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관련된 다큐 중 아주 흥미로운, 그러면서도 잘 만든 다큐를 발견했다. 다시 말하면 ‘설득력 있는’다큐다. 환경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의 산업과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해 제대로 비판하고 있다. 우리 모두 이 시스템 안에서 자유롭지 않으니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때로는 빙하가 녹아내리는 것보다, 북극곰이 집을 잃는 모습보다 현대 사회의 소비 행태를 빠른 호흡으로 꼬집은 것에 흥미를 느낀다. 그게 바로 오늘 이 시간 내가 살아가는 현실에 닥친 문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금 구매하세요."라는 말은 다들 예상하겠지만 반어법이다. 다큐에 등장하는 가상 AI는 산업 안에서 어떻게 해야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 다섯 가지 원칙을 알려준다. 즉, 환경을 파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럴싸한, 가치 있는 듯한, 완벽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기업의 브랜딩 뒤에 숨어 있는 어두운 이면과 치부를 드러내며 그게 우리의 소비 생활과 맞물려 있는 현 상황을 직시할 수 있게 해주는 다큐다.
절대 지루하거나 어렵지 않으니 꼭 보길 추천하며.
수익을 극대화하는 다섯 가지 원칙
수익을 극대화하는 다섯 가지 원칙은 이미 잘나가는 글로벌 기업들에서 당연시되는 마케팅 전략이지만 절대 입 밖에 내지 않는 수법이기도 하다. 어쩌면 너무 당연해서 어디서부터 어디가 잘못된 건지 내부에서는 알아채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조직원들은 자신이 사람들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제시하기 위해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향력 있는 글로벌 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여긴다.
내부에서조차 숨겨지는 이 전략이 이렇게 다큐멘터리로 소개될 수 있었던 건 글로벌 산업화 중심에 있던 사람들의 인터뷰 덕분이었다.
- 세계 최대 규모의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 UX(사용자 경험) 수석 디자이너.
- 아디다스 브랜드 총책임자.
- 애플을 거쳐 vr 제조기업 오큘러스 창립팀으로 옮겨간 엔지니어.
이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일했고 자신이 가치 있는 일을 한다고 믿으며 세상에 엄청난 소비를 부추기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고 그때부터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다.
1. Sell more 더 많이 팔아라
수익을 극대화하는 첫 번째 방법은 오직 많이 파는 것뿐이다. 더 빨리 많이 만들고 소비자들에게 끊임없이 동기부여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브랜딩을 돋보이게 하는 스토리텔링 역시 소비 촉진 전략 중 하나이며 사람들이 끊임없이 소비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 방법을 아주 효과적으로 잘 적용하는 대표 주자 산업 중 하나가 패션 업계다. 패스트패션의 등장으로 시즌별로 출시되던 신제품은 매월, 매주로 그 주기가 빨라졌다. 갭(gap)이 매년 출시하는 신상품은 1만 2천 가지, H&M은 2만 5천 가지, 쉬인은 무려 130만 가지에 이른다.
빅데이터와 AI의 발전은 소비자들의 소비 심리를 더 잘 파악할 뿐 아니라 교묘한 방식으로 소비자들에게 합리적 사고를 하기 어렵도록 만들었다. 온라인 구매창의 픽셀 하나하나가 모두 테스트를 거치며 최적화되었고 끝없는 업데이트로 작은 디테일과 색, 상품 등 모든 것에 있어 상품 구매를 유도하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소비자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구매하게 만들어 1시간마다 250만 켤레의 신발을 생산하고, 6만 8천733개의 휴대폰을 생산하게 되었다. 플라스틱은 일초에 12톤씩 생산된다고.
지구 환경에 어마어마하게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면서도 고객들에게 더 나은 쇼핑 환경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다고 아마존 수석 디자이너는 말했다. 더 좋은 상품을 빨리 찾을 수 있게 돕는 것을 가치 있는 일로 여겼다고 했다. 소비자들이 상품을 사고 난 후에 그 물건들이 어디로 어떻게 갈지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여유도 없었다고.
2. 쓰레기를 늘려라.
