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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식민주의 시대에 헌 옷 수거함에 버린 옷은 어디

by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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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에 관심이 많아 유행을 이끄는 나라. 인구는 작지만 소비는 많고 그만큼 많은 양의 의류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나라. 헌 옷 수출량 세계 5위의 나라. 바로 우리나라다. 환경부 통계에 의하면 의류 수거함에 분리배출된 폐의류는 2022년 기준 연간 10만 7천 톤에 이른다. 얼마나 많은 양인지 감도 안 올 정도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공식 통계상으로는 이 의류 쓰레기들이 매립이나 소각되지 않고 모두 재활용된다고 나온다. 어떻게 유독 한국에서만 모든 의류 쓰레기가 환경적으로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고 전부 재활용될 수 있을까. 이 프로젝트는 이것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한겨레21의 박준용 기자는 헌 옷 수거함의 옷들이 실제로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졌다. 옷에 gps를 부착해 헌 옷 수거함에 넣고 위치를 추적하기로 한다. 환경에 관심 있는 배우 박진희, 김석훈, 제로웨이스트샵을 운영하며 다양한 환경 활동을 펼치는 방송인 줄리안에게서 옷을 기부받고 취재진의 옷을 더해 153벌의 옷을 전국에 있는 의류 수거함에 나누어 넣었다.

수거된 옷의 첫 번째 행선지는 중고 의류를 수출하는 국내 업체였다. 일부 내수용으로 선별해 판매하고 나머지는 해외로 수출된다고 했다. 한 달이 지나고 태국 중고 시장에서 신호가 울렸다. 이곳에서는 절반은 판매되고 안 팔리는 것 들은 매립, 소각되고 있었다.

대부분 합성 섬유로 만들어진 복합소재의 옷들은 매립을 해도 오랫동안 썩지 않으며, 소각을 할 경우 유독 물질이 배출된다. 태국의 매립지는 이미 포화상태였다.





다음 행선지는 인도다. 중고 의류를 수입하는 곳에서 소매상들에게 판매되고 남은 것들은 재활용 공장으로 갔다. 공장에서는 헌 옷을 잘게 쪼개서 카페트로 재활용하고 있었다. 자원을 활용해 더 가치 있는 물건을 만든 업사이클링이 아닌 조금이나마 자원을 수명을 늘리는 다운싸이클링의 현장이었다.

그래도 버리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색깔이 제각각인 옷들은 잘게 쪼개 표백한 후 색을 입히는데 표백 과정에 사용한 폐수가 별다른 처리 과정도 없이 그대로 강에 버려지고 있었다. 부자들은 다 떠났고 가난한 사람들만 남아 피부질환, 신체마비, 혈액암 등의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재활용되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카페트로도 만들어지지 못하는 의류들은 매립되고 결국 소각되고 있었다. 소들은 버려지고 타버린 옷들을 먹고 살아가고 있었다. 헌 옷 수거함에 넣은 옷이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거라는 우리의 기대와 달리 버려지고 태워지는 이유는 너무 많기 때문이다. 많아도 너무 많다. 국내에서 되팔고, 해외에서 되팔고, 재활용하다 남아 버려지는 것들이 산처럼 쌓이고 있는 현실.

모두의 책임이지만 가장 큰 책임은 역시나 생산자에게 있다. 의류도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에 포함시켜야 한다. 프랑스는 2007년부터 그렇게 하고 있다고. 저렴한 옷을 일회용처럼 몇 번 입다 버리게 만드는 패스트패션 기업들은 매장 안에 자체 수거함을 설치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그 옷이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고 있는 진실이 없다.

분명한 진실은 ‘헌 옷 수거함’은 민간 업체에 의해 관리되며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기부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지나치게 많은 양의 폐의류가 쏟아져 나와 향하는 곳은 가난한 나라의 쓰레기 산이다. 매립되거나, 소각되거나, 또 다른 방식으로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다.

나는 헌 옷 수거함에 옷을 넣지 않는다.

‘쓰레기 식민주의’라는 말이 가슴에 콕 박혔다. 선진국이 취향과 쾌락이라는 명분으로 쓰레기와 책임을 가난한 나라에 버리는 식민주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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