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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Aug 01. 2020

단유의 날이 밝았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도저히 끝이 날 것 같지 않았던 시간은 착실히 흘러 그 끝에 다다랐다. 무엇의 끝인고 하니 207일간의 모유수유 이야기다. 살면서 이토록 무방비로 뛰어들었다가 된통 당한 일이, 미련하게 붙잡고 매달리며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일이 또 있었을까. 사랑하는 내 아이와 다신 없을 애틋한 교감의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고단하고 괴롭고 아팠던 시간들. 누구든 하고자 하면 다 하는 건 줄 알았는데 결코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었던, 결국은 아이와 함께 맞춰가며 겨우겨우 한 걸음씩 나아갔던 애씀의 과정들이었다.


나는 꼭 이걸 내려놓은 후에 그간의 과정에 대해 속풀이 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야 홀가분하게 털어지고 끝이 맺어질 것 같았다. 그렇게 이 글을 쓴다.






아이를 낳고 병원에서 정신없는 2박 3일을 보낸 후 말로만 듣던 조리원에 입성했다. 그렇게 천국이라던데 이제 편히 쉴 일만 남았구나, 라는 생각이 착각이라는 걸 아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정신이 없었다. 적응이 필요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뭔가 해야 하는 상황들에 당황스러웠다. 회복되지 않은 몸을 추스르려 좀 쉬려고 하면 쉴 새 없이 울려대는 내 방 전화기. 신생아실이었다.


"산모님, 아가 배고프데요. 분유 먹일까요?"

"아니요. 내려갈게요."


아무것도 모른 채 젖을 먹이려고 아이를 안았지만 아이는 울다가 5분도 채 먹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하염없이 아이를 깨우다 포기하고 방으로 돌아가면 그제야 잠에 깨서 배고프다고 운다며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하루 종일 왔다 갔다만 반복하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저녁 8시 이후부터 아침 7시 이전까지는 분유로 보충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다고 시간에 편하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뭉친 가슴은 돌덩이처럼 굳어 살짝만 스쳐도 아팠고 직수보다 괴로운 유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에 알람을 맞춰놓고 자다 일어나 어두운 방에서 유축을 하고 다시 잠에 들었다. 집에 가고 싶었다.


2주의 시간이 지나 집으로 갔다. 그런데 집은 더 무방비였다. 조리원은 천국이었구나. 뒤늦게 깨달았다. 아이는 두 시간 간격으로 잠에 깨서 울었다. 한 시간 만에 일어난 적도 있다. 24시간 동안 13회의 수유 횟수를 기록한 적도 있다. 밤낮은 없었다. 아이의 먹고 자고 싸고의 반복을 따라 내 시간도 반복됐다. 잠이 너무도 고팠다. 잘 수도 안 잘 수도 없는 쳇바퀴 같은 시간이었다. 도무지 밤에 통잠을 잘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수유쿠션 위에만 눕히면 잠에 드는 아이러니. 문제는 잠뿐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자세를 잡는 것이 어려웠다. 유튜브도 찾아보고 검색도 해가며 따라 해보기도 했지만 도통 나아지질 않았다. 이거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니었구나. 아이를 살펴가며 꺾여지는 목과 굽어가는 등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다. 왜 이렇게 까지 하고 있는 건가. 희생일까. 나에게도 희생정신이라는 게 있었구나. 없는 줄 알았는데. 내 아이를 향한 나의 고된 희생은 모성애인지 아니면 집착인지, 오기인지 헷갈렸다. 매일 두세 번씩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그래야 겨우 아팠던 등이 이완되고 피곤이 풀리면서 조금이나마 나아졌다. 물줄기를 맞으며 매일 생각했다. 난 안될 것 같은데.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얼마 못할 것 같아. 내일까지만 하자. 오늘까지만 하자. 이제 그만하자. 두 달은 해야지. 100일까지만 하자. 4개월만 채우자. 5개월까지만. 


그 하루하루가 쌓여 207일이 흘렀다.


완전 모유의 줄임말인 '완모'. 이 단어의 완벽함은 갓 엄마가 된 나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게 했다. 한 끼도 분유를 먹이지 않는 완벽한 모유수유를 다짐하게 했다. 아니, 한 번도 다짐한 적은 없었는데 어느새 그리로 향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애초에 모유량이 많은 엄마도 아니었다. 그래서 더 힘들었다. 완모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여유 없이 빡빡하게 시작한 것이 나를 더 다급하게 만들었고 금세 지치고 말았다. 지친 채로 시간에 끌려갔다. 


