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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Aug 31. 2020

수다쟁이 엄마가 된다는 것


"넌 물에 빠져도 입만 동동 뜰 거야."


중국에서 함께 교환학생을 하며 1년 동안 같은 방을 썼던 친구가 내게 했던 말이었다. 나는 친구에게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밤에 자기 전까지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오늘은 뭐 먹을 건지, 수업 끝나고 어디에 갈지, 영화는 뭐 볼지, 여행은 어디 갈지, 간식은 뭐 사 먹을지, 교수님은 어떤 성향인지, 과제는 이러쿵저러쿵, 오늘 내 기분은 이러네 저러네 등등.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걸 말로 뱉어냈다. 내가 할 말이 많기도 했지만 그 친구는 유난히 잘 들어주고 리액션이 좋았다. 내가 이러자면 그래! 하고 저러자면 그래! 했다. 


어릴 땐 말도 별로 없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입을 떼기까지 오래 걸렸다. 할 말을 위해 말을 지어내야 하는 자리에선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학기에 친구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나 사회 초년생 회의 시간이 괴로웠다.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하려고 하면 더욱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궁금한 것도 없고 말도 없었다. 내 순서를 기다리며 심장이 쿵쾅대고 얼굴이 빨개졌다.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누르고 경직되고 수그러드는 자세로 말하며 내 차례가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면서 나는 때도 묻고 조금씩 유연해졌다. 주관적 생각이 곧 일이 되는 일을 하면서 할 말도 많아졌다.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 대한 경험이 여러 차례 쌓일수록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일은 내게 더 이상 부담스럽기만 한 것은 아닌 게 되어갔다. 또 좋은 대화들은 나를 즐겁게 했고 새로운 자극을 주었다. 나는 대화를 좋아하게 되었고 점점 더 수다쟁이가 되어갔다. 


다정하지만 감정 표현이 섬세하지 않은 남편 역시 나를 만나 시시콜콜하게 떠들어대는 수다쟁이가 되었다. 대화는 하고 싶은데 할 말은 없을 때마다 남편에게 농담처럼 던지는 말이 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대?"


그러면 남편은 알았다는 듯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이나 SNS에서 봤던 것들, 아파트 카페에 올라온 글까지 끌어모아 이야기를 해준다.


이런 나였기에 아이에게 수다쟁이 엄마가 되는 것만큼은 자신 있었다. 말하는 것은 내게 큰 에너지를 들이지 않는 가볍고 자연스럽고 즐거운 것이었기에.



우리 아기가 신생아일 때부터 나는 말을 걸었다.


"지금 우리 맘마 먹을 시간이지? 아이고 잘 먹는다."

"엄마가 옷 입혀줄게. 손 넣고 머리 쏙 넣고. 다 입었다."

"머리 감겨줄게. 아이 개운하다. 우리 깨끗하게 씻고 얼른 코 자자."

"책 읽어줄까. 어떤 책 볼래. '쉿 비밀이야' 책 읽어줄까?"

"우리 이제 잠에 들 시간이야. 잠은 무서운 게 아니야. 두려운 게 아니야. 잠은 행복한 거야. 편안한 거야. 우리 꿈에서 만나자. 꿈속에서 동물 친구들이랑 즐겁게 뛰어놀자."



평일 대부분의 시간을 엄마와 단 둘이 보내는 아기는 엄마가 말 수가 적으면 말이 느리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가 가 수다쟁이가 되어야 한다고. 말은 곧 소통을 의미하기에 여러 전문가들도 언어의 중요성은 모두가 입을 모아 강조한다. 과거엔 대가족 중심이었고 이웃을 만나거나 또래 친구들을 만날 일이 많았기에 엄마가 말 수가 적어도 괜찮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가 적극 권장되는 이 시점에 엄마의 말은 아기가 듣고 경험하는 말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기가 7개월이 된 시점에 어느 순간부터 내가 말을 하는 데 꽤나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힘들고 피곤하니까 말이 자연스레 나오지 않았다. 아 지금 이렇게 말해줘야지.라고 속으로 다짐을 하고 힘을 모아 말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 조금 지쳤구나..


자신만만했던 과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든 내가 남았다. 이런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는 건 남편과 엄마뿐이다. 주말엔 남편이, 평일엔 엄마가 자주 오셔서 내 어깨의 짐을 덜어준다. 하나뿐인 손주에게 꿀이 뚝뚝 떨어지는 리액션 부자 할머니 덕분에 엄마는 잠시나마 입을 닫는다. 말의 휴식이다.


어른들과의 대화는 한없이 고프고 아직 비언어적 언어만 가능한 아기를 향한 일방적인 대화에는 휴식이 필요하다. 인간은 참 결핍과 과잉에 이렇게나 본능적이고 솔직한 존재구나. 를 또 한 번 깨닫는다.


조금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 아기가 "엄마~ 엄마~"하며 쉴 새 없이 말을 걸어오는 때가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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