수익을 극대화하는 두 번째 방법은 쓰레기를 늘리는 방법이다. 소비자들이 더 많이 자주 구매하고 빨리 버려서 그다음 물건을 사게 하는 것이다. 물건의 교체 주기를 의도적으로 빠르게 만드는 데에는 IT업계가 선두주자다. 예를 들면 고의로 배터리의 수명을 단축시킨 애플의 '배터리 게이트'같은 것.
놀랍게도 그 시작은 1925년 피버스 카르텔이다. 전구 업체의 고위 간부들이 모여 전구를 더 자주 교체하게 만들기 위해 수명을 제한하는데 합의했던 음모를 말한다. 계획적 진부화라고도 불린다. 1925년에 시작된 계획적 진부화는 이제 거의 모든 업계에서 흔한 일이 되었다.
도가 지나친 계획적 진부화의 선두주자였던 애플은 배터리 게이트로 결국 소비자들에게 소송을 당했고 법원의 판결로 결국 배상금을 지급하게 되었다. 완벽한 제품을 선택하라는 메시지를 주며 스마트한 이미지로 팬덤까지 형성했던 애플은 이로 인해 많은 소비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애플은 여태껏 소비자들로 하여금 물건을 빠르게 교체하고 새것을 사게 하기 위해 아주 똑똑한 브랜딩을 펼쳐왔다. 한때는 전 세계가 주목했던 신제품 출시 기념 프레젠테이션. 이전에 없던 걸 만든 스티브 잡스식 기조연설은 끊임없이 버전이 업그레이드되어 출시되는 스마트 기기들을 완벽하게 보이도록 하기에 충분했고 업계의 다른 회사들도 이 방식을 모방했다.
새로운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만들 땐 이미 사람들이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전적으로 새 제품으로 교체할 의지가 있는 기존 사용자들에게 얼마나 완벽한 제품인지 어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루에 만 3천 개의 휴대폰이 버려지게 되었다.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사람들이 고쳐 쓰거나 수리해서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이 기업의 전략이었다. 과거엔 비교적 수월했던 부품 수리 매뉴얼을 비공개로 바꾸고 내부 부품을 접착식으로 만드는 등 교체가 어렵도록 만들었다. 가장 대표적인 제품 중 하나인 에어팟은 디자인 자체를 배터리 일체형으로 만들어 배터리 수명이 끝나면 새것을 살 수 박에 없도록 만들었다.
아마존에서 팔리지 못한 새 장난감을 땅에 그냥 묻는 장면까지 등장한다. 이유는 비용 절감. 나눔 하는 것보다도 버리는 게 싸기 때문이라고. 이런 식으로 기업에서 쓰레기 매립지에 버리는 반품 상품의 양이 23kg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는 물건을 만드는데 생성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생각하고 소비자들이 버린 쓰레기에 대해서만 죄책감을 느끼는데 그보다 더 많은 양을 기업에서는 몰래 버리고 있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3. 철저히 속여라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세 번째 전략을 철저히 속이는 것. 뒤에선 아무리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내도 겉으로는 환경을 생각한다고 홍보해 브랜드의 이미지를 챙기는 가장 저렴한 방법. 바로 그린워싱이다.
기업이 적극적으로 환경 마케팅에 나서는 건 사실 흔한 전략이다. 세상과 환경을 위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다른 쪽을 못 보게 하는 것. 플라스틱을 쏟아내는 기업인 코카콜라의 광고마저도 과거엔 그린 워싱이 잘 먹혀들어간 적이 있었다고 한다. 제품을 만들기 위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면서도 버려진 이후의 과정에 대해선 나 몰라라 하는 수법. 재활용이 가능하다고 말하며 소비자들의 죄책감을 덜어내는 수법.
하지만 현실은 대체로 재활용이 어렵고 재활용 라벨은 거의 다 가짜라고 화학 전문가는 말했다.
포장에 관한 규정은 대체로 느슨하기에 기업들이 창의력을 펼치기 좋은 무대가 된다. 말만 잘 만들면 얼마든지 그린 워싱이 손쉽게 가능하다는 거다. 어떤 거짓말을 만들어내도 실제로 책임질 일 없으니까 말이다.
