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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Mar 20. 2021

인풋 아웃풋


비 오는 아침, 남편과 브런치 카페에 앉아서 이웃 블로거 이야기를 하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오믈렛을 앞에 놓고 눈물을 닦는 내 모습에 남편은 당황했지만 내 눈물은 충분히 그럴만했다. 나처럼 독박 육아를 하고 있는 그녀는 자신의 아기와 한없이 예쁜 사랑을 주고받고 있으며 여러 힘듦 속에서도 애를 쓰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내가 그녀에게서 느낀 동질감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담담하고 정갈한 글 속에 느껴지는 우울감이 바로 그것이었다. "나 우울해!"라고 외치지 않았지만 마음속 어느 곳엔가 우울감이 젖어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꿀 수 없는 현실이 얼마나 답답하게 느껴지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나이기에.


선택했다는 이유로 모든 걸 감내하라고 말하는 건 너무 잔인하다. 큰 범위의 상태를 선택한 것이지 세세한 현실의 상황마저 선택한 것이 아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아주 다채롭고 빽빽하게. 예를 들면 그것들은 돈과 시간, 정신과 육체, 완벽주의와 귀차니즘 등 카테고리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잡스럽다. 아이는 너무 사랑스럽지만 때때로 나는 공허하다. 잘 키우려고 할수록 힘에 부치고 움켜쥔 걸 느슨하게 하는 힘 조절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참다 참다 그것들에 함몰될 때면 나는 예민해지고 와장창 무너지기도 한다. 


인풋은 빈약한데 아웃풋은 풍성하게 내려고 애쓰는 일상을 살고 있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경우가 드물고 짬을 내서 운동을 하는 경우도 손에 꼽는다. 이런 상황들 속에서도 내 콘텐츠를 만들려고 하지만 그것은 인풋과 아웃풋에 있어 모두 품이 크게 드는 일이다. 채워지는 만큼 소진되고 채워지는 것보다 더 소진될 때도 있다. 그렇다고 가만히 누워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만 보는 시간은 결코 인풋이라 할 수 없다. 인풋도 아웃풋도 아닌 그저 눈만 피로해지는 시간이다. 뭐 그래도 가끔 깔깔대고 나면 기분이 조금 나아질 때도 있다. 웃긴 영상들을 모아 '시간도둑'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어 즐겨찾기 해두었는데, 정말 시간을 도둑맞길 바라는 기분이 들 때 찾아본다. 그걸 꺼내어본다는 건 정말 고단하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육아는 정말 최선을 달리고 있다. 규칙적인 생활 패턴 속에 매일 일정한 시간에 아이에게 직접 만든 유기농 식단을 먹인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아이가 책 읽어달라는 부름에는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재빠르게 달려간다. 너무 책만 보는 것 같아 이것저것 경험하게 해 주려고 머리를 쥐어짠다. 미세먼지 심하지 않은 날을 골라 놀이터에 출근하고 내 머리가 어지러워질 때까지 아이를 안고 그네를 탄다. 뭐가 즐거운지 깔깔대는 모습을 보면 모든 복잡한 마음들이 녹아내린다. 주말마저 어디를 가야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고민하고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면 마음 한편에 미안함이 남는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싶은 것이 자식인데, 사랑할수록 고된 것이 육아다.


돈이 많다면 놀이 돌봄 선생님을 매일 부르고 싶다. 어린이집 보내는 날은 상상만 해도 꿈같다. 친정 엄마한테 옆집으로 이사 오시라고 하고 싶다. 함께 사는 베이비 시터 이모님이 있었으면 좋겠다. 매일 두 시간씩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 호텔에 가고 싶다. 집이 아닌 고급스러운 숙소의 온천탕에 몸을 담그고 싶다. 마사지받고 싶다. 요가 학원에 다니고 싶다. 남편이 주 4일 근무를 하고 똑같은 월급을 받아오면 좋겠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출퇴근하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다, 두세 번은 되어야 할 것 같아. 


균형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책을 읽는 것은 인풋 글을 쓰는 것은 아웃풋이라고 여겼다. 힘들 땐 무조건 글을 쓰는데 한동안 나는 읽기 않고 글만 썼다. 아웃풋만 냈다. 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 이렇게 글을 썼다고 내 마음이 좀 풀어진다. 나아진다. 허무할 만큼. 우스울 만큼. 방 문을 닫고 혼자 침대에 반쯤 누워 노트북을 두드리는 중이다. 아이와 남편은 둘 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뭐가 채워지고 소진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약간의 생기가 돈다. 


이 글을 발행하고 난 후 좀 더 침대에 머물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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