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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입는 옷으로 북커버 만들기

by 흔적



유난히 손이 가지 않는 옷


습관처럼 SPA브랜드 매장을 다녔다. 패션 트렌드 분석하는 일을 하며 패션 매장을 다니는 건 업이자, 취미이자, 쇼핑이자, 당연한 루틴이었다. 계절마다 아니, 달마다 옷을 샀다. 그중 몇은 입고 나머지는 옷장 속에 들어가 나올 줄을 몰랐다. 유난히 손이 가지 않고 다른 옷들과의 조합이 어색한 옷들이 있기 마련이다. 분명 좋아서 샀는데 어떻게 해도 잘 입지 않게 되는 옷이었다. 매번 꺼내어 입어보고 다시 옷장에 넣었다. 너무 쉽게 사고 버렸기에 이 옷도 내게 흘러들어와 옷장 속에서 긴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 아닐까.


그렇게 십 년이 흘렀다. 십 년 동안 두어 번 입었을까. 이 정도면 정리해도 되는 옷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그렇다고 헌 옷 수거함에 넣고 싶지는 않았다. 얼마 전 포스팅에도 썼지만 헌 옷 수거함의 대다수는 되팔고 되팔다 쓰레기가 되는 현실임을 알기에, 그것이 '기부'가 아님을 알기에 어떻게든 스스로 새로운 쓰임을 주고 싶었다.


예전부터 필요에 의해 꼭 하나 갖고 싶었던 물건이 있었다. 종이책을 가지고 다니며 읽는 사람들은 북커버의 중요성을 알 거다. 가방에 그냥 넣어두면 커버나 기둥이 자꾸 헤지게 되어 책이 상한다. 내 책은 내 책이라서 아깝고 도서관에서 빌린 건 빌린 거라 신경이 쓰였다. 책을 깨끗한 상태로 보며 가지고 다니기 위해서는 북커버가 꼭 필요했다.


옷장 속에 오랫동안 처박아둔 그 옷으로 북커버를 만들면 어떨까?!





안 입는 자켓으로 북커버를 만들자.



캐주얼하게 휘뚜루마뚜루 잘 입고 다니겠다 싶어서 샀던 롱자켓. 데님은 아니지만 데님 같은 푸른색에 잔 스트라이프가 좋아서 샀었다. 핏이 잘못되었는지 걸치기만 하면 바보 같은 핏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젠 보내줄 때가 되었구나. 북커버로 다시 탄생해 주렴. 면이라 캐주얼하면서도 외투의 겉감이라 두툼해 북커버를 만들기 딱 좋은 소재겠다 싶었다.





1. 북커버 사이즈 정하기


가장 많이 읽는 책의 크기를 기준으로 북커버의 사이즈를 정했다. 크게 만들어 활용도를 높일까 생각도 했으나, 북커버가 너무 헐렁거리면 그것도 별로일 것 같고. 가장 기본이 사이즈로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호프 자런의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책으로 사이즈를 쟀다. 크기는 작지도 크지도 않은 사이즈에 약간 두툼한 두께의 책이다.


세로 길이 22cm

책 둘레 29.2cm





2. 패턴 만들기


패턴은 총 2개가 필요하다. 겉감과 안감을 만들 패턴 하나, 날개장 패턴 하나. 겉감과 안감을 만들 가장 큰 사각형은 세로 22.5cm, 가로 32cm로 책 사이즈보다 조금씩 더 여유를 주었다.


날개장은 세로 길이는 똑같이 22.5cm로 하고 가로 길리는 반으로 접어서 10cm가 되도록 총 20cm로 했다.





3. 재료가 될 원단 준비


자켓의 겉감과 안감의 색상이 달라 북커버에도 똑같이 두 가지 색상을 뒤집어서 사용하기로 했다. 스트라이프 부분은 겉감, 안쪽 진한 네이비는 안감으로. 날개장은 도돌이에서 현수막 만들고 남은 아이보리 면바지를 잘라 만들기로 했다.





4. 패턴대로 그려 넣어 시접 두고 자르기(재단)


패턴을 옷 위에 올려두고 선을 따라 그려 자르면 재단은 완성된다. 사각형의 사이즈라 간단하고 어려운 부분은 없다. 패턴 사이즈가 옷의 이음선을 넘지 않아 깔끔하게 자를 수 있었다.


겉감 1장, 안감 1장, 날개 2장 재단 완료.





5. 손자수 넣기


괜히 뭔가 밋밋한 것 같아 손자수를 하나 넣고 싶어졌다. 복잡스러운 이미지는 싫어서 커피잔 위에 말풍선이 있는 이미지를 그려 넣어 그 안에 내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넣었다. my_heunjeok. 난 내 진짜 본명보다 흔적이라는 이름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약간 심플하게 빈티지 감성을 넣고 싶어 빨간 실과 연노랑 실을 사용했다.





6. 날개장 반으로 접어 미싱하기


날개장 부분부터 박음질을 시작했다. 반으로 접어 끝부분을 일자로 박아주기.

깔끔하군.





7. 박음질한 두 날개장을 안감과 함께 박음질하기.


차분한 색상의 블루와 아이보리의 조합.

괜찮네.





8. 바지 고리로 북커버 고리 만들기


안감과 겉감을 박아주기 전에 책 위에 고리를 하나 달아주어야 하는데 바지 벨트 고리를 뜯어서 활용하기로 했다. 두꺼워서 박음질하기가 조금 어렵지만 고리 자체가 박음질이 되어 있어 완성도 있어 보이고 업사이클링의 맛을 살리기도 좋을 것 같았다.





9. 전체 박음질


겉감 위에 고리 위치 잡아주고 안감은 뒤집어서 마주 보게 한 후 박음질하기. 북커버 뒤집었을 때 모양이 예쁘게 잘 나오도록 시접 바짝 잘라주기.





10. 뒤집은 후에 손바느질로 창구멍 공구르기.





완성!





책을 넣어 봅니다. 급하게 만들었지만 부드럽고 깔끔해서 나름 마음에 든다.





날씨가 좋아져 가지고 다니며 공원 나무 그늘 아래서 책 읽는게 아주 쏠쏠한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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