실상은 생산량의 20% 미만으로 재활용이 가능하고 생산량을 줄이는 것만이 답이지만 어떤 기업도 소비자들에게 그렇게 말하는 경우는 없다. 더 많이 사길 권장하며 분리수거만 하면 괜찮다고 부추긴다. 하지만 지구 곳곳에 쌓이는 쓰레기 산은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문제를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도 저렴하게 피해 갈 수 있는 방법. 마치 환경에 진심인 것처럼 홍보해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챙길 수 있는 방법. 교묘하게 광고에 자연 이미지나 아이들의 메시지를 넣어 기업이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방법. 그것이 바로 그린 워싱인 것이다.
아마존 수석 디자이너는 어느 순간 모든 게 너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7700명의 직원들과 함께 노조를 결성해 제프 베이조스 회장에게 대화를 요청했다. 기후 지침 마련을 촉구하는 단체 행동에 들어가기도 했으나 파업 하루 전날 아마존은 기후 서약을 발표했다. 겉으로는 파리 기후 협정을 충실히 이행하는 최초의 기업이 될 것임을 약속했지만 사실 그 약속은 아마존에서 만들어내는 물건들의 1%에만 해당하는 부분이었다.
4. 꼭꼭 숨겨라
수익을 극대화하는 네 번째 방법은 이미 만들어낸 엄청난 폐기물들을 꼭꼭 숨기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폐기물의 심각성을 인지하게 된다면 기업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절대로 들켜셔서는 안 된다.
전자 폐기물을 처리하는 데에는 비용과 환경적 부담이 있기 때문에 대체로 빈곤 국가로 이 작업을 떠넘긴다. 빈곤 국가의 노동자들은 돈을 받고 건강이라는 대가를 지불한다. 전자 폐기물 안에는 카드뮴, 납과 같은 중금속과 암이나 생식 장애를 유발하는 브롬화난연제가 들어있다. 그냥 쓰레기가 아니라 독성물질이자 유해 폐기물인 것이다.
H&M에서는 헌 옷을 가져다주면 다른 나라에 기부되는 재활용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기부하면 새 옷 구입 시 15% 할인도 받을 수 있으니 겉으로 보기엔 효과적이고 좋은 프로젝트다.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옷들이 기부되어 가나의 해변엔 옷 쓰레기가 쌓여 산을 이루고 있다. 대다수의 옷은 버려지고 빗물에 씻겨 해변으로 흘러간다. 옷을 생산하는데도 섬유 가공, 염색 등의 과정에서 유해 화학물질이 많이 배출되는데 저렴한 가격과 낮은 퀄리티로 몇 번 빨면 망가지는 옷들은 쓰레기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버려진 후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책임 의식이 전혀 없는 산업과 기업들의 행보. 바다로 흘러들어간 수많은 플라스틱 섬유는 미세 플라스틱이 되어 다시 우리에게도 돌아와 폐조직에 침투하고 혈액 세포막까지 도달한다.
자본주의 안에서 절대적 진리처럼 여겨지는 매출의 상승 곡선은 과연 인간에게 이득일까.
5. 강력히 통제하라
수익을 극대화하는 마지막 방법은 결국 강력히 통제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개인의 선택에 자유를 주는 것 같지만 오히려 고도화된 방법으로 속이고 통제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완벽한 통제는 언제나 조직 안에서부터 시작된다.
기업 내 임원이 되기 위한 승진 가이드에 이런 질문이 있었다고 한다. "당신은 어떤 경우에든 회사에 입장을 지지하겠습니까?"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임원이 될 수 없다.
아마존이 기후 서약을 하고 2년 후 실제 기업의 탄소 배출량은 40% 상승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선두에 있었던 사람들의 인터뷰. 그들은 모두 제대로 된 시스템이 아니라는 판단 후 삶을 바꿨고 스스로 해왔던 일에 대한 책임으로 환경을 위한 업으로 전환했다.
물건은 삶의 목적이 될 수 없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잘못된 건지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악순환의 연결고리. 우리는 그 안에서 우리도 모르게 소비를 조장하고 세뇌당하며 지구에 넘치도록 많은 양의 쓰레기를 실시간으로 만들어내고 있다는 걸 다큐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했다.
슬프게도 물건은 소유할수록 더 많이 가지고 싶고 아무리 많이 가져도 내면이 채워지지 않는다.
결국 물건에게 어떤 화려하고 거창한 의미 부여를 해도 물건은 삶의 목적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