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고 심플하다는 의미를 넘어서
예전에 디자인 트렌드를 분석할 때 미니멀은 단골 컨셉이었다. 몇 해를 앞서 미리 테마를 예측할 때 미니멀은 언제나 기본이 되는, 가장 대중적인 컨셉이었다. 건축이나 디자인에서 많이 언급되는 예술과 문화 사조였고 단순히 색이나 선이 심플하다는 것을 넘어서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화려한 장식이나 기교를 지양하고 가장 본질의 정수를 담아내기 위해 여백의 미를 가치있게 바라보았고 사람이 머무는 공간에 있어 미니멀은 아주 중요한 핵심 요소 중 하나였다.
미니멀을 표현하는 방식은 개인적인 시각에 따라 주관적으로 다르지만 욕심을 덜어내고 비워내는 것에서 무형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로 인해 더 본질적인 것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은 공통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안도 다다오는 오직 빛으로 십자가를 표현해 공간의 본질을 미니멀하게 담아냈고 그것이 오히려 더 공간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미니멀이라는 것은 시각적으로 단순하기만 하면 될 것 같지만 생각보다 더 많은 의미와 가치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기에 이렇게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다각도로 해석되며 사랑받는 예술 사조이자 문화적 흐름, 디자인 트렌드가 되었다.
매번 새로운 미니멀(minimal)
미니멀한 건축과 예술에 이어 미니멀한 인테리어, 가구, 디자인이 유행하게 되었고 패션에서도 장식은 배제하고 고급스러운 소재와 컬러로 스타일을 드러내는 미니멀이 다양한 컨셉으로 파생되어 유행하게 되었다. 평범한 것에서 더 세련됨과 특별함을 느끼는 '놈코어(nomecore)' 스타일이 대표적이다.
미니멀이 일상적인 카테고리 안에서 소비되며 심플한 디자인과 세련됨의 명맥은 유지되는 듯했지만 어딘가 자꾸 본질에서 벗어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각적인 미니멀에 치중되다 보니 하나의 아이템을 오래도록 가치있게 애용하는 것이 아니라 매번 새로운 미니멀을 들여놓는 식이었다. 주름도 사용감도 없는 새것이 시각적으로 보았을 때 더 미니멀해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미니멀한 셔츠는 또 다른 셔츠로 대체되고 세련되고 심플한 가구는 레트로, 미드 센추리, 시크 등 뉘앙스를 달리하며 매번 새롭게 교체되고 있다. 크고 작은 일상의 모든 물건들이 쉽게 소비되고 버려지며 미니멀은 그저 그 순간의 느낌에 집중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빳빳하고 매끈한 것, 지저분한 것들을 다 숨긴 것,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렬된 것이 미니멀로 여겨지는 것은 아닐지.
그게 미니멀에 본질이라고 할 수 있을까. 판가름하기가 쉽지 않다. 미니멀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느낌적인 느낌.
비움의 미학
언젠가부터 미니멀이라는 말에 짝꿍처럼 따라오는 단어가 있다. '비움'이다. 어찌 보면 그럴싸한 말이다. 비워냄으로써 가치를 더한다는 미니멀리즘에 너무나도 부합하니까. 하지만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이 단어의 또 다른 이름은 '버림'이다.
미니멀은 라이프스타일의 한 형태로 묘사하게 되며 본격적으로 대중화되었다. 미니멀 라이프 혹은 미니멀 라이프스타일로 불린다. 디자인에 주로 쓰이던 미니멀이라는 말이 삶의 방식의 한 형태가 되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삶이 단순하다는 건 여유 있는 삶을 의미하는 걸까 아니면 루틴이 있는 삶이라는 걸까.
라이프스타일(lifestyle)을 직역하면 '생활 방식'이지만, 이 말은 주로 인테리어를 표현하는데 쓰이고 있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깨끗한 벽과 심플한 가구 배치, 번쩍거리는 광택감이 없는 세련된 마감, 생활의 너저분한 잡동사니가 보이지 않는 집안의 정리 상태 같은 것들을 의미하게 되었다. 식탁 위에 올려진 행주 하나에도 세련된 미학을 부여해 촌스러운 색이나 무늬는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표현하는 말이 되었다.
이것이 대체 생활 방식인지 디자인적 취향인지, 인테리어인지 구분하기가 힘들어졌다. 매일 먹고 자고 싸는 집 안에서 이러한 미니멀 라이프를 유지하는 법은 쉽지 않다. 집은 집 같지 않아야 하고 집에서 할 수 있는 편안한 행위들이 허용되지 않아야만 가능하다. 흐트러짐이 없는 집, 부스러기 하나 떨어지지 않는 집이 주는 만족감은 점점 더 보이는 것에 집착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다준다.
