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한 달이 훌쩍 흘러가버렸다.
하루에 아주 잠깐의 시간도 노트북을 펼칠 수 없을 만큼 힘든 5월을 보냈다. 여전히 그것은 현재 진행 중이지만, 그래도 기록하지 않으면 휙 하고 시간과 함께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나의 감정과 여정들을 기록하기 위해 오늘만큼은 힘을 주어 글을 써본다.
나는 준비가 된 것도 준비가 안 된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와 마음가짐으로 얼마간의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엄마의 재촉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완강히 거부하지도 간절히 바라지도 못한 채로 그 어떤 존재를 기다려왔는지 모르겠다. 이쯤이면 적당한 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갖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게 될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도 늘 내 안에 자리했다.
"난 언제나 내 인생이 제일 중요해."
라고 말했을 때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것도 니 인생이야."
무심코 흘려들었던 말을 오늘에야 다시 곱씹어보는데 왜 이렇게 목까지 올라 찰 만큼 울컥하는지 모르겠다.
그 존재는 정말 느닷없이 찾아와 나를 무력화시켰다. 쉽게 지치고 피곤했던 며칠이 흘렀지만, 원래 타고난 저질체력이었던 나는 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었다. 사촌의 결혼식에서 생각보다 뷔페를 양껏 먹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고, 어쩐지 커피에 손이 가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다음 날 좋아하던 일본 라멘을 억지로 꾸역꾸역 먹고도 반을 더 남긴 오후에 피곤하게 터덜터덜 집에 돌아오며 온 우주의 기운이 틀림없는 그 존재 때문임을 직감적으로 확신하게 만들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완전히 뻗어버렸다. 먹지 못했고, 가만히 누워있어도 온 몸의 기운이 역류하는 것 같은 메슥거림에 몸부림쳤다. 매일 악몽을 꾸었고, 눈을 뜨는 것도 감는 것도 달갑지 않았다. 병원에 가서 확인하기도 전에 이미 온몸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어떤 존재가 내 안에 있음을.
잠시도 제대로 서있기 힘든 너덜너덜한 상태가 되었을 때쯤 겨우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믿기지 않는 존재를 확인하고 그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그저 얼떨떨했고 현실 감각을 잃은 듯했다. 기쁨도 걱정도 뭐든 그것을 실감해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일 텐데, 남의 일인 듯 실감이 나지 않았다.
머리가 생기고 팔이 생겼다. 또 한 번의 심장박동 소리를 확인했다. 미칠 것만큼 괴로운 날들이 기약도 없이 지속되는 가운데, 내 안에 몇 센티도 안 되는 존재는 변화무쌍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아직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지만, 사람 비슷한 모양을 갖춰가고 있는 중인 걸 확인하니 한편으로는 신비롭기도 하다.
이 작은 존재가 앞으로 나의 삶을 완전히 달라지게 할 수도 있겠지.
유리천장 같은 사회의 편견의 테두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일까 아니면, 이제부터 철저한 사회적 약자가 되는 것일까. 와 같은 걱정도 문득문득 내 머릿속을 지배한다. 나의 정체성은 어떤 형태로 흘러갈지에 대한 망상을 늘어놓기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보내고 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할 때 '누군가의 엄마'가 표현의 전부가 되는 것이 나는 영 별로였다. 워킹맘 같은 표현도 달갑지 않았다. 여태껏 내가 누군가의 딸로 살아왔다고 해서 가족 안에서의 역할이 내 수식어가 된 적은 없었는데, 엄마라는 이름에 지워지는 짐이 도대체 얼마나 무겁길래 그것을 마치 신분의 호칭처럼 쓰는 것일까. 경험하지 못한 행복과 책임에 대해 그저 한낱 애송이 같은 허세일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렇더라도 너무 유난스럽지도 너무 무디지도 않게 받아들이면서 삶의 균형을 잡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