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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Aug 14. 2024

섬세할수록


어릴 땐 나의 성격에 모양도 색도 없다고 생각했다.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었는데 그게 부끄럽고 잘못된 거라는 생각이 내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쉽게 상처받았고 눈물이 흘렀다. 밖으로 표현하지 못해 억울한 감정이 내 안에 있었다. 한없이 어설프고 판단력이 흐린 채로 최선을 다해 어른이 되었다.


내가 무딘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까탈스러운 사람들

사이에서 나만 갖지 못한 카리스마가 바로 그 ‘섬세함’으로 완성되는 줄 알았다. 게다가 디자인, 컨설팅, 트렌드 분석은 예민할수록 빛을 발하는 직업이었다. 남들이 발견해 내지 못하는 차이를 섬세하게 느낄수록 작업물은 더 완벽하고 목적을 향해 뾰족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도 읽고 공부도 하고 밤새 일하며 예민함을 키워냈다. 단어 하나도, 미묘한 색의 차이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나와 함께 일하던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예민함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능력을 발휘했다. 우리 안에서 예민함은 또 다른 성취를 만들어냈고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처음부터 섬세한 사람이었는데 어릴 때 그런 기질을 발견할 만한 경험을 하지 못했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 일하면서 학습을 통해 만들어낸 예민함이 성격에도 영향을 미치는 걸까 의심했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나는 섬세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섬세함이고 섬세함이 곧 내가 되었다.


섬세함은 이제 더 이상 내가 가지지 못한 것도 아니고 이걸로 으스댈만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그 자체가 되었기 때문에 그저 한 몸처럼 지냈다.


모든 섬세한 사람이 그러하겠지만 모든 면에서 다 섬세한 건 아니다. 감각은 좀 무딘 편이고 감정은 가끔 힘들 정도로 복잡 미묘하고 기복이 있는 편이다. 타인의 태도나 단어에 의해 감정이 달라지기도 하고 신경이 쓰였던 대화는 내내 곱씹기도 한다. 뭐 그럴 수 있지. 누구나 정도가 다를 뿐 그러하니까.


나의 예민함이 가끔 나 스스로를 힘들게 할 때도 있지만 그게 잘못된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성격은 원래 사람마다 제각각이고 모든 특징은 동전의 양면처럼 장점과 단점이 있으니 굳이 나쁘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걸 잘 다루기만 한다면 오히려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특유의 예민한 기질을 발휘해 성공한 사람도 많으니까.


하지만 문제가 있다. 나랑 가장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 모두 단순하고 솔직하고 감정이 다소 무딘 편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나를 예민한 사람인 양 대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들이 뭉툭하다. 너무너무 뭉툭하고 단단하다. 무심하게 말을 던지고 좋게 좋게 넘어가자고 하는 그 태도에 가끔 참을 수 없이 화가 난다. 내가 불편함을 드러내면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는 뉘앙스의 표정과 말 돌리기를 시연한다.


‘섬세한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쓴 많은 책들을 보면 감정을 잘 관리하라고 가르친다. 어떻게 마인드 컨트롤해야 하는지 방법을 알려준다. 너무 이상하다. 이 지구상에 사는 사람들 중 섬세한 사람의 비중이 20%라는데 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에 자신을 맞추라고만 말하는 걸까.


나쁜 의도는 없지만 타인을 공격하거나 평가하는 농담, 의미가 분명히 다른데도 대충 선택하여 쓰는 단어, 정확히 모르면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자신이 맞다고 주장하는 말투. 이 모든 것들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이 상대의 무례함이 아니라 전부 예민한 사람들의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까탈스러움 때문인 걸까.


어쩌다 내 곁엔 섬세한 사람들이 남지 않았지. 왜 나만 이상하고 문제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었을까. 나만 쿨하게 넘어가면 모든 게 문제없이 잘 굴러가는 걸까.


그녀와 자주 보며 친하게 지내던 때가 그립다. 그저 적당히 넘어가고자 함이 아니라 모른 척 배려하며 마음을 달래주던 그 시간들이 애틋하다. 되묻는 단어 하나의 선택과 음의 높낮이에서도 감정의 온도가 느껴지곤 했었는데. 그땐 몰랐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녀는 나의 삐뚤빼뚤한 마음을 잘 중화시켜주었다. 뒤늦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


그녀도 나처럼 자신의 섬세함이 에너지가 되고 동시에 힘들어하는 사람이다. 요즘은 각자의 삶이 바빠 자주 보지 못한다. 그저 메시지로 소식을 주고받을 뿐. 오랜만에 그녀가 오기로 했다. 나는 성토하듯 그녀에게 나의 뭉툭한 사람들을 일러바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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