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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선생님께 드린 선물 상자

by 흔적


한 번씩 아이들 물건을 물려주는 친구가 있다. 신생아 때 이불부터 시작해 옷, 장난감, 책등 정말 다양하고 많은 육아 용품을 그 친구에게 받았다. 친구는 아이가 둘인데 이제는 둘 다 어엿한 초등학생이다. 터울이 있다 보니 물려받기가 더 좋다.

작년 여름쯤 친구가 엄청나게 커다란 이사용 택배 상자를 집으로 보냈다. 이사하면서 짐을 정리하며 내게 물려줄 것들을 보내온 것이다. 그림책도 있고 옷도 있고 장난감도 있었는데 왜 보냈는지 알 수 없는 작은 주얼리 상자들도 가득했다.



매장에 무료 나눔 코너도 있으니 일단 정리할 것들 다 보내면 알아서 쓰고 나눔 하고 버리고 하겠다고 했었다. 그랬더니 한가득 보낸 작은 주얼리 상자들. 아이가 둘이니 그 둘의 돌잔치 때 나 기념일에 받았던 것들이 아닐까 싶다. 처음엔 이걸 왜 보냈나 싶어 어리둥절했는데 아마 이것도 멀쩡하고 버리기 아까운 것들이라 보낸 것 같았다.

작은 주얼리 상자들은 다이소에서 팔기도 하니까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어 버리지 못하고 보관해두고 있었다. 하지만 당근에 내놔봐도 주인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을 우리 집 옷장 안 어둠 속에 있던 작은 상자들.

그러던 어느 날 장난꾸러기 여섯 살 에코힙쟁이가 옷장을 뒤지다 보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보물 상자를 발견하고 마는데..



아이의 눈에 작고 귀엽고 선물 같아 보였던 선물상자.

"나 이거 유치원에 가져가서 선생님한테 선물할래!"

"응? 이거 아무것도 없는데 왜 가져가?"

"안에 스펀지 있잖아."

아들아, 반지 꽂아두는 그 스펀지 말이니..

그게 아무것도 없는 거야.


너무 소중하게 들고 가는 쇼핑백.

이렇게 보면 진짜 선물 들고 가는 것처럼 보이네.

유치원 가방에 넣으라고 하는데도 싫다고 직접 들고 가서 선생님 줘야 한다며 소중히 가져간 선물.

유치원 선생님들은 선물을 못 받게 되어있어서 아마 처음엔 당황하셨을 텐데 빈 상자라는 것을 알고 흔쾌히 아이의 선물을 받아주셨다.

그래 마음을 전하는 거라면 그것도 선물이지. 뭐든 아이들이 잘 가지고 놀 수 있다면 그게 장난감인 거고.




"지난번에 드렸으니까 이제 그만 가져가."

"아니야. 못 준 선생님 있어."​

너무 귀엽고 웃기고 다하는 아들. 아이에겐 빈 상자가 전혀 비어있지 않은 꽉 찬 상자인가 보다. 이렇게라도 상자가 쓰임을 할 수 있으니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

"어머니 집에 상자가 많으신가 봐요."

"아..ㅎㅎ네ㅎㅎㅎㅎ"

​​

이 긴 사연을 선생님께 다 설명드릴 수 없었지만 모두가 유쾌했으면 그걸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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