미니멀 라이프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 조건은 비움이다. 아니 버림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며 충동구매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매 순간 물건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는 늘 후회할 소비를 반복한다. 예뻐서 사고 우울해서 사고 심심해서 산다. 오래 쓸 물건을 사기도 하고 하루가 지나면 후회할 물건을 사기도 한다. 음식도 물건이다. 배달 음식을 구매하면 일회용 쓰레기라는 물건이 함께 따라온다. 건강과 안전을 위해 여러 번 쓸 수도 없고 보기도 싫은 쓰레기는 당장에 집에서 내보내는 게 상책이다. 그래야 집안이 깨끗하게 유지되니까. 지구 바깥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고 그 못생기고 지저분한 형태를 유지할지 알 길은 없지만 일단 내 집이 깨끗한 게 우선이다.
비워내는 것으로 미니멀 라이프의 생활방식을 제안한 사람이 있다. 정리 전문가로 유명한 곤도 마리에는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에 영향을 받아 물건을 버렸다. 비워냄으로써 집안은 깨끗해졌고 물욕마저 비워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 사람들은 그렇게 계속 비워냈다.
곤도 마리에가 말한 비움은 필요한 물건만 구매해 오래도록 쓰고 불필요한 건 덜어내는 삶의 방식이 아니었다. 내가 산 물건에 대한 책임은 없었고 불필요한 물건에 대해 재활용하거나 주변에 나누는 결도 아니었다. 자신의 눈앞에서 물건을 치워 집안만 깨끗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미니멀 라이프의 선두주자같이 보였지만 사실은 가장 중요한 본질은 쏙 빠져있었던 거다.
눈앞에서 사라지면 미니멀
내가 버린 물건이 어디로 가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지구를 아프게 하는지 상관하지 않는 태도가 과연 진정한 미니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주 편리한 미니멀이다. 아무리 많이 사도 계속 버리면 깨끗한 집을 유지할 수 있다. 매번 업데이트되는 '요즘 미니멀'은 새것으로 완성될 수 있다.
마치 선진국 같다. 여태껏 선진국들은 산업화의 혜택을 누리며 풍요롭게 살아왔다. 탄소 배출의 지분과 쓰레기 배출량이 후진국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높지만 선진국의 거리는 깨끗하다.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는 늘 저렴한 비용으로 후진국에 팔아넘길 수 있기 때문에 깨끗한 도시를 유지할 수 있다. 이 깨끗함은 너무 이기적이지 않나. 무책임하지 않나.
나의 소비와 버림이 지구 반대편에 사는 어린아이가 살아가는 땅과 물과 공기를 더럽혀도 내 집과 내 방만 깨끗하면 그것으로 미니멀을 완성했다는 관점은 너무 가볍고도 위험하다.
진정한 미니멀
소비의 양과 빈도를 줄이며 하나씩 비워내며 실천하는 미니멀 라이프를 살고 싶다. 많이 사고 많이 덜어내는 것을 미니멀이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다. 그저 시각적인 효과만을 나타내는 '심플함', '화이트'같은 것들이 아니라 미니멀의 의미를 잘 알고 지향하는 '버림'을 진짜 '비움'이라고 말하고 싶다.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 제로웨이스트의 'zero(0)'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인간의 모든 활동이 탄소 배출 그 자체인데. 그래서 제로 트래쉬(zero trash)가 아니라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인 것이다. 쓰레기 배출이 0이 되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이 아닌 불필요한 낭비를 0으로 만들자는 친환경 생활방식이 제로웨이스트다.
0이 될 수 없는 것과 0을 지향하지 않는 것은 다르다. 완벽할 수 없다 해도 좋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최소한의 기준은 필요하다.
미니멀리스트(minimalist)가 되고 싶다.
우리 집은 아이와 고양이 물건으로 가득하다. 매일 어지르고 치우고의 반복이다. 수더분하다. 나름 깔끔하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내가 꿈꾸던 세련되고 깔끔한 집은 유지하기 어렵다.
그래도 난 미니멀리스트라고 생각한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물건을 아껴 쓴다. 아이를 위해 필요한 건 되도록 중고로 구매하고 버리는 것에 있어서도 신중하다. 최대한 되팔거나 나눔 하고 물건의 재쓰임을 찾는다. 눈에 보이는 심플함은 덜할지 몰라도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건 내면의 미니멀이기 때문이다.
온갖 쓰레기로 넘쳐나는 맥시멀 지구.
지구가 좀 미니멀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