모유가 얼마나 애착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면역 물질과 항체, 그 외 다양한 영양분을 함유해 아이 몸에 얼마나 좋은지 이야기하는 뉴스 기사는 넘쳐난다. 하지만 모유수유의 힘든 점에 대한 이야기는 그들만의 리그처럼 맘카페나 개인 블로그에 공유된 것이 대부분이다. 인생에서 이토록 가치 있고 힘든 일도 없는데 왜 수면 아래에서 엄마들끼리만 그저 노하우를 찾아 검색창을 전전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모유가 분유보다 소화가 잘 돼서 수유 텀이 짧다는 것, 그로 인해 장시간 외출이 불가능하다는 것(평균 한두 시간), 외출을 해도 마땅한 수유실을 갖춘 공간이 흔치 않다는 것, 하루라도 아이와 떨어질 수 없다는 것, 아기는 가만히 누워서 성실히 먹기만 하지 않는다는 것, 그런 아기와 씨름하다 보면 목에 담이 걸리는 정도는 일상이 된다는  것 등등.


엎치락뒤치락하며 백일까지 완모를, 5개월까지 하루 한 번 분유를 먹이는 혼합 수유를, 6개월 때부터는 점차 분유 비중을 늘려 207일 만에 모유수유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울기도 많이 울었고 남편에게 온갖 투정도 다 부렸다. 허리와 등 통증 때문에 울면서 병원에 다녔다. 6개월 무렵 단유를 결심하고 마사지를 예약했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취소하기도 했다. 힘들었지만 조금 더 먹이고도 싶었고 막상 그만하려니 예쁜 모습 충분히 봐주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기도 했다. '엄마가 힘들어서'라는 이유가 미안하기도 했다. 주변에 이야기했을 때 무심코 돌아오는 '벌써?'라는 대답에 과민 반응하며 흔들리기도 했다. 그렇게 복잡 미묘한 감정의 폭풍을 겪으며 끝을 냈다.


그 순간을 만끽하기 위해 늦은 밤 남편과 식탁에 마주 앉아 맥주를 마셨다. 얼음컵에 호가든 한 캔을 따라 시원하게 들이켰다. 부드럽고 향긋하고 시원했다. 내가 그토록 간절하게 원했던 한 모금의 느낌이 이거였나. 1년 반 만에 마셔보는 맥주 맛이 실감 나지 않았다. 자꾸만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쩝쩝거렸다.


"축하해."


남편이 잔을 부딪히며 내게 말했다. 누구보다 나의 단유를 기다렸던 건 다름 아닌 남편이었다. 나의 고단함을 옆에서 모두 지켜본 사람. 나는 그동안 그에게 단유 할까 하고 오백 번쯤은 물어봤다. 그는 제발 그러라고 오백 번쯤 대답했다. 이제 더 이상 묻지 않아서 그도 홀가분할 거다. 그토록 손꼽았던 날이고 해방의 날이었지만 축하받을 만한 일인가 싶기도 해서 그냥 멋쩍게 웃어버렸다. 


기분 좋은 취기가 감돌았고 그대로 거실에서 대자로 뻗어 잠이 들었다. 다음날, 단유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한 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미리 예약해둔 곳으로 갔다. 비 온 뒤 아직 습기가 남아있는 아침이었다. 싱숭생숭했다. 약 한 시간 정도 마사지를 받았다. 다리가 저릴 정도로 쉴 새 없이 가슴을 풀어주고 나니 몸이 가벼워졌다. (이상하게 누워있는 게 힘들 만큼 다리가 저렸었다.) 묵직하게 차올라 등을 조여오던 느낌들이 다 사라졌다. 몸이 가벼워진 만큼 마음도 가벼워졌다. 집에 바로 들어가기엔 아쉬울 만큼.


버스 정류장을 향하다가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아주 맑고 진한 카페인이 잔뜩 들어간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콜드브루 한 잔 주세요."


207일간의 시간을 떠올렸다. 나 잘한 거 맞겠지. 그걸 누가 평가할 수 있으랴. 내 삶인데. 누구의 말이 아닌 내가 나를 다독여주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잘했다. 잘했어. 고생했고. 최선을 다했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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