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 6개월 동안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아기와 함께 집에서 보냈다. 처음엔 아기가 어려서 그다음엔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이젠 독박 육아를 통해 일상 안에 자리를 잡아서. 이런저런 이유들로 집과 한 몸이 되어간다. 내 입엔 하루가 멀다 하고 거미줄이 쳐지기 시작했고 남편의 퇴근 시간, 엄마가 집에 오는 날을 목이 빠지게 기다린다.
말은 아주 안 하는 것은 아니다. 하루 종일 아기에게 말을 걸고 옹알이에 반응하며 작은 몸짓이나 표정에도 크나큰 리액션을 해주느라 내 성대는 쉴 틈이 없다. 하지만 내게 결핍된 건 물리적인 말하기가 아니라 어른들의 대화다. 요즘 어떻게 산다던가,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낸다던가, 재밌게 본 드라마는 이런 거라던가, 그 친구는 어떻게 지내냐는 식의 시시콜콜하고 잡다한 이야기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서 가끔씩 친구나 지인들을 집에 초대하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나는 반가움과 다급함이 버무려진 태도로 그들을 맞이했다. 아기를 보여주고 함께 음식을 먹으며 그간의 회포를 풀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 오래 쌓아놓은 적립금을 한 번에 쓰는 짜릿함을 느끼듯 그간 못다 한 말들을 우수수 뱉어냈다. 육아의 고충을 토로하기 위해 그간의 에피소드들을 빠르게 나열했고 몰랐던 소식들도 새로고침 했다.
상대의 말을 듣기도 전에 하고 싶은 말이 입에서 근질거리고 가끔은 말을 잘라내기도 하는 내 모습. 좀처럼 여유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다 잠시 침묵하기도 하는데 쌓아둔 할 말이 너무 많아 생각이 안나는 거다. 아 이건 꼭 이야기해야지 했던 게 있었는데 뭐였더라. 왜 생각이 안나지. 좀 적어놓을 걸 그랬나. 떠올리느라 애쓰는 시간이다.
너무 흥분했던 걸까. 지나고 나면 늘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내가 무슨 말을 했고 들었는지 기억이 흐릿하다. 그래서 빈도가 매우 낮은 그 만남과 대화들을에 대해 남편과 자주 곱씹는다. 다시 되새기며 남편에게 팩트 체크를 하기도 한다. 그때 그가 뭐라고 했지? 그가 썼던 단어가 이거였나 저거였나. 그래서 내가 뭐라고 말했지? 대화의 주제가 대화가 되는 현상이다.
너무 오래 굶으면 허겁지겁 먹게 되지만 막상 얼마 못 먹는 것처럼 나의 말하기도 어느새 다급하고 정신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대화의 고픔이 이토록 날 허기지게 할 줄이야. 배고픔만큼이나 참기 힘든 게 말의 고픔이었다는 걸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예전에 카페나 식당에서 아기 엄마들이 유모차를 옆에 두고 수다를 떠는 장면들을 종종 마주친 적이 있다. 그때마다 난 속으로 생각했다. 뭐가 저렇게 할 말이 많아서 쉴 새 없이 떠들어댈까. 별 영양가 있는 이야기도 아닐 것 같은데. 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이젠 과거를 반성하며 내가 그들이 되었음을 실감한다. 아 얼마나 갑갑한지 아느냐며. 이게 얼마만의 수다인지 아느냐며. 그동안 얼마나 목이 말랐는지 모른다며.
이제 보니 대화의 영양가는 주제의 심오함이나 지식의 뽐냄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주고받는 과정 안에 담긴 감정들. 그게 전부다. 더 많은 개수의 이야기를 나눌 필요도 더 빠르게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좀 쓰잘데기 없으면 뭐 어때. 그냥 그 시간이 소중하고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달콤하다. 짧아서 조금은 아쉬운 달콤 쌉싸름.
그러니 너무 급하게 마시다 체하지는 말자.
그런 날은 꼭 딸꾹질이 멈추지 않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