 잔뜩 준비해둔 터였다. 나는 그렇게 오랜만에 엄마의 모든 챙김을 온전히 받기만 하는 날들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다시 어릴 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결혼 후엔 내가 엄마의 보호자라는 생각으로 살았는데, 오랜만에 엄마가 다시 나의 보호자가 된 것 같았다.
어릴 땐 어린애 취급하는 걸 제일 싫어했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마냥 응석을 부릴 수 있는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자꾸 체감하게 된다. 엄마가 나이를 먹는 게 보이고 나 역시 나이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기에 엄마를 이해하면 할수록 동시에 서글퍼진다.
친정에서 지내는 동안 엄마의 보살핌을 실컷 받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