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남편, 아이로 구성된 3인 가구인 우리 가족. 불완전 비건 지향인인 나, 논비건인 남편과 아이의 공존은 계속되고 있다. 아토피 이력이 있는 예민한 피부의 소유자인 아이는 기본적으로는 논비건이지만, 집에서는 자연식물식에 가까운 채식 위주의 식단을 지향하고 가끔 고기를 주는데 그거보다 조금 더 자주 우유와 계란을 주는 플렉시테리언으로 키우고 있다. (어린이집에서 일반식을 하기 때문에 육식의 비중이 결코 낮지 않다.)
우리 가족은 비건 가족이 아니다. 내가 완벽하게 비건을 실천해도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으로 3분의 1에 불과하다. 혼자 살면 더 잘 실천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남편과 충돌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완벽하고자 하는 마음이 지나치면 오히려 완성도를 떨어트리고 지속가능한 삶을 방해한다. 여러 과정을 통해 내 방식은 가족이 행복하게 채식을 하기 위한 좋은 태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에 집중하기보다는 채식의 빈도수를 늘린다는 마음으로 가족 식사 시 적당히 타협할 수 있는 지점을 찾기로 했다.
내가 사는 도시에 비건 식당이 없다는 점, 주말 내내 삼시 세끼 다 집밥을 차려 먹기는 힘들다는 점, 남편이 한 발 양보했다는 점 때문에 나도 반 발은 양보를 해야 했다.
그렇다면 주말 외식은 어디에 가서 무얼 먹어야 할까.
우선순위는 비건 식당이다. 목적지가 정해지면 동선 주변의 비건 식당을 찾는다. 전국의 비건 식당은 모두 카카오맵에 다 표시해 두었기 때문에 맵에서 아무것도 안 나오면 바로 차선책을 선택한다.
차선책은 '비덩주의'다. 비덩주의는 눈에 보이는 덩어리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완벽하게 비건이 되기 어려운 사람들이 실천을 위해 만들어낸 말인데, 식당에 갔을 때 요리 재료를 전부 확인할 수 없는 육수, 양념 등의 여부는 제외하고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채식을 하자는 뜻이다. 채식 중심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내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완벽하려면 밑반찬으로 나오는 김치의 젓갈 포함 여부나 국물에 멸치 육수가 포함되었는지까지 하나하나 확인해야 하는데 그렇게 비건을 달성하기는 어렵다. 실천하는 과정이 스트레스일 수도 있고 '비건 식당'이라고 내 건 곳이 아니면 갈 수 있는 식당도 많지 않다. 그래서 비덩주의는 최선을 위한 차선이다.
다만, 작년과 다른 나의 변화는 해산물에 해당하는 물살이(인간 중심의 물고기가 아닌, 물에 사는 생명체 중심의 표현)도 비덩주의에 포함시켰다는 점이다. 늘 완벽한 건 아니지만 되도록 물살이도 먹지 않는 비덩주의를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고민의 여지는 남아있다. 채식의 기준을 내 몸 안에 들어오는 식재료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제로웨이스트에 둘 것인가. 예를 들어 한식당 정식 반찬에 가자미 구이가 나올 경우 나는 먹지 않고 남편과 아이가 나눠 먹는 편인데, 그러다 다 못 먹고 남기는 경우가 있다. 비덩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그대로 남기는 게 나을 수도 있지만, 제로웨이스트의 관점에서 보면 남은 걸 다 먹는 게 환경에 더 좋을 수도 있다. 아직 나는 고기만 봐도 먹기 싫은 사람은 아니다. 나름의 절제와 노력이 수반되고 습관으로 자리 잡은 것인데, 이럴 때만이라도 나 자신에게 숨 통 트일 기회를 주는 게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든다. 애매하고 찜찜하지만 아직도 확실하게 결정하지 못한 채 가끔은 남은 걸 먹기도 하고 그대로 둘 때도 있다.
제로웨이스트와 비건을 실천하는 한 인친님이 고기 먹으러 가자는 가족을 회유해 적당히 타협했다고 공유해 줬던 한식당을 찜해두었다가 주말에 가족과 함께 방문했다.
