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수많은 종류의 괴로움과 고통이 있지만, 유독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고 그 강도에 비해 알려지지 않은 고통이 있으니 그게 바로 입덧이 아닌가 싶다. 나 역시 나에게 생길 일이라고는 예상치 못했기에 무관심했지만, 이제는 입덧이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입덧을 조금이라도 완화하기 위해 검색하고 찾아보다가 깨달은 건 이 고통이 정말 '그들만의 리그'처럼 여겨진다는 점이었다. 일상의 사소한 힘겨움들이 모두 이야기의 소재가 되는 시대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내 평생 가장 극심하게 겪은 이 고통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는다는 사실은 정말 극한의 외로움이다. 스스로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어딘가에 하소연할 기회마저 잃어버리게 된다니, 이 얼마나 가혹한가.
입덧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내 때문에 고민하는 남편들의 글을 읽어본 적이 몇 번 있지만, 정말 소수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조차도 본인이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고통을 다 알지 못한다. 결혼을 하지 않은 미혼 여성들도 이 고통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 아니, 관심을 가질 일이 없다. 요즘은 기혼 여성이라고 해도 아이를 낳지 않기로 선택하는 부부들이 많아지면서 더 이 부분은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혼자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 아이를 낳지 않는 삶에 대한 이야기, 워킹맘의 고충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만, 몇 달이면 어차피 지나가는 일들인 임산부의 시간은 오롯이 그들만이 서로를 위로하고 마음을 알아줄 뿐이다. 게다가, 입덧이 심하지 않은 임산부들도 있어서 그들을 보면 입덧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마음도 약해지고 몸은 더 불안정해지는 시기에 모든 것을 무력화시키는 강력한 입덧을 약 두 달간 겪었다. 난 얼마나 심한 편에 속할까, 거식증 환자가 더 괴로울까 내가 더 괴로울까. 의미 없는 비교만 되뇌었던 시간이 이제 조금씩 끝나가고 있다.
이 고통을 알리겠다는 다짐은 아니지만, 한 번쯤 누군가는 이렇게 구구절절 써놓은 글이 어딘가에 하나쯤 있어도 되는 거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어 속풀이를 하듯 써본다.
입덧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이야기할 수 있는데, 급격한 체력 저하와 무기력증, 구토와 울렁거림, 홍조와 미열을 꼽을 수 있다. 원래 임산부는 일반인보다 체온이 높아서 항상 이마가 뜨겁고 가끔은 머리가 띵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뭐 그 정도는 약간의 불편함으로 넘어가 줄 수 있다. 체력 저하와 구토 증상이 너무도 강력했기에 그 어떤 불편도 잘 느끼지 못하게 해주는 효과를 지녔기 때문이다.
임신 증상은 체력 저하로 시작되었는데, 웬일인지 힘이 없고 피곤한 날이 갑자기 찾아왔다. 어제까지 힘이 넘치다가 갑자기 컨디션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안 좋아졌다. 그리고 이틀 후 극심한 입덧이 시작되었고 못 먹는 날들이 일주일이 넘어가면서 누워있는 것 이외의 모든 활동이 버거울 정도로 체력이 저하되었다. 세수나 양치질 같은 일들도 서서하기가 힘들었고, 잠깐 타는 엘리베이터에서도 쭈그려 앉아있었다. 집 앞 마트나 편의점 정도는 당연히 갈 수 없고, 앉아있는 것조차 힘이 있어야 가능한 자세였다는 것을 실감했다.
동네를 지나가다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아주 천천히 걸어가시거나, 작은 유모차 같은 걸 끌고 다니시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문득 내가 노인이 되면 이렇게 힘이 빠져 동네 한 바퀴를 도는데도 한참이 걸리게 되겠지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만큼 먹고 힘내서 활동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감사한 일인지 나는 깨닫고야 말았다.
