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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Apr 10. 2023

비건 페스타의 인플루언서가 되다! #2



비건 페스타를 기대하는 나의 마음이 비장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 비건 식품은 동네에서 쉽게 접하기 어렵다. 요즘은 대형 마트에서도 비건 냉동식품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긴 하지만 극히 일부다. 비건이라고 해서 특별한 식품 카테고리가 있는 게 아니다. 모든 식재료과 식품의 비건이 필요하지만, 아직 대중화의 길을 걷고 있는 비건 식품을 모든 마트에서 다양하게 접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 작은 스타트업에서 비건 식품을 출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 보니 대부분 온라인을 통해 주문이 가능하다. 냉장·냉동식품의 경우 보냉을 위한 아이스팩과 스티로폼 등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은데, 쓰레기가 부담스러워 주문을 자제하는 편이다.


✔️ 나의 sns 세상엔 비건 친구들이 가득하지만, 현실의 친한 친구들은 비건의 명확한 정의를 모를 만큼 비건이 낯설다. 그래서 나는 외롭다. 비건을 주제로 이야기하고 새로운 제품을 서로 알려주거나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비건 친구가 없다.


✔️ 나의 취향과 가치관이 교차하는 즐거운 놀이터를 찾아다닌다. 환경 전시, 비건 식당, 비건 베이커리 등을 찾아다녀야만 한다. 별도로 찾아다니지 않으면 즐기기 어려운 문화를 한꺼번에 다 모아놓고 오라고 하는데 가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비건 페스타 입성



드디어 설레는 마음으로 입성한 비건 페스타. 입구에선 요즘 비건 식품계에 성큼성큼 발을 들이고 있는 거대 기업 농심과 심영순 할머니가 맞이해주고 있었다.




비건으로 젤리도, 참치도, 젓갈도, 만두도 다 가능한 세상에 도착했다. 익숙한 반가움과 신선한 즐거움이 팡팡 터지는 이곳은 내겐 놀이공원과도 같았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비건 젤리 '젤러스 스윗'과 샌드위치에 넣어 먹기 좋은 비건 참치 '언튜나'를 지나 항상 쟁여두는 비건 땅콩버터를 처음 보는 브랜드 '빈크런치'에서 구매했다. 더덕라떼를 사려고 찾아간 '더덕몽'에서는 더덕젓갈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젓갈도 비건이 된다고?! 살까 말까 고민하다 안산 것들 중 가장 후회하고 있는 아이템이다. 저 젓갈이 내 집에 있었어야 해.




오마카세와 분식



이번 비건 페스타에서 가장 기대를 많이 하고 찾아간 부스는 '문사기름집'이었다. 제주에서 만들고 판매하는 이곳은 지난 설에 캐슈넛으로 만든 비건 버터와  떡국 밀키트를 출시했다. 너무 신박한 아이디어에 감탄했었는데 비건 페스타에서 만날 수 있어서 너무 기뻤다.


뭐라도 하나 사자는 마음으로 부스를 어슬렁거리는데 손님 셋이 모였으니 설명과 함께 시식을 해주겠다고 해서 얼떨결에 바로 맛을 보게 되었다. 비건 버터는 총 8가지 종류로 캐슈넛 라인과 제주산 타이거벗 라인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발효 버터 2종을 제외하고 총 6가지의 맛을 보았다.


맛의 차이를 섬세하게 느끼고 재료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들으며 천천히 내 입맛에 맞는 걸 골랐다. 내가 고른 건 '캐슈벗 버터리'였는데 비슷해 보이는 맛 안에서도 유독 탁! 하고 튀어 오르며 이거다 싶은 맛이 있다는게 신기했다. 나중에 문사기름집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오마카세식' 시식이었다는 설명을 보았는데 도슨트 같으면서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떡국을 시식해보고 싶었는데 좀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아쉽지만 다음 비건 탐방을 위해 발길을 돌렸다.




기대하지 않아서 더 놀랍고 반가웠던 것도 있었다.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분식집 비주얼이지만 맘 편하게 먹어본지는 오래된 어묵과 핫도그. 건강을 위해 가공육만큼은 더 엄격하게 끊었지만 지나가다 편하고 맛있게 사 먹는 그 즐거움이 그립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 핫도그라니.. 숨겨왔던 나의 즉흥성을 꺼내놓아도 될까.




설탕도 케첩도 다 묻혀주세요. 오늘은 다 먹고 싶으니까요. 그렇게 받아 든 핫도그는 너무나 소중했다. 콩으로 만든 소시지의 식감은 탱글한 껍질이 느껴지던 가공육과는 달리 부드럽게 뭉그러지는 느낌이었다. 사실 난.. 소시지보단 설탕가루 무쳐서 먹는 빵을 좋아했던 것 같다. 지나가다 먹는 순간의 짜릿함도 너무 그립고.




용기낼 필요 없는 용기내



이번 비건 페스타가 지난번과 달랐다고 느끼는 가장 큰 부분은 바로 다회용기를 내미는 문화였다. 나만 보부상이 아니었다. 각종 카트, 캐리어, 짐 가방 안에서 주섬주섬 밀폐용기를 꺼내고, 시식용 용기를 꺼내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었다. 용기내 챌린지는 마음의 용기도, 음식을 담을 용기도 필요해서 이중적인 의미의 ‘용기내'인데 여기선 마음의 용기는 넣어두어도 될 만큼 편하게 용기를 내밀었다.


