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꿈틀대고 나는 멈춰 서서

by 흔적




첫눈이 내리는 날.


창밖에는 예상치 못한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고 집에 혼자 있던 나는 아이처럼 "우아~"하고 탄성을 내지르며 창문을 열었다. 손이 시린 것도 잊은 채 스마트폰을 꺼내 연신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댔다. 눈에 대한 짧은 감상을 마치고 다시 창문을 닫고 커튼을 쳤다. 다시 적막이 흐른다.


나 혼자 텅 빈 집에서 하루 중 밝은 때의 대부분을 보낸다. 아침부터 저녁이 오기 전까지. 남편은 날이 밝으면 부랴부랴 일어나 뛰어가듯 회사에 출근을 하고 날이 저물어서야 버스에 끼여 집으로 돌아온다. 혼자이지만 나는 나름대로 하루를 바쁘고 부산스럽게 보낸다. 침대를 정리하고 세수를 하고 난 후 시리얼을 먹고 요가를 한 후 찐 고구마나 사과를 먹고 작업실로 들어가 책을 읽다가 노트를 펴고 글을 쓰기도 하고 노트북을 만지작 거리는데 이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빈틈없이 숨 가쁘게 이어진다.


요즘은 '좋아하는 걸 더 좋아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 중이다. B매거진에서 새롭게 발행한 '잡스 에디터(Jobs Editor)'편을 읽다가 발견했던 구절인데 나를 가장 오래도록 붙들고 있는 말이다. 좋아하는 걸 좋아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보았냐는 말. 모르고 있던 건 아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을 상기시키는 말. 어떤 진리 같은 명언보다 그런 말들이 흐릿한 듯 오래도록 마음을 붙잡는 편이다. 은근하게 내 일상을 맴도는 말. 나는 어떻게 해야 좋아하는 걸 더 좋아할 수 있을까.


오늘부로 만삭이 되었다. 꽉 찬 10개월 임산부. 여전히 낯설고 생소한 신분이다. 자세를 바꾸는지 잠에서 깬 것인지 뱃속의 아기는 하루 종일 격렬하게 꿈틀대는데 나는 여태껏 중 가장 오래도록 멈춰서 있는 기분이 든다. 입버릇처럼 "고여있으면 안 돼."라고 되뇐다. 나에게 가장 두려운 건 고여버리는 것인가 보다. 흐르지 않고 그대로 고여 흙탕물이 되어버리는 것.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고 깊어지지도 않은 채로 잠시 멈추는 것.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시를 보러 다니고 서점으로 카페로 편집샵으로 새로운 영감이 존재하는 곳을 찾아다녔다. 우연한 만남도 예정된 만남도 나름의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새로운 걸 보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환기가 일어났다. 내 안에서 새로운 생각들이 넘쳐 흐름을 느꼈다. 이걸 다 어떻게 담아서 무언가로 만들어낼지 골몰했다. 그런 나날들을 보낼 땐 샤워를 하면서 눈을 감으면 마음에 딱 꽂히는 어떤 무형의 개념 같은 것 혹은 단어 같은 것들이 번개처럼 떠올려졌다. 그게 당장 어떤 큰 쓸모를 같지 못한다고 해도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을 발견한 것처럼 기뻐했다.


요즘의 고민은 어떻게 고여있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거다. 분명 세상의 흐름에 잠시 떨어진 시간을 보내게 될 텐데, 그 시간을 어떤 식으로 견딜 수 있을까. 예전처럼 밖으로 나돌아 다니지 못하고 만남의 횟수를 줄이면서 육아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겠지. 그 안에서 나는 어떤 걸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출산일을 기다리는 지금의 시기는 마치 그 워밍업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할 수 있는 것들을 어떻게 재정비할 수 있을 것인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이야기'들에 몰입해본다. 이곳에 쓸 글감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나 스스로에게서 나올 수 있는 컨텐츠는 무엇이 될 수 있을지 낙서 같은 메모를 매일 이어간다. 멍을 때리기도 하다가 카페의 잡지를 뒤적여보기도 하다가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기도 하면서 시간이 흐른다. 천천히 복잡하게 머리를 굴려대는데 그럴수록 그 무언가가 떠오르지 않게 되니 꽉 쥐고 있는 마음을 얼마간은 놓아야 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벌써 한 해의 마지막 달이다.


나는 유난히 길게 숨 고르기를 하며 2019년을 정리해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