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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Jan 06. 2021

순도 100%의 자연스러움


이제 갓 돌이 된 우리 아이에겐 루틴이 있다. 오후 6시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약 15분 간의 샤워를 하고 나면, 3-4분 뒤 쉬를 하는 거다. 나는 그 3-4분을 넘기지 않기 위해 분주하게 아이의 젖은 몸을 닦아주고 로션을 바른 뒤 기저귀를 채운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를 붙잡고 짧은 시간 안에 일련의 과정들을 완수한다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는 순간엔 바닥에 쉬하는 장면과 마주해야 한다. 가끔은 더 큰 일을 볼 때도 있다. 오 마이 갓.


그 타이밍이라는 것이 참으로 맞추기가 어려워 샤워 시간을 조금 더 늘려본 적도 있는데 소용이 없었다. 도대체 얼마 만에 샤워를 끝내야 이 타이밍을 잘 맞출 수 있을까. 어떻게 해도 샤워 후 3-4분은 달라지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이의 루틴은 밥 먹고 얼마 후가 아니었다. 샤워 후 몸에 적당히 긴장이 풀렸을 때, 젖은 몸이 마르면서 공기가 서늘하게 느껴지는 딱 그 타이밍에 몸을 부르르 떨며 뜨끈한 쉬를 내보내는 것이었다. 이것이 이 아이만의 자연스러운 생체 리듬이다.


어떤 날이었다. 매일 그렇듯 똑같이 저녁을 먹였고 아이를 씻겼다. 수건으로 아이를 감싸 안은 채 빠른 걸음으로 거실로 향했다. 재빠르게 엉덩이에 로션을 발라주었고 기저귀를 가져와 채우려는 그 순간이었다. 내 오른 발등에 뜨끈하고 축축하게 느껴지는 무언가. 이게 뭐지.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 몸을 움찔거렸다. 아이의 얼굴을 쳐다봤다. 우리 사이엔 0.5초 정도 짧은 정적이 흘렀다. 


말간 눈으로 나를 쳐다보다 이내 입을 삐죽거리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는 서럽게 울었다. 혼내기는커녕 뭐라 한 것도 아닌데. 나는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아이를 얼른 안아 달래주었다. 그런데 평소의 울음과는 결이 달랐다. 어딘가 불편하거나 배가 고파서 우는 당당하고 우렁찬 울음이 아니었다. 악악 대고 우는 크고 날카로운 소리가 아니라, 슬프고 속상한 마음이 내는 얇고 여린 목소리. 넌 무엇을 느낀 거니.


아기들이 기저귀를 가는 사이에 소변이나 대변을 보더라도 놀라지 말라는 이야기를 육아서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 이유는 부모가 갑자기 놀라면 아기는 자기가 무언가를 잘못한 줄 알고 대소변 보는 것에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었다. 물총 세례를 맞을지언정 놀라지 말아야겠다고 그렇게 다짐했는데 예상치 못한 이벤트에 결국 놀라고 말았다. 엄마가 되려면 놀라서도 안된다니. 어려운 길이다.


그 순간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는데 동시에 이 순수한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이런 모습 언제까지 보겠는가. 지금이니까 가능한 거지. 그저 솔직하고 본능에 충실하며 자기감정을 숨길 줄 모르는 이 순도 100%의 자연스러움은 오직 세상에 나가 관계 맺기를 하기 전까지만 허용된다. 가끔 내 몸을 깨물 때도 있는데 아이는 그것이 타인을 아프게 한다는 것 자체를 모른다. 아픈 거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 우는 척을 하며 '아야~ 아야~'라고 할 때도 있는데 뭐가 재미있는지 그저 까르르 웃을 뿐이다.


부모들은 혹은 어른들은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힘들어한다. 잠을 자지 않는다고, 밥을 먹지 않는다고, 운다고, 때쓴다고, 시끄럽다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아이를 혼내기도 한다. 좀 혼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게 마치 교육인 것처럼.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에 아이를 배제시키기도 한다.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하는 세상이라고도 말한다. 민폐와 존중의 선을 각자 멋대로 그어놓고 벽을 쌓고 있다. 


요 며칠 부모에게 버림받고 잔인한 양부모에게 학대만 받다 세상을 떠난 한 아이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다. 부모가 되고 보니 더 잘 알겠더라. 그 어린아이의 순수함이 얼마나 많이 짓밟히고 살해당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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