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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기억 속에 영화관 팝콘이란

by 흔적


아이랑 영화관 갈 때마다 직접 팝콘을 튀겨 스테인리스 밀폐용기에 담아 가는 남편. 그동안 내가 토요일 출근을 하거나, 공휴일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육아를 책임져온 남편이 만들어낸 아이와의 루틴이다. 어떨 때 보면 남편이 나보다 더 제로웨이스트 실천을 잘하는 것 같다. 나는 늘 의욕이 앞서는 편이라면, 남편은 묵묵히 실천하는 타입이다. 가족 안에서 제로웨이스트를 한 순간의 이벤트가 아닌 습관이자 문화로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건 남편의 참여 덕분이었다. 당연하다. 가족은 혼자가 아니니까.


한살림에서 국내산 유기농 팝콘용 옥수수를 사다 놓으면 남편은 그걸 꺼내서 팝콘을 튀긴다. 맛을 내기 위한 첨가물이나 시즈닝은 전혀 없지만, 그래서 팝콘 본연의 맛이 더 잘 느껴진다. 건강을 위해 스테인리스 밀폐용기에 담는다. 이 부분은 남편에게 따로 잔소리를 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챙겨서 조금 놀랐다. 평소에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쓰레기를 덜 만들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아이에게 환경 호르몬과 미세 플라스틱 섭취를 조금이라도 줄이게 해 주기 위함이다. 남편도 이 부분을 잘 알고 공감하고 동참해주고 있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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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동안 이어진 긴 연휴에 남편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나도 드디어 둘만의 영화관 데이트에 끼어보는 것인가. 아직 여섯 살인 아이에게 미디어 노출을 최소화하고 있지만, 남편이 아이와 영화관에서 추억을 쌓고 싶어 해서 두어 달에 한 번씩은 영화관에 가도 좋다고 했다.


집에서 가까운 롯데시네마에 갔다. 철저히 여섯 살 취향에 맞춘 <배달의 영웅 _ 캐리와 슈퍼콜라2>를 예매했다. 영화관이 예전만큼 흥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로 사람이 없었다. 모바일로 예매할 땐 우리뿐이었고, 극장 안에 들어가니 우리 말고 네 팀 정도 더 있었다. 애니메이션인 만큼 모두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 단위의 관객들이었다. 이러다 정말 영화관이 사라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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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앉아마자 팝콘통부터 꺼냈다. 아이는 영화관 오는 내내 이 시간만을 기다렸다. 이번엔 메이플 시럽을 살짝 추가해 달콤한 팝콘을 만들었다. 시중에 파는 팝콘처럼 자극적인 맛은 아니지만, 은은하게 달콤한 맛이 올라오는 건강하고 맛있는 팝콘이다. 남편의 팝콘 튀기는 솜씨는 이제 경지에 올랐다. 신기하게 내가 튀기면 매번 타는데, 남편은 기름의 양과 불조절을 기가 막히게 한다.


아빠가 만들어준 팝콘을 맛있게 먹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흐뭇해졌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이미 3분의 2는 사라졌다. 엄마랑 나눠 먹으니 아이는 자기가 먹는 양이 줄어들까 봐 경쟁 심리가 생겨 더 열심히 먹는 모습이었다. 누군가에게 먹는 걸 뺏겨본 적도 없는 외동인데, 참 먹성 하나만큼은 타고난 우리 아이다. 아이에게 미안하지만 나도 너무 맛있어서 손이 분주해지도록 열심히 먹었다.


팝콘을 먹으며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게 얼마만인지 감회가 새로웠다. 그동안 영화관에서 봤던 수많은 영화들이 스쳐 지나갔다. 영화를 보기 전엔 언제나 설렘과 기대가 가득했고, 특별한 경험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며 감상을 이야기하는 시간들까지 모두 영화라는 경험의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는 패키지였다. 나중에 아이가 어른이 되면 영화관이라는 장소는 추억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엔 영화관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말이지.."

라고 이야기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건 너무 좋지만, 쉬워진 만큼 하나의 콘텐츠에 대한 집중력은 사라진 것 같다. 오직 영화관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를 집중해서 보고, 좋아하는 영화를 곱씹으며 느꼈던 그 경험들을 기억하고 있어서 그런지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래서 더 아이와 영화관 추억을 쌓고 싶은 것 같다. 아이에게 영화관에서의 시간들은 어떻게 기억될까. 어떤 영화를 봤는지, 어떤 하루였는지 다 잊어버려도 괜찮다. 아빠가 튀겨준 팝콘을 맛있게 먹으며 영화를 봤던 그 한 장면만큼은 남았으면 좋겠다. 마치 영화처럼. 아빠가 팝콘 튀기는 모습을 설레어하며 지켜보던 순간, 그 빛나는 스테인리스통을 끌어안고 있었던 순간들이 아이의 유년 시절 기억 속에 한 자리 차지하면 좋겠다. 엄마도 끼어주면 좋고.



(참고로 영화관은 법적으로 외부 음식 가져와도 된다. 영화관 팝콘을 소비하게 하기 위해 아무도 그 부분을 알려준 사람이 없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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