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환경연합 제비의 삶
9 번째 질문.
Q. 비건이라고 말하는 게 망설여졌던 순간이 있나요?
A.기본적으로 저는 '비건'이라고 저를 소개하지는 않아요. 저의 이상은 '비건'에 있기 때문에 불완전하더라도 비건을 지향한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페스코 베지테리언에 가깝기 때문이에요. 완벽하게 비건을 실천하는 날이 있고 아닌 날이 있어요. 대체로 평일은 비건에 가깝고 주말은 페스코에 가까워요. 주말이어도 혼자 있으면 비건이고 평일이어도 가족과 있으면 페스코, 주말에 가족과 함께 있어도 비건 식당에 다녀와 비건식을 차려 먹는 날도 있지요. 저에게 비건은 제 안에서 나름의 재해석을 통해 도달해야 하는 '상태'이지 저를 비건으로 소개하는 건 아직은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요.
집이나 카페에서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낯선 사람과 식사를 할 일은 드문 편이에요. 그래서 저의 식단이 어떻다는 것을 설명할 일은 극히 드물어요. 친구와 주변인들은 제가 고기를 안 먹는다는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희 엄마를 제외한 집안 어른들에게는 오픈하지 않았어요. 동년배들은 채식을 저의 선택이라고 여기고 그렇구나.. 그런가 보다 하는 정도에서 끝나지만, 어른들은 전통 식문화와 고정된 관념들이 있으셔서 설득하기 쉽지 않고 터놓고 대화를 나눌 기회도 별로 없으니까요.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이모 댁에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예요. 이모들이 고기를 얼마나 사느냐고 엄마에게 물어보는데 엄마가 갑자기 "얘랑 나랑은 채식주의자야."라고 하셔서 깜짝 놀랐어요. 말할 생각도 없이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안 먹고 지나가려 했었거든요. 엄마는 건강 때문에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하고 계신데 그동안 자연 식물식 + 가끔 기름기 없는 육식을 해오시다가 최근엔 페스코에 가까워지셨어요. (해산물은 가끔, 계란은 드시고 우유 섭취량은 0)
시댁에서는 설거지 비누를 가져가고 비닐봉지 쓰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정도예요. 그래서 며느리가 환경에 관심이 많다는 정도만 알고 계세요. '비건'에 대해 언급한 적은 없어요. 뭐든 단계별로 꺼내놓는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남편이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뜬금없이 키워드를 던지며 이야기를 꺼낼 때가 있어요.
"우리는 비건 케이크 먹어."
"비건 만두 샀어?"
시부모님이 물으시자 제가 고기를 안 먹는다고 말하는 거예요. 이에 시부모님은
"고기를 먹어야 단백질을 보충하지."
라고 말씀하셨는데 전 그걸 기분 나쁘게 듣지는 않았어요. 저를 향해 나쁜 의도로 말씀하신 게 아니었거든요. 그냥 알고 계신 걸 이야기하신 것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채식에 대한 효과나 환경과의 관련성 등 최근의 이야기들을 들어본 적이 없으실 뿐인 거죠.
"그런데 나물에 단백질이 더 많데요."
라고 말하니 어머님은 "그래?"라고 하셨고 아버님은 "그래도 너무 편식하면 안 좋다."라고 하셨어요. 전 더 이상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는데 뭐라도 한마디를 더 할 걸 그랬다는 생각은 들어요. 예를 들면 "채식을 하니까 건강이 더 좋아지더라고요"라거나 "붉은 고기에 기름기가 많아서 많이 먹으면 안 좋데요."라거나 "과도한 육식이 환경에 안 좋데요."라거나 등등..
사람들은 급작스러운 변화를 좋아하지 않아요. 소의 방귀가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걸 몰라서 계속 소고기를 먹는 것일 수도 있지만, "환경에 안 좋으니 고기 먹지 맙시다!!"라는 외침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 한 구절에서 깨달음을 얻어 채식을 실천하는 거랑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그런데 채식을 해야 된대"라며 날 전도하는 것의 심리적 거리감은 꽤 차이가 크다고 생각해요. (물론 이건 성향과 의식의 차이일 수도 있어요.)
어쨌든 저의 변화는 가랑비에 옷 젖듯 단계적이었기 때문에 타인에게도 그 정도의 고민과 시간적 여유는 주고 싶다는 마음이에요. 누군가에게 경종을 울리며 한마디로 설득하기보다는 그냥 제 삶을 보여주는 것으로요. 틈이 보이면 비건 젤리를 선물하며 대화를 시작하는 식이라고 해야 할까요. (물론 다수와 기업, 정부를 향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활동들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비건'이라는 단어가 아직까지는 우리 문화 안에서 일상적으로 꺼내기에 완전히 자유로운 단어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회 시스템의 불편한 내막을 건드려야 하는데 그게 지금까지 우리가 잘못 살아온 것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부분이라 회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완벽해야 하기 때문에 엄두조차 안내는 사람들도 있고요. 취향은 자유롭게 꺼내놓고 자랑하는데 가치관은 왜 그러면 안 되는 걸까요? 더 많은 미디어와 셀럽과 대중들이 비건을 마구 가져다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물론 그 과정에는 혼돈과 논쟁이 있을 수도 있지만, 문화적으로 확산되려면 우선은 수면 위에 올려 그 단어와 문화에 친숙해지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비건 문화가 어느 정도 성숙해지면, 좀 더 디테일하게, 엄격하게 하더라도 많은 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겠지요.
저도 제 안의 '비건'이라는 비중이 점점 더 늘어나
언젠간 저 자신을 '비건'이라고 소개하고
그 말에 어떤 거리낌이나 부담도
없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