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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Jan 31. 2021

캔 테이크 마이 아이즈 오프 유


돌잔치 그런 거 뭐 그렇게 중요한 건가 싶었는데 엄마가 되고 보니 달라진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이 낳고 일 년 동안 거의 집에만 있었는데 어른 10명도 채 안 되는 식사 모임을 할 수 없다는 게 속상하고 억울했다. 그래도 멋대로 방역수칙 어긴 엄마는 되고 싶지 않아 두 번을 미루다 결국 취소. 원래는 북적북적했을 그 공간에서 우리는 돌상을 차리고 빌린 옷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돌잡이도 하고 생일 축하 노래도 부르고 덕담도 주고받았다.


텅 빈 공간만큼 공허한 내 마음을 랜선 돌잔치로 승화시켜야지. 성장 동영상을 아주 기깔나게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돌잔치에 모시지 못한 가족, 친척들에게 이 영상을 공유해야지. 더 많은 지구인들에게 우리 아기 생일을 축하받아야지. 일 년의 시간들을 고르고 또 골랐다. 이미 지난 돌을 자꾸만 되새김질했다. 어떤 음악이 좋을까. 사랑을 가득 담은, 듣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그런 곡을 고르고 싶었다.


그러다 떠오른 노래는 ‘캔 테이크 마이 아이즈 오프 유(can't take my eyes off of you)’. 아주 오래전에 나온 팝송인데 은근하게 리듬이 타지면서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곡이었다. 그래 이게 좋겠어. 그런데 오리지널 버전보다는 좀 더 요즘스럽고 잔잔한 버전이었으면 좋겠어. 커버곡을 찾았다. Joey Stamper가 부른 곡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따뜻, 잔잔, 담담, 행복 뭐 그런 것들이 느껴지는 어쿠스틱한 분위기.


계속 들으면서 영상을 편집하다 보니 나는 자연스레 이 노래에 다시금 빠지게 되었다. 왜 다시금이냐면 나는 이 곡을 중학생 시절에 마르고 닳도록 들었었기 때문이다. 팝송 모음집 카세트테이프에서 처음 듣게 되었는데, 그때 마침 방학 숙제 중 하나가 팝송을 외워오는 것이었다. 많은 노래들 중 두 곡이나 골라 영어 가사를 달달 외웠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노래였다. 영어 가사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저 가사만 미친 듯이 외워댔고 개학 후 팝송을 부르는 시간에 맨 앞에 나가 덜덜 떨며 랩 하듯 영어 가사를 쏟아냈다. 알고 보니 두 곡이나 준비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노래를 노래처럼 부르지 않은 사람도 나뿐이었고. 그 후로 한동안 팝송이 들어있는 카세트테이프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건 나쁜 추억도 좋은 추억도 아니다. 그저 어리숙하고 서툴렀던 수많은 나의 과거 중 한 페이지일 뿐.


어쨌든 시간은 돌고 돌아 그 노래가 다시 내게로 왔다. 아주 의미 있게.


어제도 혼자 카페에 앉아 어김없이 에어팟에서 흘러나오는 '캔 테이크 마이 아이즈 오프 유'를 들었다. 카페에서 어떤 음악이 나오고 있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음악을 배경 삼아 책을 읽다가 일어나 가려던 순간이었다. 귓가에서 조금 먼 바깥에 무언가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는 걸 느꼈다. ‘캔 테이크 마이 아이즈 오프 유’였다. 그것도 Joey Stamper의 버전. 아니 이 무슨 우연적인 필연적인 우연인가.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게 뭐 큰 대수냐고 할 수도 있고 아예 흔치 않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날의 시간과 장소, 기분, 상황은 특별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온 기운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나의 상황은 이러했다.


독박 육아 2년 차에 들어섰다.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주말만 기다렸다. 그런데 막상 주말이 되고 보니 여전히 육아에 시달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이의 하루 세 끼를 챙기다 내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는 건 물론이고 하루가 그냥 순삭 되어 버리는 것이다. 남편이 아이랑 놀아주고 밥을 먹여도 일손(?)이 부족하다. (내 결론대로라면 아이 한 명당 성인 3명을 전담마크를 해야 좀 살만할 것 같다.) 아침 식사를 챙겨주고 점심 준비를 하던 나는 꽉 쥐고 있던 제어의 끈을 놓고 말았다. 아기 앞에서 남편에게 따지듯이 성질을 부렸고 그 순간 후회했다. 아기에게 미안했다. 내가 곧 미칠 수도 있겠다는 것을 직감했다.


혼자 호텔에 가고 싶었다. 하루만이라도 외롭고 싶었다. 고독을 누리고 싶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고 싶었다. 책을 읽고 싶었다. 가만히 앉아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내겐 그런 사치가 필요했다. 남편이 예약을 해줬다. 이렇게 하는 게 모두가 편할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후다닥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체크인 시간을 두어 시간 앞둔 내가 설레며 들어간 카페가 바로 ‘캔 테이크 마이 아이즈 오프 유'가 흘러나왔던 그 카페였던 거다. 호텔에서의 하루는 내게 좋은 영양분이 될게 분명했다. 누워서 tv를 보고 노트를 끄적이고 스마트폰을 하다가 그냥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유튜브에서 허리와 등 통증에 좋은 스트레칭을 검색해 따라 해보기도 했다. 아 시원해. 열심히 자고 먹고 쉬고 놀았다. 최선을 다해 힘을 빼고 애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어떻게 해야 내가 괜찮아질 수 있을지에 대해 적어봤다. 매일 10분씩 스트레칭하기. 샤워하기. 5분씩 명상하기. 심호흡 10번 하기. 건강한 음식 잘 먹기. 결국 몸을 가꾸는 일이구나. 왜인지 모르게 피아노도 치고 싶었다. 피아노 소리도 듣고 싶고 손가락도 움직이고 싶고 나만의 세계에 들어가고 싶기도 했다. 어떤 곡을 연주하는 게 좋을까. 아 그게 좋겠다.


캔 테이크 마이 아이즈 오프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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