하지만, 체력 저하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건 잠시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메슥거림과 울렁거림. 그리고 끝내 토하게 되는 결말. 차라리 잠을 자는 게 나았다. 자는 동안은 적어도 못 느끼니까.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많이 자려고 노력했다. 잠에서 깨는 시간이 아쉬웠다. 다시 시작되는 울렁거림이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입덧 약의 하루 최대 복용 치인 4알을 매일 먹어도 입덧은 나아지지 않았다. 약을 토한 적도 많았고 물도 토했고 양치하다가도 토했고 하루에 세 번을 토한 적도 있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빈 속으로 헛구역질을 하기도 했다. 냄새도 너무 예민해져 가족 중에 누군가 냉장고 문을 열면 지독한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아 괴로웠다. 아랫집 저녁 냄새에 토하기도 했고, 라면 끓이는 냄새도 세상 고약한 썩은 내가 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심지어 브런치에 글을 한 편 올리고 나서 바로 토하러 간 적도 있어서 그다음부턴 잠깐 동안 글을 읽고 쓰는 것조차 포기했다.
항암과 관련된 책에서는 치료 시 증상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입덧과 비교를 하기도 한다. 일상생활이 힘들어지고 입맛이 없어지면서 구토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개인차가 크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그만큼 입덧의 고통은 극심한 것이다. 산부인과 원장님은 워낙 입덧이 심한 편이니 일찍 끝날 거란 기대를 안 하는 게 좋다고 말씀하셨고, 나는 그동안 세 번의 입덧 수액과 한 번의 영양제를 맞았다. 그래도 입덧 약보다는 수액이 효과가 있는 편이었고 무엇보다 저렴했다. 보험도 바우처도 안 되는 입덧 약을 매일 최대치로 먹어도 나아지지 않는 사치를 부리며 입덧 지옥을 지나왔다.
입원을 하려던 그 주에 증상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해 지금은 하루 2알의 약을 먹으며 과일과 빵,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입원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 달이 지나가면서부터 기약 없는 고통이라는 사실이 정말 심신을 지치게 했다. 지겹고 서럽고 짜증이 치밀었다. 임신을 실감할 마음의 여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입덧은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의 틈을 주지 않았다. 갑자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친정에 가서는 남편과 전화를 하다가 눈물이 났고, 집에 있을 땐 엄마와 전화를 하다가 울었다. 너무 힘들다고 어린아이처럼 하소연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옆에서 극진하게 간병을 해줘도 누구와 나눌 수 없는 고통이었기에 내 마음은 더 힘들었고 약해졌다.
입덧을 완화시켜 준다는 건 안 해본 게 없다. 입덧 밴드와 입덧 혈자리 지압, 각종 사탕과 젤리, 매실차와 알칼리수에 이르기까지 크게 효과를 본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던 것들. 입덧 혈자리는 너무 많이 눌러대서 멍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효과를 떠나서 무언가에라도 의지하고 싶은 심리적 이유가 컸다. 가만히 누워서 이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보다는 나았다. 스마트폰 게임도 닥치는 대로 다운받아 어디에든 정신을 팔기 위해 노력했다.
세 번째 수액을 맞은 후에야 조금씩 먹을 수 있게 되었는데, 스무디를 마시고 빵이나 피자, 카레를 먹는 날도 찾아왔다. 물론, 한 두 번 먹은 음식은 쉽게 물려서 다시 먹고 싶어 지지 않는다는 것이 애로사항이긴하다. 그렇게 먹히지 않는 많은 음식들 중 가운데, 먹을 수 있는 것과 먹고 싶은 것들을 매일 떠올려야 하는 깊은 고민들의 시간이 지나가면서 드디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입덧은 아직 진행 중이지만,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희망과 기쁨의 감정을 갖게 해 주었다.
나는 그나마 외부활동을 조금씩 할 수 있게 된 이후로 입덧 지옥을 표현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지옥 불구덩이에서 살아 나왔다.'라고 말하고 다니는 중이다.
이미 수척해져 버린 얼굴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