시식할 기회가 많았는데 나의 접이식 실리콘 컵이 정말 큰 몫을 해냈다. 여기에 주스도 담아 마시고 만두도, 국수도 먹었다. 중간에 컵이 더러워지자 어떤 부스의 직원분이 컵을 헹궈주시기도 했다. 따뜻함이 흐르다 못해 넘치는 시간들을 경험했다.




나의 캠핑용 포크는 수많은 이쑤시개와 일회용 포크를 대신했다.




땅콩 역시 미리 챙겨간 용기에 담아 구매했다. 비싼 우도 땅콩을 만 원어치 샀는데 만 오천 원어치는 담긴 것 같다. 용기를 내밀었을 때 덤을 받은 적이 많다. 아마도 불편함을 넘어서는 용기에 자연스레 더 주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기는 게 아닐까.




종이컵을 피할 수 없는 아이스크림 시식을 발견했다. “전 용기에 따로 담아주실 수 있을까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의 스테인리스 용기에 비건 아이스크림이 담겼다. 쓰레기를 줄이는 일은 판매자와 소비자가 함께 노력하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가능한 실천이다. 그래서 더 값지고 뿌듯하다. 불가능할 것 같은 것들이 가능해졌을 때 쾌감은 배가 된다.


아이스크림은 유난히 맛있었다. 호두마루 고급 버전에 초코칩이 들어간 맛이었는데, 견과류 아이스크림 특유의 텁텁함이 없고 캐러멜 맛이 은근하게 느껴져 호불호 없이 모두가 좋아할 맛이었다. ‘나이스케키’라니 이름도 정말 나이스하네.




점심은 미리 찜해둔 위미트에서 먹기로 했다. 용기 지참 시 천 원이나 할인해 주는 행사를 놓치기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음식을 기다리며 거울에 한마디 적으라고 해서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말을 적었다.


비건이 미래다!

by 흔적




라운지에 자리를 잡고 유린기 하나, 만다린 치킨 하나, 맥주 한 캔 사서 함께 간 선배와 나누어먹었다. 크고 넓적한 용기를 준비했더니 식사용으로 딱이었다. 이렇게 지속가능하게 치맥을 즐길 수 있다니 너무 매력적이지 않은가. 용기내를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끝없이 밀려오는 자기만족의 기쁨을! 간장에 조린 촉촉한 유린기는 너무 내 스타일이었다.




그린 페스타



비건 페스타에서 거하게 쇼핑을 마친 후 그린 페스타에 입장했다. 비건 페스타와 그린 페스타가 함께 열리고 있어서 한꺼번에 다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그린 페스타 역시 거의 비건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식품보다는 친환경 생활용품과 업사이클링 제품들의 비중이 높았고 서울환경연합과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전시 형태 부스도 만나볼 수 있었다.




내가 찜해둔 부스는 '동구밭'과 '닥터노아'다. 친환경 라이프에 입문하면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두 브랜드는 이미 내게는 정착템이자 쟁여템이다. 할인 중인 대나무 칫솔을 무포장으로 구매하고 리뉴얼 이전 버전의 고체 치약도 매우 저렴하게 구매했다. 동구밭에서는 곧 여행 가는 엄마를 위한 여행용 비누 키트와 평소 비싸서 망설였던 다시마 앰플 세안바를 할인가에 구매했다.




운동화, 립스틱, 강아지 간식 등 장르불문한 다양한 카테고리의 친환경 제품들을 구경했다. 예전엔 친환경 제품이 예쁘지 않고 소수의 마니아들이 환경을 위해 구매하는 영역이라고 여겼는데, 이젠 너무 다채로워져서 취향에 따라, 필요에 따라 고르는 재미가 생겼다.




내가 산 것도 많은데 인플루언서로 선정되어 비건 키트와 제로웨이스트 키트까지 너무 풍성하게 받았다. 쓰레기를 최대한 줄이고 싶어 쇼핑백 하나는 다시 가서 반납했다. 다음번엔 업사이클링 브랜드와 콜라보해서 가방을 제작하면 어떨까. 더 힙해질 것 같은데.




나의 하루를 비건 페스타에 모두 바치고 너덜너덜해졌다. 나의 작은 캐리어가 너무도 작았나 보다. 다음번엔 더 큰 캐리어를 준비해야겠다. 지치지 않는 체력도.




집에 못 갈 뻔했는데 다행히 근처에 결혼식 때문에 와있던 남편을 만나 차를 타고 귀가했다. "여보 저것 봐. 달이 되게 크다." 했더니 "저거 해야.."


비건힙은 제대로 했지만, 해와 달은 구분 못하는 사람이 되었네.




이제 짐을 풀 시간이다.




한 번에 모아보니 정말 많네.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이미 절반 이상이 시라졌다. 오랜만에 정말 마음껏 쇼핑한 시간이었다. 맛있고 건강한 음식들을 구매할 수 있어서 좋았고 친환경 포장까지 선보이는 기업들의 제품은 소비자로서 나서서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지구에 가장 좋은 건 소비를 줄이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소비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 매일 먹고사는 음식과 제품들은 어김없이 환경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떤 소비가 조금 더 지속가능할까. 개인이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채식이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필요충분조건임은 부정할 수 없는 팩트다. 나 역시 완벽할 수 없는 사람이라 비건을 지향한다.


인플루언서가 되어 더없이 행복했던 비건 페스타였다. 에코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한 발 더 나아가는 동력이 되었다. 더 많은 소비와 문화, 아이디어가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흐르길 바라고 그 안에 나도 일원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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