친절하게 종이컵과 물티슈까지 올려져 있는 식당이지만 우리에겐 해당사항이 없다. 이런 상황을 우려해 늘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니까. 39개월 아이도 텀블러 생활이 익숙하다. 처음엔 호기심에 종이컵을 건드리기도 했는데 이젠 습관이 되어 우리 것이 아니라는 걸 안다.
"엄마 다른 사람들이 자꾸 종이컵을 써요!"
엄마가 종이컵을 쓰면 환경에 안 좋다고 했는데 식당에서 종이컵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어른들을 마주할 때마다 아이는 내게 이상하다는 듯 말한다. 그럴 때 나는 어떻게 말해주어야 할까. 나 역시 과거엔 그들과 같았는데 무조건 어른들이 나쁜 행동을 했다고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잘한 것도 아니니 미화할 수는 없는 노릇.
"우리가 열심히 텀블러를 쓰면 다른 사람도 우리를 본받을 거야."
어쩌면 너무 동화 같은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아직 네 살 아이에게 세상은 동화다.
채식 중심의 한식당을 다니다 보면 지겹게 먹게 되는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솥밥과 누룽지다. 덕분에 곤드레 밥과 시래기 밥은 원 없이 먹고 있다. 곤드레가 너무 많아서 아이는 흰쌀밥을 달라고 했지만 큰 잎만 건져내고 덜어주니 열심히 잘 먹었다.
한식당 단골 반찬인 중 하나는 잡채다. 부드럽고 쫄깃한 당면과 달짝지근한 간장의 맛이 좋아 어딜 가든 잡채는 싹싹 비워낸다. 아이는 나를 닮은 건지 타고난 먹성 덕분인지 잡채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린다. 포크로 그릇에 있는 잡채를 한 번에 떠서 전부 자기 그릇에 가져다 놓는다. 나도 잡채 좀 마음껏 먹고 싶은데 아이의 잡채 먹방을 지켜보고 있으면 웃음도 터지고 배도 터질 것 같아 수저를 내려놓게 된다.
채식으로 구성된 샐러드바가 있을 경우 내겐 천국이다. 순두부와 마늘쫑, 열무김치까지 전부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인데 그중에 가장 최애는 콩나물 무침이다.
또 다른 두부집의 상차림이다. 꼬시래기부터 도라지까지 모두 채식이었다. 도라지는 평소 집에서 손질이 귀찮아 자주 안 해 먹는 반찬이라 남편에게 남기지 말고 다 먹으라고 명령했다. 우리 아이는 식당 직원 분께 잡채 그릇을 내밀며 "이거 더 주세요."라고 말해 또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39개월이 맞는 것인지.
초막골 생태공원을 갔다가 군포에 비건 식당이 없어 최대한 채식할 수 있는 식당을 찾아서 간 들깨 수제비집은 가격도 착하고 건강에도 좋은 가성비 맛집이었다. 수제비 반죽은 야들야들하고 간이 세지 않아 아이와 먹기에도 좋았다. 새싹 보리밥은 김과 참기름 넣고 쓱쓱 비벼 먹으니 행복이 뭐 별 건가 싶었다. 일회성의 즐거움은 행복이 아니라 쾌락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대단하고 화려하진 않아도 꾸준히 지속되는 우리의 소소한 일상은 쾌락이 아닌 행복이 분명하다.
외식이지만 아이에게 이런 거 먹일 때면 마음이 너무 편하다. 비건 식당이어도 양식 중심인 경우 우유를 대체하기 위해 견과류를 주재료처럼 많이 쓰는 경우가 있는데 아토피 유아에겐 견과류 과다 섭취가 좋지 않아 가족 식사는 되도록 한식 중심의 기름을 많이 쓰지 않는 비건 식당을 찾는 편이다. 최고 중의 최고는 사찰음식이다.
채식 식당을 찾을 때 검색하면 좋은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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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안에서 고르면 완벽하진 않아도 차선책인 비덩주의 채식이 가능하다.
우리 가족은 여전히 불완전하고 타협과 공존 사이 그 어딘가를 떠다니고 있지만 이런 애매함도 나쁘지 않다. 여행을 떠나듯 가치관과 취향의 교차점을 끝없이 찾아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