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강하다는 말이 싫다. 태어나서 이 보다 더 큰 고통이 없었고 힘겨운 견딤이 없었음에도 강하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 이 모든 걸 흔들림없이 참고 이겨내야할 것 만같은 부담이 이미지로 덧씌워지는 건 왠지 강요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나에게 24시간을 내내 의지하며 한 몸 처럼 살아가는 이 아이를 위해 또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낳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 키우는 고통이라더니. 나는 그 고통을 여지없이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육아가 엄마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아닌 것은 아닌 독박육아의 현실. 그리고 그 정점에 모유수유가 있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직수와 유축의 시간은 고단함 그 자체다.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놀아주고 씻기는 것을 몇 번 반복하면 하루가 금방 저문다. 거기에 젖병 설거지를 한 후 스팀 소독을 마친 후에야 가까스로 육퇴의 시간이 다가온다. 회사 다닐 때 기다리던 퇴근 시간보다 더 간절하게 육퇴를 기다린다.
남편의 급작스런 출장으로 독박 of 독박이 정점을 찍었던 날. 1차 영유아검진이 예약되어 있던 날이기도 했다. 아침 수유를 마쳐갈 때 쯤 엄마가 집에 왔다. 우리 셋은 서둘러 준비해 집을 나섰다. 예약 시간이 아슬아슬했다. 눈썹이 휘날리게 유모차를 끌고 달려가 병원에 도착해 키와 몸무게를 재고 진찰실로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은 눈과 귀, 심장 소리, 반사신경 등 기본적인 발달 사항을 체크한 후 모두 양호한 편이라고 말씀하셨다. 은근 긴장했는데 다행이었다.
하지만 큰 키에 비해 몸무게가 중간보다 약간 떨어져 호리호리한 편이라고. 키가 백분위 88인데 몸무게는 겨우 44. 몸무게가 한 달 가까이 정체라 꽤나 애를 태웠던 나는 선생님께 고민을 털어놨다. 통잠을 10시간 가까이 잔다고 했더니 아직 밤중 수유를 끊을 때가 아니라고. 어쩐지 몸무게가 안늘더라니. 점점 하향곡선을 그리던 백분위는 다 이유가 있었구나. 나 편하자고 통잠 자는 걸 반기고 그대로 자버렸던 것이 원인이었던 것 같았다. 아차 싶었다. 미안한 마음이 몰려왔다.
게다가, 예상치 못한 아토피 진단. 심한 건 아니지만 약하게 아토피가 보이는 것 같으니 보습제를 잘 발라주라고. 남편의 건조한 피부를 닮았나보다 생각하는 순간
"부모님 중에 알레르기 비염이 있으세요?"
"네, 저요..."
또 나야? 그 때부터 멘탈이 조금씩 너덜너덜해지기 시작했다. 비염이 아토피와 연관이 있을 줄은 몰랐다. 멍해졌고 걱정할 거 없다는 선생님의 말이 내 귀를 스쳐지나갔다.
병원을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숨을 푹푹 쉬고 고개를 떨구며 내 얼굴은 죽상이 되었다. 너무 신경쓴 탓일까 두통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엄마가 하는 말 하나하나에 가시가 세웠다. 괜한 투정이 엄마에게로 향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엄마에게 연이어 신경질적인 말투를 내뱉다가 또 아차차.
아기를 낳은 후 일주일에 두 세번씩 집에 와서 밥도 해주고 집안일도 해주고 육아도 도와주는 엄마였다. 난 그런 엄마에게 이건 입맛에 맞지 않는 다느니, 쓰레기 통은 이 자리에 놓는 게 아니라느니, 엄마가 사다준 실리콘 뒤집개 색이 맘에 안든다느니 시시콜콜한 것들로 엄마를 괴롭혔다. 그리고 엄마가 집에 가고 나면 늘 후회했다.
그런 엄마한테 내가 또 무슨 짓을. 하던 일을 멈추고 소파에 드러누워 과자를 우걱우걱 씹으며 당충전을 했다. 감정을 스스로 풀어내야지 그렇지 않으면 죄없는 엄마에게로 화살이 향할 것만 같았다.
엄마가 되면 엄마의 마음을 잘 알게 된다는데, 오히려 응석받이가 되어버린 나란 존재를 어떻게 해야할까.나는 그 어느 때 보다 나약해졌다. 일단 몸이 약해졌고 그에 따라 마음도 자연스레 약해졌다. 그리고 지쳤다. 매일을 견딘다는 마음으로 4개월이 흘렀다. 겹겹이 쌓여 터질 것 같은 마음을 반은 남편에게 반은 엄마한테 던지고 있다.
참 못났구나, 나.
아이가 예쁘지 않아서가 아니다. 행복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정말 그저 단순히 힘들어서다. 체력이 안되고 그러다 보니 마음이 곧잘 바스라진다. 그러다 겨우 추스리고 다시 쳇바퀴같은 육아 일상을 시작한다.
엄마는 강하지 않다. 한없이 나약하다. 하지만 견딜 수 밖에 없어서 견디는 것 뿐이다. 적어도 나라는 엄마는 그렇다.
우리 엄마도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