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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Feb 20. 2020

두유 한 잔의 위로


아침 수유를 마치고 아이를 재워놓은 후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자장가가 아닌 재즈 음악을 틀어놓고 에어프라이어로 돌려놓은 고구마 하나에 두유 한 잔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테이블로 가져온다. 노트를 펼쳐 다음 글감에 대해 끄적이다 노트북을 켠다. 


별 것 아닌 소소한 일상은 이제 더없이 짧고 소중한 무언가가 되었다. 이제는 아이가 조금씩 통잠을 자기 시작해 새벽에 두 번만 깬다. 잠 한숨 제대로 못 잤던 지난주, 지난달과 비교하면 꽤 양호한 편이다. 도저히 못하겠다는 마음에서 견딜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옮겨왔다.


모유수유를 하는 탓에 나는 임신 때도 끊지 못했던 모든 카페인을 모조리 끊어버렸다. 커피는 물론이고 디카페인 커피와 녹차, 홍차, 초콜릿까지 모두. 부족한 잠을 카페인으로도 달래지 못하는 괴로움이란. 디카페인 커피는 조금씩 마셔도 된다고 했지만 50일까지는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미련한 오기를 부려본다. 참고로 오늘은 47일이다.


요즘은 우유도 끊었다. 다시. 지독한 우유 러버였던 난 작년 이맘때쯤 채식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모든 유제품과 육류 섭취를 금기시했었다. 오랜 시간 이어온 식습관을 바꾸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거의 5-6개월이라는 꽤 긴 시간 동안 채식을 지속했다. 그 모든 건 임신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입덧이라는 견디기 힘든 고통으로 인해 잠시 내려놓게 되었다.


우유를 생각하면 또 하나 걸리는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분유. 분유 먹고 큰 나도 건강하게 잘 자랐지만 우유를 원료로 했다는 점이 몹시 마음을 꺼림칙하게 만들었다. 나도 안 먹는 걸 내 아이에게 먹인다는 것이 과연 괜찮을 걸까. 하는 마음. 초반엔 젖양이 충분치 않아 혼합수유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분유를 탈 때마다 어딘가 찝찝하고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모유수유에 집착하며 스스로를 힘들게 할까 싶기도 했다. 그렇게 고단한 한 달이 지나가고 어느새 나흘째 완모를 하고 있다.


(참고로 모유수유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그리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신세계다.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의 고난을 마주하게 된다.)


우유도 커피도 멀리하게 된 내가 선택한 건 담백한 맛의 두유다. 출출할 때, 목이 탈 때, 피곤할 때 당 충전을 하듯 두유를 찾는다.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따뜻한 두유 한 잔은 이제 내게 피곤을 풀어주는 카페인이 되고 고소한 라떼가 되어가고 있다.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계속 마시다 보니, 커피의 허전함을 꽤 잘 채워주고 있다.(그래도 커피는 끊지 않을 거지만)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정신이 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육아의 지친 피로가 조금은 풀리는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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